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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PS 일상 지옥 '장애인 등록' 싸움
24시간 불타는 통증, “벗어나는 건 죽음뿐”
“장애인으로 인정해달라” 신청·의견서 제출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10-15 14:33:08
15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 기자회견에서 ‘복합통증증후군 장애등록 기준 마련하라’ 손피켓을 들고 있는 참가자.ⓒ에이블뉴스
▲15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 기자회견에서 ‘복합통증증후군 장애등록 기준 마련하라’ 손피켓을 들고 있는 참가자.ⓒ에이블뉴스
“살인적인 통증을 견디느라 저의 어금니는 모두 금이 가고 부서졌습니다. 가족과 산책하고 집안일, 요리하는 일상은 꿈을 꿀 수도 없고, 심지어 아픈 부위는 만질 수도, 씻지도 못할 정도로…”

종합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던 박 모 씨(여)의 일상이 무너진 것은 8년 전인 2012년 1월. 병원 연결통로로 카트를 옮기던 중, 타인에 의해 이동식 내시경 기계에 오른쪽 발목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정형외과에서 상처 부위의 치료 및 수술은 받았지만, 어찌 된 이유로 발목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한 끝에 5년만인 2017년 8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1형 진단을 어렵게 받아냈다.

하지만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진단만이 끝이 아니었다. 칼로 찌르고 난자하는 듯한, 불에 타고 있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24시간 내내 찾아왔다.

2~3일에 한 번꼴로 느껴지는 돌발통(칼로 난자당하는 느낌의 통증)으로 119에 실려가 응급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작년 한 해만 응급실을 찾은 횟수가 16회다. 현재 통증은 오른쪽 족부(발바닥)와 무릎까지 전이·확대된 상태다.

박 씨는 조금이나마 통증을 줄이기 위해 2년간의 신경차단술, 신경파괴술, 마취제 주사 요법, 복부에 척추신경자극기를 삽입했지만, 마약성 진통제 복용량과 모르핀의 양만 늘어났다. 지긋지긋한 통증, 통증이 망가뜨린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죽음’ 뿐.

“저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 저를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살 충동을 이겨냈습니다. 원인이 불명확한 통증은 기댈 곳이 없습니다. 고통스러운데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선택지를 많지 않습니다. 질병과 장애 사이, 질병은 저를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괴감과 상실감에 스스로 미워했습니다.”

15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 기자회견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미연 변호사가 박 씨의 글을 대독하고 있다.ⓒ에이블뉴스
▲15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 기자회견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미연 변호사가 박 씨의 글을 대독하고 있다.ⓒ에이블뉴스
박 씨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으로 인해 우측 발목 부위와 좌측 발목 부위 간의 체온 비대칭 및 우측 발목 부위의 운동 범위 감소, 관절 강직, 근력 저하를 겪고 있다.

업무 중 일어난 사고임에도 사 측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산재가 인정되지 않아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복부에 삽입한 척추신경 자극기는 7~8년 주기로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지만, 비용이 300만원에 달하며, 기계 방전이나 오작동, 염증이 생기면 기계를 교체해야 하거나, 통증이 또 다른 부위로 전이되면 1500만원의 추가 비용도 든다.

사고 전 환자 간호를 주로 담당했던 박 씨는 현재 손쉬운 노무일 맡고 있으며,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5분 남짓해 택시로 출퇴근하며, 대부분 휠체어 생활을 한다.

“멀쩡해 보이는데, 아픈 게 사실이야?”

바람만 불어도, 스치기만 해도, 아니 아무런 자극 없이도 통증이 생겨 온몸을 꽁꽁 싸맨다는 박 씨. 직장에서도 마약성 진통제를 과다 복용하면서 사력을 다해 견디지만, 그를 향한 동료들의 아니꼬운 한마디는 통증보다 더 살인적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5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에 대한 장애등록 인정을 촉구했다.ⓒ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5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에 대한 장애등록 인정을 촉구했다.ⓒ에이블뉴스
그런 박 씨가 국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바로 ‘장애인 등록’이다.

현재 박 씨와 같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제1항에 열거된 15개 장애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인으로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박 씨는 ‘꾀병 환자’, ‘마약 중독자’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고, 작은 복지라도 적용받고 싶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면서 장애인 등록 신청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법률지원단은 해당 지자체(서울 서대문구)에 박 씨의 장애인등록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또 15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담당 주무관에게 박 씨와 같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이 장애인으로 등록이 돼야 한다는 의견서도 함께 전달했다. 복지부는 조만간 장추련, 법률지원단 등과 면담을 가지겠다는 계획이다.

 15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가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연지혜 주무관에게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에이블뉴스
▲ 15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가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연지혜 주무관에게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에이블뉴스
법률지원단인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는 “80년대 이전에는 장애를 손상만으로 규정했지만, 현재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다양한 장벽과 사회참여 제한에 대해서도 장애를 정의하기 시작했다”면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15개 장애 유형에서만 장애판정 기준을 두고 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치매환자 등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신청조차 못 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장추련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증상이 지체장애 기능장애에 해당하면 장애등록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에 대한 장애등록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또 대법원에서는 신체적, 정신적장애로 인해 오랫동안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뚜렛증후군 환자를 장애로 인정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장추련 나동환 변호사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오랫동안 일상생활,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음에도 장애유형에 포섭되지 않다는 이유로 장애등록을 거부한 것은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판결”이라면서 “대법원 판례의 취지대로 지체장애나 뇌전증장애 판정기준을 유추적용해 박 씨를 장애인으로 판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 눈물 외면하는 장애등록 절차 개선하라’ 손피켓을 든 모습.ⓒ에이블뉴스
▲‘장애인 눈물 외면하는 장애등록 절차 개선하라’ 손피켓을 든 모습.ⓒ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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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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