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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의 시각장애인 대출거부가 주는 시사점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선택권은 살아 숨 쉬는 권리여야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8-25 14:44:15
지난 8월 1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농협의 시각장애인 대출거부 사건을 규탄하기 위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지난 8월 1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농협의 시각장애인 대출거부 사건을 규탄하기 위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지난 8월 1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가 농협에서 발생한 시각장애인 대출거부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자회견 내용에 따르면 시각장애가 있는 원고 A씨가 평촌에 있는 농협에 활동보조인과 같이 방문했는데 자필서명이 안 된다는 이유로 농협으로부터 대출신청을 거부당했다. 이후 A씨가 약관내용을 몰랐다고 하는 등 문제 발생 소지가 있다고 하며 A씨에게 후견인 동행을 요구했다 한다.

농협에선 대필거래는 가능하지만 될 수 있으면 지양하라는 내부 가이드라인이 있어 A씨에게 후견인 동행을 요구했고 이는 적절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법 내용을 들여다보면 질병·장애·노령이나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특정사무 처리능력이 지속된 결여된 사람에 관해 심판을 통해 후견개시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농협의 대출거부 사유와 민법 내용을 조합해보면 결국 자필서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의사능력이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금융거래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를 잠깐 보면, 영국 정신능력법(Mental Capacity Act)에서는 먼저 정신 또는 뇌의 기능상 손상이나 장애가 있는지 증명한다. 장애가 있음을 증명하면 바로 의사결정능력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니다.

손상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자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설질적이고 모든 적절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 모든 지원방법을 다 썼음에도 실패할 경우에 가서야 최후 법원에 의한 후견인을 통한 대체의사결정을 논의한다.

①의사결정과 관련된 정보를 이해할 수 없다, ②정보를 마음속에 유지할 수 없다, ③의사결정의 과정으로써 관련정보를 사용할 수 없거나 정보의 비중을 알 수 없다 ④자신의 결정을 언어, 그림언어, 기타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수 없다 등의 의사결정 무능력 판단기준을 활용해 ①~③ 중 하나라도 할 수 없을 경우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길 수 있고 ④는 개별적으로 적용된다.

이처럼 영국은 정신능력법 등을 통해 후견인을 통한 지원보다는 실질적이고 적절한 의사결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중요시하며 장애인의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하는 합리적 절차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합리적 절차 없이 후견인을 통한 지원을 우선시한다. 장애인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객관적 판단기준, 가이드라인도 없다.

이러니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 지원을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자필서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의 의사능력이 없다 판단한 나머지 후견인을 동행하라고 요구하며 금융거래를 제한한 농협사건과 같은 사단이 발생하는 것이다.

작년 10월 17일 장애인 사법접근권 및 성년후견제, 의사결정지원제도 등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했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과 사법’ 토론회 때의 모습 ⓒ이원무
▲작년 10월 17일 장애인 사법접근권 및 성년후견제, 의사결정지원제도 등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했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과 사법’ 토론회 때의 모습 ⓒ이원무
이런 경우는 비단 시각장애인에게만 발생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의 경우도 관공서, 금융기관 등지에서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 지원 없이 ‘후견인 데려오세요’라 하며 발달장애인 차별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 때문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17조인 금융상품 및 서비스제공에서의 차별금지내용은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판단기준 연구를 하는 것이 상당히 시급하다. 여기에는 보건복지부와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장애인 당사자, 자기용호 교사들과 전문가, 장애계 등과 함께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판단기준 연구결과가 나오면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도 만든 내용은 교육자료에 가깝지,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래서 장애인 의사결정능력 판단 가이드라인 중 의사결정지원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장차법과 발달장애인법에 녹여내어 그 내용들이 법적 구속력을 갖게 해야 한다.

아울러 장애인의 의사결정능력 판단 가이드라인을 관공서, 금융기관, 법원, 경찰서 등지에 배포한 후 교육해야 한다. 가이드라인 내용 중 법제화한 것은 관공서, 금융기관 등의 담당자들이 반드시 명심하고 숙지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시각장애인 대출거부와 같은 장애인 금융차별 사건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됨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성년후견 등의 의사결정대체제도는 의사결정지원 중심의 제도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후견은 정말 모든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 지원방법을 썼음에도 실패할 경우에만 최후에 논의해야 할 것임을 밝혀두고 싶다.

의사결정지원 중심의 제도로 갈 수 있도록 이제부터라도 보건복지부와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총대를 메고 장애인 당사자와 자기옹호 교사, 전문가 등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해 제도 도입부터 시작해 제도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와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길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그럴 때 장차법과 발달장애인법에서 중요시하게 여기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라는 명제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수사나 그림의 떡이 아닌 실생활에서 살아 숨 쉬는 권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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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원무 (wmlee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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