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무색, 장애인 편의시설 전무해

CBS사회부 조은정 기자

동대문 야구장을 헐고 수천억원을 들여 개장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점자블록 등 기초적인 장애인 시설도 갖추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이곳은 정부로부터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1등급' 예비인증까지 받았지만 디자인 컨셉트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개장 4개월 넘도록 점자블록 하나 없어

동대문의 상징이었던 야구장 대신 들어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0월 27일.

총 면적은 축구장 9배인 6만5232㎡, 총 사업비만 3,755억원에 달하며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초창기부터 주목받았다.

하지만 동대문의 랜드마크로 야심차게 마련된 공간에서 장애인을 위한 기초 시설도 갖춰져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개장 4개월이 지난뒤, 취재진이 장애인들과 함께 직접 공원을 살펴본 결과 장애인 편의시설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 있는 시설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우선, 공원 안의 승강장과 화장실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승강기를 타고 이동하기도, 화장실을 찾아갈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는 것이다.

직접 공원을 살핀 시각장애인 1급 임희남(40)씨는 "점자블록이 없을 뿐 아니라 남자 화장실인지 여자 화장실인지도 표시돼 있지 않다"면서 "이 상태라면 시각장애인들이 공원을 이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동대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마련한 전시관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설명서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장실의 경우 진입로가 좁고, 일부는 자동문을 설치하지 않아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했다.

지체장애인 1급 채희준(39)씨는 공원 전시관 안쪽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려다 번번히 실패했다. 채 씨는 "화장실 문이 여닫이로 돼 있어 도우미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특히 입구가 좁아 휠체어가 조금만 커도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다"고 지적했다.

◈ 노란 블록대신에 혹두기, 일반인들도 걸려 넘어져

장애인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은 건물 주변에 점자 유도블록 대신 깔린 '혹두기'이다.

대리석이 울퉁불퉁하게 솟아있는 형태의 혹두기는 장애인과 일반인들의 보행을 돕는다는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거칠게 튀어나온 형태의 혹두기는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지체장애인, 일반인들의 발걸음까지도 방해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임희남씨는 "이렇게 울퉁불퉁한 길은 걷기도 힘들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들는 오히려 위험한 곳, 가서는 안될 곳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전동 휠체어를 끌고 길을 지나던 채희준씨도 "혹두기가 주변 바닥돌과 색이 똑같아 자칫하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돌에 걸려 넘어지기 쉽다. 거친 표면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가도 몸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돌에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허다해 민원이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 '고급스런 디자인 컨셉과 안맞아…" 허울좋은 BF인증

이처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미비한 것은 바로 '디자인'때문이다.

이미 수개월 전 시설관리공단에서도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을 권고했지만 서울시에서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컨셉과 맞지 않는다"며 수개월째 개선을 미루고 있다.

서울시 동대문디자인파크담당관 강성욱 건축팀장은 "전체 디자인이 고급스럽기 때문에 장애인 유도블록이 안맞는 부분이 있다.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색으로 통일된 전체 건물의 디자인 컨셉트에서는 노란색 점자 유도 블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1년전 정부로부터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예비인증 1등급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BF 예비인증을 받았다며 서울시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공원이 실제로는 가장 기초적인 점자블록도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장애인들의 원성도 높아지고 있다.

장애인권익지킴이 박종태 확동가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서울 광화문광장 등 BF인증을 받은 곳들이 실제로는 장애인 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장애인 생활을 한단계 높인다며 만들어진 BF인증이 오히려 기존에 있는 법규마저 후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디자인을 이유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디자인의 본래 의미를 망각한 것"이라며 "'디자인 서울'을 외치는 시에서는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지부터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aori@cbs.co.kr / 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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