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강신우 씨의 증언

강신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저는 형제복지원에 한 1년 6개월 정도 수용됐던 강신우라고합니다

저도 그때 기억을 잘 못하는데 그때 나오자마자 제가 검찰청에 가서 진술한 자료가 있으니까

정확히 나와 있네요 84년 7월 19일에 수용됐다가 87년 2월 4일에... (귀가)

내가 어떻게 다쳤으며 내 눈앞에서 두들겨 맞아서 죽어나간 사람도 있거든요

그 사람들 이름까지는 제가 기억을 못해요 근데 여기 보니까 다 적혀 있더라고요

그때 나오자마자 아버지하고 같이...

다리도 팔도 멀쩡했거든요 거기서 1년 6개월이라는 세월을 있다가 나오니까 장애인이 되어서 나온 거라

부모도 가슴 아플 것 아닙니까 왜 이렇게 됐냐? 그 안에서 폭행을 당해서 이렇게 됐다

가자,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로 간 거예요

근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걸 안받아줘요 그래서 인권옹호위원회인가 있어요

인권옹호위원회에 가서 진정을 했죠

김용원 검사가 담당을 했으니까 김용원 검사한테 가자, 아 거기서 아마 연락이 왔었을 거예요

김용원 검사한테 가서 진술을 한 내용이거든요 이게...

밑에 보면 검사 김용원이라, 맞죠?

김용원 검사한테 가서 진술서 쓰고, 그때 김용원 검사도 위에서 압력이...

나중에 (방송에서) 얘기하는 거 보니까 위에서 압력이 내려오고

자기가 형제복지원 담당인데 교체가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다른 작업 소대에서 다치면 병동으로 보내는 거예요 무조건...

써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병동이라, 사람 머리수만 채우면 되는 거라

정부에서 복지 사업비를 받아먹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같이 멀쩡한 사람도 다 잡아다 넣는 거라

데려가서 일 심하게 시켜서 다리를 다치거나 하면, 내보내주면 머리수가 줄어들잖아요 그렇죠?

그럼 복지 사업비가 그만큼 줄어들잖아요 그러니까 안 내보내고 그런 사람들을 따로 수용하기 위해서 병동을 따로 차린 거라

이틀인가 3일인가 작업할 때 밥도 못 먹지 이러니까 힘이 없어서 연탄을 두 장인가 깼어요

그랬더니 소대장인가 누가 와가지고 너 좀 있다가 남아 이러더니

우리 소대로 와서 부르더니 몽둥이로 막 구타를 하는 거예요

그래 그때 나도 욱 해가지고 더 이상 이렇게 못살겠다 싶어서 반항을 하고 달려들었더니

조금 있다가 실장들하고 조장들이 와가지고 같이 두들겨 패는 거야

하 기가차서 내가...

거의 한 5일 만에, 물 같은 것만 먹고 이러다가, 한 5일쯤 되니까 배가 고프더라고요

한 5일쯤 지나니까 밥이 넘어가더라니 까요 배가 고프니까

똑같은 밥이었는데요? 예 예 하도 배가 고프니까 그 밥이 넘어가더라고

자꾸 먹다보니까 거기에 길들여지더라고 적응이 되더라니까

거기서 부식을 구하러 나가잖아요

그럼 박OO이 트럭을 가지고 가는 거라 트럭 운전을 했던 부식을 운반했던 사람이 저희 소대에 있었어요

같이 있었는데 같이 가서 밭주인들한테 배추를 구하러 왔다 그러면

거의 끝물이고, 또 거의 그럴 때를 노려서 가는 거야

밭주인들도 처치 곤란한 걸 가지고 가져가겠다고 하니까 그냥 가져가라고 하거든요

밭주인이 이 많은걸 어디에 쓰려고 가져 가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돼지를 한 3천 마리 키우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더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자갈치 시장 같은 데 가면 정어리나 고등어

거의 쓸 수 없는 재료를 가져다가 우리를 먹이는 거라

그리고 도살장 같은 데 가서 소 피, 자기들도 상품화할 수 없는 버리는 것들을 다 걷어 오는 거라

최대한 돈이 안 들어가는 거 거의 폐기물 같은 걸...

이건 누가 봐도 사람이 먹을 게 아니거든

사람이 먹는다 그러면 밭주인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러니까 돼지를 키운다 이러면 거기에서 계속 가져올 수 있잖아요 앞으로도...

85년 6월경에, 그때 당시 소대장이 조OO, 실장 강OO, 실장 김OO, 실장 안OO 등으로 부터 구타를 당했는데

당시 옥상에 조화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아래서 청소를 하다가 일어나면서 머리에 부딪쳐서 조화를 떨어뜨렸는데

그때 소대장 조OO이 내무반으로 데려가라고 해서 갔었는데

내무반에서 저를 구타를 하기에 내가 반항을 하자 이 자식 안되겠다고 하면서

밧줄로 손발을 꽁꽁 묶어가지고 몽둥이로 수없이 구타하는 바람에 다리와 팔에 상처를 입었는데

지금도 다리를 절룩거리는 장애인이 됐습니다

86년 11월 경에 양OO이라는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이 연필가지고 편지를 쓰다가 적발이 됐는데

그곳 규칙이 개인이 연필을 소지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고 그 사람이 그 안의 생활상을 밖으로 내보려고 했다는 이유로

우주복을 입히고 침대에다가 두 팔과 두 다리를 꽁꽁 묶어놓고 거의 4일 동안 밥도 안 먹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고 이때 때린 사람은 임OO이라는 소대장이었습니다

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이거든요 번쩍 들어서 던졌는데 바닥에 나뒹굴다가 숨이 넘어가더라고

그리고 정OO이라는 애도 죽었는데 죽은 이유는 단지 소대장이 OO이라는 사람이

번쩍 들어가지고 복도 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이거든요 집어 던져가지고 죽게 했는데

김O0라는 사람도 그곳 생활이 힘들다고 너무나 괴롭다고 하면서 목에 수건을 감아서 자살했는데

그날에 정OO이가 얻어맞아서 죽었고 이OO이라는 사람도 호흡하기가 곤란하다며 숨을 쉬려고 그러는데

눈이 돌아가고 소대장 김OO이가 재수 없다면서 침상 제일 끝으로 옮겨놨는데 눈에 초점이 없고 한 것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서 죽게 했습니다

그 외에 자살을 기도하려다가 장애인이 되거나 폭행을 당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있던 곳이 2층인가 3층인가 그렇거든요 식당으로 가는 구름다리가 연결이 돼 있어요

밥 먹으러 줄서서 가다가 그 구름다리 위에서 투신하는 거라 떨어지는 거라

떨어져서 죽거나 3층 높이니까 죽지 않으면 장애인이 되는 거라

그리고 옥상에서도 실장들 이하 소대장들이 쫙 보초를 서는데 경비를 서거든요

그 경비를 피해서 옥상에서 떨어져가지고 죽은 사람도 수없이 있었어요 그때

직접 목격하신 건 몇 명 정도예요? 내 눈으로 목격한 것은

떨어져 죽은 애들 이름은 모르지만 구름다리에서 떨어진 애도 2~3명 봤고

옥상에서 떨어지면 바로 죽어요 거기서 떨어져서 죽은 애도 2~3명 돼요 내가 볼 때도...

직접 목격 하신 거예요? 예 예

박원장은 내가 못 봤고 박OO(박원장 아들) 이라는 인간을 한 번 봤는데

자기야 나를 알겠습니까 진짜 막 가가지고 뒤통수를 망치로 때리고 싶은 그런 분노가 끓더라고

내가 사람을 때려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면 죄값을 치르잖아 그렇죠?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 그럼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면 돼 내 죄값을

그럼 언제 나간다는 출소 날짜가 있잖아요

죄 짓고 들어간 죄인들은 출소 날짜에 희망을 품고 산다고

근데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희망조차 없었다니까

교도소 생활을 하다가도 억울하니까 무죄로 나오는 사람도 있잖아

개인적으로 해도 억울한데 이거는 한두 사람이 아니고 몇 천 명이라는 인원을 수용해서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서 했던 걸

정부에서 그런 일을 박OO이 에게 맡겼으니까 그렇게 했을 거 아니에요

그럼 박OO이도 벌을 받았잖아 근데 그거는 너무 미약한 거잖아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거 뿐이야

그걸로 끝내자? 그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어디 가서 보상을 받는데

요즘 박근혜 대통령 말하는 대로

비정상의 정상, 정상으로 돌려놔야 될 거 아니에요

그때 비정상이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때 생존자들이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많잖아요

이 사람들이 할일이 없어서 자기 자비 들여가면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다 어려워 거기 있다 나온 사람들은 제대로 사회 생활하는 사람들 별로 없어 진짜

우리도 이 나라에 태어난 국민이잖아

그럼 비정상을 정상화로 시켜줘야 될 거 아니에요

아 나는 진짜

아 진짜 나는 지금도 지옥 지옥해도 그런 생지옥이

그런 데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믿어나 줄까 싶어

그때 당시에 나와 가지고 내가 고발장을 접수하고

검사 앞에서 처벌해달라고 진술한 내용을 내가 혼자 밝힌다 해도 과연 누가 이걸 믿어주겠나 했어 사실은

차라리 지금처럼 피해 생존자들이 많이 있으면 한목소리로 여러 명이 그때 당시에 했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실제로 탈출해가지고 방송국 기자한테 이런 곳이 있다고 얘기를 해도

그 기자도 그걸 못 믿을 정도였다고 그랬으니까 그때 당시에

내가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에이 어디 그런 데가 있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마세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기자도

이게 지금은 효력이 안 되는 겁니까?

공소시효라는 게 지나서 그런 거예요?

그럼 특별법을 만들어주면 다시 해야지 나는 무조건 싸워야지

촬영협조

강신우 님께 감사드립니다.

감독 정승천 (daetongreyong@hanmail.net)

*정승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부산지역에서 장애인 문제, 환경 문제 등과 관련한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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