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2018년 결산]-⑨장애부모 투쟁

다사다난(多事多難). 매년 끝자락에 서서 장애인계를 뒤돌아 볼 때 드는 생각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청와대 삼보일배 행진, 대규모 삭발투쟁 등 대정부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이 결과 청와대가 9월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을 초청한 가운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추진을 위한 예산 확보가 뒷받침 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내년 장애등급제 폐지의 상황도 녹녹하지는 않다. 장애등급을 대신할 종합조사표에 깊은 우려가 제기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특정 장애유형의 서비스가 대폭 줄어드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관련해서는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가족허용 등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무엇보다 주목될만한 키워드는 장애인 공익소송이다. 몇 년 동안 지속된 신안 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에버랜드 장애인 놀이기구 탑승거부 소송에 관해 2심 재판부가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 밖에도 검찰이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고 진상규명의 의지를 밝히는 것은 물론, 문무일 검찰 총장이 피해자와 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한 것도 올해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다.

에이블뉴스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100위까지 순위를 집계했다. 이중 장애계의 큰 관심을 받은 키워드 총 10개를 선정해 한해를 결산한다. 아홉 번째는 ‘장애부모 투쟁’이다.

삭발을 하며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는 부모. ⓒ에이블뉴스DB

올 한해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노숙농성, 집단삭발, 삼보일배 등 처절한 투쟁으로 정부차원의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이끌어냈다.

부모들이 원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라는 명칭은 아니지만,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지원대책을 큰 그림에서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을 견인할 내년도 예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공존하는 상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지난 3월 20일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선언하고 치매환자와 가족을 책임지겠다고 한 것처럼 발달장애인도 국가가 책임져 달라는 외침이었다.

이 자리에서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실현을 위한 5대 정책과제를 제안하고 1000억원의 신규예산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5대 정책과제는 발달장애인 낮 시간 활동보장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 제도화,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지원사업 확대, 장애인 가족지원체계 구축,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운영 활성화 등이다.

세부적으로 ‘국가 수준의 발달장애인 지원종합계획 수립’,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지원 예산 910억 6000만원 증액’, ‘발달장애인 일자리 안정지원 위한 직무지원인 예산 51억원 신규편성’,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운영체계 구축예산 70억 5000만원 신규편성’, ‘전국 17개 시도 자조단체 운영 25억 5000만원 신규편성’ 등이 담겼다.

청와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부모들은 4월 2일 집단삭발(209명)을 감행,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을 알리면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발달장애인의 삶을 한 가정이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다음날에는 인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한 농성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특히 30일 부모와 장애인권 활동가 등 2500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광화문 만인소·삼보일배 행진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삼보일배를 하며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삼보일배 투쟁을 기점으로 부모들과 청와대·보건복지부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5월 1일 농성장을 방문한 청와대 한병도 정무수석과 미팅을 가졌고, 10일에는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장을 만나 양측의 입장을 확인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농성은 6월 4일 청와대 사회수석실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과 면담을 하면서 마무리 수순을 밟았다. 이 자리에서 정부차원의 종합계획 수립을 약속받고 세부내용을 추진하기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에 부모연대는 이튿날 긴급이사회를 열어 68일 간의 천막농성을 해제하고 새로운 투쟁(화요집회)으로 전환하는 것을 결의했다. 화요집회는 6월 12일 처음 시작해 현재까지 무기한 이어지고 있다.

복지부 등이 참여한 민관협의체는 수개월 간 부모들과 세부내용을 조율했고, 마침내 9월 11일 청와대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주기별 지원이 담긴 발달장애인 종합대책이다.

이 안에는 발달장애 조기진단·관리체계 구축, 방과후돌봄서비스 바우처 지원, 주간활동서비스 지원, 발달장애인 경제활동 참여 촉진,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중심 건강관리 체계 강화, 발달장애인 공공신탁 도입 등이 담겼다.

부모연대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수립에 대한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부모들이 요구했던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라는 명칭은 아니지만,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큰 그림에서 총망라했다고 평가했다.

기쁨도 잠시.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인원을 전체 대상자의 1%로 명시한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가고, 11월 부모들은 ‘예산확보’를 위해 국회를 대상으로 한 투쟁에 들어갔다. 지난달 14일 각 정당의 원내대표, 정책위원회 의장, 예결산결산위원회 간사 등을 만나기 위해 국회 앞 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예산증액에 대한 확답을 받기 위해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였고, 여당 정책위원회 김태년 의장으로부터 발달장애인을 당의 우선순위로 논의하고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답을 받고 해산했다.

또한 국회 예결위 소위원회가 정부예산안 심사 법정기한을 넘기면서, 여야 3당 예결위 간사의 비공개 소(小)소위원회를 통해 감액심사에 들어가자 부모연대 등은 예산확보를 촉구하며 국회를 향한 격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끈질긴 투쟁에도 국회는 장애 부모들의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대상자 5000명으로 확대를 위한 예산 증액 요구를 외면했다. 내년 예산이 전체 대상자의 1.6% 수준인 2500명이 받을 수 있는 190억 6200만원으로 결정된 것이다.

2014년 제정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유명무실한 현실에서 올해 장애 부모의 투쟁이 정부의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이끌어낸 점은 큰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장애 부모들이 요구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의 내용이 담긴 정부의 발달장애인 종합대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향후 관련 예산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예산 반영이 없는 정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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