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 제정으로 장애인방송 서비스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한국의 방송사업자 139개사 중 133개사가 장애인방송 편성의무를 달성해(2016년 기준, 방송통신위원회) 장애인방송 의무화 제도가 비교적 양호하게 정착하고 있다.

초기 장애인방송 서비스는 장애인방송 편성량 확대에 주목했다면 5년이 넘어선 현재는 질적 수준 제고방안을 구축해야하는 새로운 도약기(Take-off stage)를 맞고 있다.

양적인 부분이 달성된 만큼 이제는 장애인방송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이에 한국장애인재단과 한국시각장애이연합회은 30일 서울 은평구 상암동 KBS미디어센터에서 ‘시각장애인 방송 접근권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영국 사례 중심으로)’를 갖고 화면해설을 중심에 둔 질적 수준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30일 서울 상암동 KBS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방송접근권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영국 사례 중심으로)'에서 발제를 하는 선문대학교 하종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에이블뉴스

■화면해설의 체계적 제작시스템 구축 필요=발제자로 나선 선문대학교 하종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화면해설을 비롯한 장애인방송 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위해서 방송사업자들이 전담조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상파 4개사를 포함해 어떤 방송사업자도 화면해설을 비롯한 장애인방송 서비스 전담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다. 장애인방송 서비스 업무는 주로 편성팀과 운영팀이 편성정보 전달과 회계처리 등 부수업무로 처리하는 실정이다.

반면 영국은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에 접근성(accessibity)팀을 별도로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테면 BBC는 7-8개 부서로 구성돼 있고 상품, 디지털 서비스와 접근성, 외부 이익단체와의 관계, 수용자와의 관계, 접근성 등 업무를 각각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1TV(영국 방송사)의 경우 접근성 팀에 3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 팀에서 자막, 수화, 화면해설방송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BBC는 장애를 가진 직원들의 내부그룹인 BBC 어빌리티는 공식조직은 아니나, 장애인 시청자의 방송접근성에 대해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접근성팀의 구축은 방송사와 장애인방송 제작사와의 협업 관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예를 들어 BBC관계자와 에릭손(장애인방송 제작사)은 1년에 4차례 분기별로 미팅을 갖고 드라마 시놉시스의 공유, 대본의 공유 등 제반사항에 대해 협의를 한다.

특히 편성과 관련해서도 BBC관계자와 에릭손 담당자는 3-4개월마다 미팅을 하고 여기서 향후 방송될 프로그램들 가운데 각 채널마다 주력 인기 프로그램, 고예산의 대작, 혹은 주목받을 프로그램들 가운데 화면해설을 붙이는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하지만 한국은 영국처럼 편성에 대한 의견을 가전 조율하거나 방송 전이라 해도 화면해설의 원활한 제작을 위한 영상과 대본 등을 제공하는 것은 전무하다.

현재 한국의 화면해설제작은 화면해설 작가들이 본방이 끝난 후에야 방송사 홈페이지 또는 B2B 등을 통해 제공되는 다시보기 영상으로 작업하고 있으며, 대본 역시 방송 직전 또는 방송 후에야 제공되는 낙후된 작업환경 아래서 진행되고 있다.

하 교수는 "한국의 방송사도 장애인방송을 비롯해 다양한 접근성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할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구비해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화면해설방송 제작지침 구축도 관건=하 교수는 "화면해설을 비롯한 장애인방송의 프로그램 품질은 무엇보다 내용의 충실도에 달렸다"면서 "이를 위한 제작지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화면해설의 특성상 각 작가의 개성과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표준화는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각 방송사나 제작사들은 자체의 제작지침을 마련하고 상황에 맞춰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듀렉스 미디어는 본인들이 제작하면서 발전시킨 자체 제작가이드라인이 더욱 세세하고 심도가 있어 그것을 활용해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화면해설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프로그램의 의도나 프로그램에서 전하려 하는 메시지를 시각장애인들에게 맞춤형으로 제작하는데 기여하한다고 자평하고 있다(듀렉스 미디어 면담자료).

반면 한국의 경우 화면해설 제작 가이드라인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내부적으로 구축한 가이드라인 외에는 확인되는 것이 없다.

이 가이드라인은 화면의 측면인물, 사건, 배경, 자막, 촬영 및 편집기법, 음향 측면의 대상, 배경음, 효과음, 드라마 등 장르별 집필기법 등이 담겼다.

한시련의 경우 지난해부터 1년에 2회씩 화면해설 모니터 사례회의를 실시해 발견된 문제점들에 대해 작가들이 모여 토론, 문제해결을 도모하고 그 결과를 화면해설 제작가이드라인에 반영해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 교수는 "이 외의 다른 제작업체들의 제작가이드라인에 대해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만일 그러한 지침들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것들을 토대로 제작 시 필요한 요소와 절차들을 담은 표준화된 제작지침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비실시간 이동형 VOD 화면해설 활성화 돼야=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방송사 홈페이지의 다시보기 VOD 서비스는 프로그램 방영시간 외에 화면해설방송을 적촉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방송사의 웹 환경은 미흡한 실정. 현재(2017년 10월 기준) 4개 지상파 방송사의 장애인방송 미리보기는 EBS가 가장 잘 구비돼 있어 시각, 청각, 발달장애로 콘텐츠가 구별돼 있다.

KBS는 방영 프로그램과 종영 프로그램으로 나눠져 화면해설방송 다시보기가 가능한데, 드라마, 시사교양, 연예교양 장르로 제공되던 화면해설방송 다시보기가 연예오락이 제외돼 드라마 시사교양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저작권 문제로 인해 해외드라마는 다시보기가 불가하게 됐다. MBC와 SBS의 경우 장애인방송 다시보기가 전무한 실정이다.

웹을 통한 다시보기 서비스는 영국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정책의제다. 영국의 경우 2012년 9월 VOD 서비스를 규제하는 독립기구 ATVOD(The authority for television on demand)는 보고서를 통해 VOD에서 자막, 화면해설, 수화서비스 제공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VOD 서비스에서 방송 서비스 제공의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다(주정민 외, 2014).

하지만 영국은 VOD 장애인방송 서비스는 접근성의 영역에서 의무화되지는 않았고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Channel 4는 2016년 리우패럴림픽 중계를 자사 VOD 서비스를 통해 화면해설로 송출했다.

최근 상황을 보면 Channel 4, Channel 5, BBC 월드와이드 등은 모바일과 태블릿 앱을 통해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왼쪽부터)채널A 전략기획본부 플랫폼운영팀 이광훈 팀장, 시각장애인 시청자대표 정승아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화면해설방송 '질' 제고 다양한 목소리=하 교수의 발제가 끝난 후에는 방송사업자와 실 수요층인 시각장애인 당사자 등이 한 자리에 모여 화면해설방송의 질 제고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채널A 전략기획본부 플랫폼운영팀 이광훈 팀장은 "화면해설의 질을 높이려면 방송사가 낮은 품질의 화면해설방송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인을 제거하는 게 먼저"라면서 "방송사가 이런 유혹(낮은 품질의 화면해설 방송)에 빠지는 이유는 비전문 제작사가 화면해설방송 제작 단가를 싸게 부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송사가 높은 품질의 화면해설 방송 제작을 하게 하려면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정한 기준을 만들면 되는 것"이라면서도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규제 일변도의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수방송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폭넓은 장려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시각장애인 시청자대표 정승아씨는 "한 지인에게 왜 화면해설 방송을 보지 않는지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본인이 원하는 방송이 원하는 시간에 하지 않기 때문에 안본다는 것 이었다"면서 "방송사업자가 장애인방송 서비스 목표치를 몇 퍼센트 달성한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보는 게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요즘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로 원하는 방송을 다시보기로 볼 수 있다. 드라마, 예능 등 프로그램은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든 것이다. 화면해설을 입혀져 이 좋은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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