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세계 최대규모 학술지 출판사인 ‘엘스비어(ELSEVIER)’는 격월로 <선거 연구(Electoral Studies)>라는 저널을 발간하고 있다.

이 저널의 2016년 6월호에 실린 논문 ‘유럽 내 장애인의 정치참여: 권리, 접근성과 행동주의(The political participation of disabled people in Europe: Rights, accessibility and activism)’는 유럽 내 장애인의 정치참여 현황을 체계적으로 진단했다. 아태지역에서도 장애인의 정치참여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회에 걸쳐 ‘장애인의 정치참여 당위성과 증대되는 관심, 유럽지역 내 장애인의 정치참여조사 방법론 등’과 ‘조사 결과 분석 및 결론’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두 번째는 ‘조사 결과 분석 및 결론’이다.

정치 참여할 수 있는 ‘구조’에 주목

이 논문의 연구팀은 우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이하 UN CRPD)를 기준으로 장애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잘 확립되어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분류했다.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장애인이 투표할 권리나 선거에 출마할 권리를 국내 법규상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 Informing Families

먼저 권리능력(legal capacity)에 대하여는 단 3개국(에스토니아, 프랑스, 폴란드)에만 CRPD 제12조 ‘법 앞의 평등’에 관해 통과된 국내 법규가 존재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장애인이 투표할 권리나 선거에 출마할 권리를 국내 법규상 보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유럽연합의 28개국 중 단 7개국(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라트비아,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만이 권리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도 동등한 투표권을 명확하게 보장했다.

유럽연합의 18개 국가에서 장애인은 권리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투표권이 침해된 상황에서도 직접 그를 시정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덴마크, 에스토니아, 그리스, 아일랜드, 리투아니아, 폴란드 및 슬로바키아의 장애인은 그들의 권리능력에 대한 결정을 위해 투쟁한 다음에야 겨우 빼앗긴 투표권을 시정해보려 시도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투표소에 대한 접근성을 규정하는 법도 이 ‘구조적인’ 지표에 포함되었다. 장기거주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의 투표소에 대한 접근은 유럽연합 내 최소 18개 국가 내에서 특정한 법률로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는 거주시설 내에 투표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반면 벨기에, 사이프러스, 그리스, 룩셈부르크 같은 경우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투표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특정지어 규정하는 법률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실제 참정권을 보장하려는 ‘과정’에도 힘써

‘과정’ 지표는 ‘구조적’으로 만들어 놓은 법률 이상으로 정치적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실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본다. 이를 테면 ‘어떤 프로그램과 투자가 있어왔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과정 지표도 구조적 지표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지역적, 국가적 수준으로 나누어 다면적으로 조사되었다.

국제적 수준에서 이러한 투자의 양상을 잘 볼 수 있는 접근법 하나는 정부 주요 웹사이트의 장애인 접근성을 확인해보는 일이다. 이 연구에서는 정치적 참여와 관련된 웹사이트를 확인하는 활동으로 적용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유럽연합 내 최소 6개국(체코, 리투아니아, 몰타, 폴란드, 스페인, 스웨덴) 이상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접근성 기준을 만족하는 웹사이트로, 투표권을 침해당했을 때 어떻게 항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핀란드의 경우 국회 옴부즈만(Parliamentary Ombudsman) 웹사이트에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수어로 제공하였다.

세계적 수준에서 이러한 투자의 양상을 잘 볼 수 있는 접근법 하나는 정부 주요 웹사이트의 장애인 접근성을 확인해보는 일이다. ⓒ Progress

지역적 수준의 ‘과정’ 지표는 2014년 유럽의회와 지방자치선거 당시 투표의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크로아티아를 제외하고는, 선거 당국이나 관련 공무원에게 장애인권, 접근성, 합리적 편의에 대한 훈련을 규정한 법령을 갖춘 곳은 없었다. 그러나 법령 없이 실제로 그러한 훈련이 행해진 국가는 최소 9개국(벨기에, 사이프러스, 핀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스페인, 영국)이 있었다.

국가적 수준에서 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일반적인 투표소의 접근성을 높이고 국가 차원의 지침을 수립한 국가는 전체 유럽연합 회원국의 절반 이상인 17개국이나 되었다.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는 정부가 직접 국가 지침을 수립했고, 그 외에는 선거당국이나 공무원 집단 또는 비정부기구가 접근성을 증진하는 데 큰 노력을 한 곳도 있다. 포르투갈의 국가선거위원회는 한 국내 장애인단체로부터의 항의 후 투표소 접근성에 관한 지방자치 선거 지침을 발간하였다.

‘성취’의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성취’에 관한 지표는 개인적인 성취와 환경적인 성취를 포함한다. 개인적인 성취란 인물과 관련한 성취인데, 이를 테면 선거에서 뽑힌 장애인의 숫자 등을 포함한다. 하지만 유럽의회 차원에서 국가별 의회구성원의 장애 현황에 대한 공공 데이터가 따로 없는 관계로 본 연구에서 진행된 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7개의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장애를 가진 의원 수가 조사되었는데, 크로아티아가 7명으로 가장 많았고, 폴란드와 영국이 각 3명으로 동일했다. 그리스에는 2명, 포르투갈에는 1명이 있었고, 사이프러스와 룩셈부르크의 공식 데이터로는 의회에 장애인은 없었다. 다른 6개 국가에서는 비공식 데이터에서만 장애현황이 다뤄졌고, 남은 13개국에는 어떠한 데이터도 없었다.

성취 측정 지표를 통해 조사된 다른 내용 중 하나는, 장애인구가 비장애인구보다 정치에 더욱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장애인구 중 51%, 비장애인구 중 47%가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연령 측면에서 노인 인구에 의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이며, 비슷한 연령대의 그룹을 비교할 때 체계적인 연결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응답자 중 장애인은 그들이 속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잘 운영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비장애인보다 더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10점 만점 중 장애인은 5.3, 비장애인은 5.4)

환경적인 성취에서는 접근성을 빼놓을 수 없다. 성취 측정 지표 내에서 접근성은 방송매체 및 투표소와 관련이 있었다. 정보접근성(방송매체)은 정치적 참여의 전제조건이었고, 특히 접근 가능한 형태의 매체가 장애인의 참여를 보장하는 데에는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접근성 증진은 국제적 거버넌스 프레임워크인 UN CRPD 9조(접근성)에서 국가들의 의무로 규정되고 있다.

연구에서는 또한 정치적 참여에 관하여 TV와 인터넷 기반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확인했다. 선거 정보에 대한 TV 방송의 자막, 수어 지원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었다. 그러나 28개국 중 최소 13개국이 매일 뉴스에서 자막을 지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어도 그와 비슷하게 지원되었으나 지원범위가 더 좁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소 접근성의 경우, 접근 가능하다고 평가된 투표소의 비율이 국가별로 2%에서 50%로 다양했지만, 50%보다 높은 국가는 없었다. 12개 국가에서 일부 공식적인 데이터는 정부에 의해 수집되기도 했지만, 모든 도시를 포함하지 못하거나 모든 장애 유형을 포함하지 못해서 불완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유럽연합과 그 회원국에서 개발된 권리 기반의 지표를 사용하여 국제적인 수준에서 장애인의 정치 참여를 다루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조사 시 사용된 질문에서 ‘권리’가 확립된 건 국제적 또는 지역적 수준에서 초국가적 거버넌스(UN CRPD)를 통해서였지만, 확립된 권리가 실제로 행해진 것은 국내 또는 현지(local) 수준(각국의 국내법규)에서였다.

연구 결과, 현 시점에서 장애인이 정치적 참여라는 권리를 이행하는 데 있어 부족한 점이 드러나기도 했고, 현실과 차이가 나서 후속 연구를 필요로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투표하고 입후보하는 데 있어 자유와 사생활을 보장해달라는 욕구가 존재한다.

UN CRPD 제12조(법 앞의 평등), 제21조(의견, 표현 및 정보접근의 공유)과 제22조(사생활 존중)에서 이러한 욕구가 명시되었다. CRPD가 거의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비준되었다고 해도, 모두를 위한 기본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데에는 아직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소외된 이들의 유권자 등록은 국내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장애인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특히나 더더욱 그렇다.

유럽지역 내에서 장애인의 참정권은 권리, 접근성, (행동주의를 통한) 대표성보장을 중심으로 하여 향상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조금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하는데 각국의 개별적 노력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 출처:

Electoral Studies (2016). The political participation of disabled people in Europe: Rights, accessibility and activism.

※ 이글은 인천전략이행 기금 운영사무국을 맡고 있는 한국장애인개발원 대외협력부 윤주영 대리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인천전략’은 아‧태지역에 거주하는 6억 9천만 장애인의 권익향상을 위한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2013~2022)의 행동목표로,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인천전략사무국으로서 국제기구협력사업, 개도국 장애인 지원 사업, 연수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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