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장애인생활신문

정부가 내놓은 장애인연금법안은 현행 장애수당제보다 중증장애인 수급자의 범위를 약간 더 넓히고 보장수준을 약간 더 높이는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서 애초에 설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점투성이의 법안이다. 장애인연금법안의 문제점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명칭부터 틀렸다. 정부법안의 명칭은 ‘중증장애인기초장애연금법’으로서, 명칭에 수급권자가 중증장애인으로 국한되어 있다. 대상을 중증장애인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18만6천명의 경증장애인이 원초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법의 명칭을 ‘장애인연금법’으로 바꾸고 일정소득 이하의 경증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이 수급권자가 되도록 지급 대상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다.

둘째, 부양의무자 기준을 빼야 한다. 법안에는 1촌(부모 및 자녀)의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의 소득?재산?생활수준까지 고려하여 선정기준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제4조). 기초장애연금은 가족의 특성 이전에 개인의 특성에 따른 소득보장정책이다. 현행 차상위계층 장애수당 수급권자 선정기준에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보지 않고 단지 수급권자 가구의 소득과 재산만 고려한다. 그런데 만약 장애인연금법에 부양의무자 기준이 도입된다면 차상위계층 장애수당을 받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애수당도 못 받고 연금도 못 받게 될 것이다. 현행 장애인 소득보장제도를 개선하기 위하여 연금제도를 도입하자는 기본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빼야 한다. 기초노령연금에는 부양의무자 규정이 없다. 기초노령연금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빼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연금액수가 얼마가 될지 불확실하다. 기초장애연금의 수급권자인 중증장애인에게는 장애수당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아니한다(법안 부칙 제6조). 종전에 받던 장애수당이 없어지기 때문에 원래 장애수당을 받던 장애인들에게는 장애수당 대신에 장애연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연금급여는 기본급여와 부가급여로 구성되는데 장애인 소득보장 성격의 기본급여는 2010년에 9만1천원이 지급될 예정으로서 현재 울산의 중증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받는 총액인 18만원의 반밖에 되지 않는 적은 액수이다. 장애로 인하여 더 필요한 생계비를 보전해주는 성격의 부가급여액은 대통령령에 위임(법안 제6?7조)되었다. 따라서 보장수준이 얼마가 될지 확실치 않다. 매년 장애인단체들이 연금액수 인상 투쟁에 나서지 않더라도 급여수준이 일정하게 보장되려면 부가급여 지급기준은 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연금법에 어떤 기준으로 얼마만큼 지급하겠다고 명시해야 할 것이며 최소한 장애로 인하여 더 필요한 최저생계비 정도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안은 2010년의 소요예산을 8천652억원으로 추정한데 비하여 박은수 의원 안은 2조3천억원으로 추산했다. 예산은 적어도 2조원은 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예산은 중앙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기초장애연금 비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부담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부담 비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법안 제20조). 따라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의 경우에 선정기준이 더 까다롭게 적용되어 수급권자들이 배제될 수 있다. 장애인의 기본생활보장과 같은 생존권과 관련된 비용은 중앙정부가 부담함으로써 장애인의 생존권이 지방정부의 재정상황에 따라서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계는 지난 7년 동안 장애연금법의 도입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 해왔다. 그러나 그 노력의 결과물인 법안은 애초에 설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점투성이의 법안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못된다. 장애인은 똘똘 뭉쳐서 장애인계의 요구가 받아 들여 지도록 활동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는 내년으로 법안 상정을 미루는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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