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 장애인생활신문 기자. ⓒ장애인생활신문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기자로서 첫 발을 내딛고 취재현장에서 기어다니며 활동보조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수많은 장애인을 만났습니다.”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인천시장 표창을 수상한 이재상 기자는 지난 2005년부터 횟수로는 5년 째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의 애환과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뇌성마비 장애를 딛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도 남모르는 아픔이 많았다고 한다.

“일반계 고등학교라서 주변의 깔봄과 괴롭힘 등 심적 고통 속에서도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건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는 냉철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로 언어소통의 어려움이 많아 회사에 취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기자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인천지사를 방문하게 됐고, 그때 장애인생활신문의 기자가 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무작정 조병호 사장님을 찾아가 기자를 하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땐 신문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돼 흔들려도 열심히 현장을 뛰어다녔어요.”

이 기자는 취재현장을 다니며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고 했다. “장애인 권리를 위해 피땀 흘리며 투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저 베푸는 인정과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취재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서울의 어느 역 리프트 추락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떠올렸다. 안면이 있는 여성장애인에게 “이렇게 규탄대회를 하면 뭐가 달라지느냐”고 농담 삼아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성장애인은 “그럼 가만히 있어야 하겠냐, 기자님이나 오지 마세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고. 지금도 가끔씩 취재현장에서 그녀를 만나지만 밝은 미소로 인사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자는 이 자리를 빌려 그 여성장애인에게 한 번 더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기자라고 해도 기자도 아닌 게 기자라고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양천구청 사건이 터진 후 국회의원 면담이 있을 때였어요. 다른 기자들은 다 출입을 허가하는데 저는 장애인 활동가인 줄 알고 명함을 보여 줘도 길을 열어주지 않더군요.” 그때 이 기자는 기자라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재차 확인을 요구했던 그들로 인해 기분이 몹시 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로서 기뻤던 적도 많다고 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돼 중증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내며 인권을 부르짖을 때, 그 현장에서 취재를 할 때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기뻤다고 한다.

“아직도 저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기자의 사명감을 안고 오늘도 현장을 지킵니다. 우리 모두는 비록 오늘이 힘들고 초라해도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버텨내야 합니다.”

장애인생활신문 황혜선 기자 / 에이블뉴스 제휴사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