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제4기 멤버로 참여해 필리핀을 방문했던 모습. ⓒ장애인생활신문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는 장애·비장애 청년으로 제4기 드림팀을 구성해 6대륙 한국, 미국, 독일, 뉴질랜드, 호주, 필리핀을 방문했다. 이들은 8박9일에 걸쳐 현지 연수를 갖고 장애인 권리실현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에 본지는 미국과 독일, 뉴질랜드, 호주에 이어 이번 호는 필리핀 편으로 장애청년들이 전하는 생생한 체험담을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회복지사로서 자신을 재조명해보는 계기가 돼”

문미정/햇살노인요양병원 사회복지사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난 영도가 떠올랐다. 예전에 일했던 보호작업장에서 근로자이기도 하지만 같은 교회 동생이기도 한 영도. 2006년도 작업장에서 해외여행 갈 때 같이 못간 것을 내가 더 아쉬워했는지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영도는 지적장애 3급으로 경미한 간질, 당뇨, 비만이 있는 친구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굳어지고 말을 못하는데 있다. 정확한 진단은 아니지만 선택적 함구증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다 떨 때와 말하지 않을 때가 상이하게 다르다. 기분이 나쁘거나 꾸중을 들을 때도 표정이 굳고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굉장히 낯가림이 심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암튼 이런 영도가 외국인과 말을 한다면? 외국인과 함께 생활한다면 영도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난 영도에게 해외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 많은 기대를 하고 사업설명회에 참석했다.

장애청년드림팀 제4기 멤버로 참여해 필리핀을 방문했던 모습. ⓒ장애인생활신문

사업설명회에서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난 좀 실망스럽고 합격이 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왜냐하면 단순히 해외를 경험하는 수준의 연수가 아니라 실제로 직접적인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 연수였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어려워 보이는 연수의 목표가 학습능력과 사회성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약간 기분까지 상했다. 그래서 약간은 불만스러운 태도로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연수의 목표 자체가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장애인들에게는 소외된 프로그램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영도의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협회 측에서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줬고 과거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장애인도 함께 연수를 다녀온 케이스를 말해주면서 지원해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돌아오는 길에 사업설명회를 영도와 같이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협회 측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인천에 오자마자 영도와 여행계획을 상의했다. 서점에 가서 필리핀 관련 책도 보고 여행책도 하나 샀다.

연수를 준비하면서 꽤 힘들게 영도와 공부하고 운동하고 회의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했던 것 같다. 특히나 우리 팀의 경우 체력훈련에서부터 언어훈련까지 다른 팀에 비해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았는데 해외에서 9일 보다는 그전 준비기간 동안의 활동이 영도가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영도는 연수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몸무게를 15kg이나 감량하였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새벽 5시 마다 일어나서 같이 운동을 다녀준 올케언니 덕이 컸다. 이 자리를 빌려 올케언니의 자원활동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 영도가 일주일에 한번 씩 있는 영어훈련에 참석한 것도 영도에게 굉장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비록 늘 한마디도 못하고 훈련실을 나왔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다른 장애인들이나 협회 직원들과 친해질 기회를 못 가져서 전체 모임 때마다 또 벙어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애청년드림팀 제4기 멤버로 참여해 필리핀을 방문했던 모습. ⓒ장애인생활신문

영도가 연수를 통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는 같이 연수에 참여했던 다른 팀원들이 더 잘 안다. 처음엔 한마디도 못하고 인사하거나 질문만 해도 얼굴표정이 굳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안면근육이 떨리고 했었는데 연수결과를 보고할 쯤에는 마이크를 잡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도 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는 연수에 도전했던 연수생 중 가장 큰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자에게 수여하는 최우수 도전자상을 영도에게 주었다. 그리고 영도가 사회적응 훈련을 받고 있는 인천장애인재활협회에서는 최우수훈련생상도 받았다. 영도에겐 정말 여러 가지로 상과 칭찬이 풍성한 2008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여자 친구까지 생겼으니 정말 굉장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음에 틀림없다.

여정을 돕는 협력자로 연수에 참여한 나에게도 이번 연수는 참 특별하다. 이번 연수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두 번째 장거리 해외 경험 이었다. 영도를 위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떠났지만 사실 나에게 공부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팀의 경우 도전주제였기 때문에 필리핀 현지의 사회복지에 대해서 공부할 필요는 사실 없었지만 연수 참가자로서 필리핀에 대해 공부했던 것은 내 자신에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5년 전 해외봉사단원으로 있을 때는 몰랐던 필리핀 사회복지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더불어서 필리핀에서 살아봤기에 냉소적으로만 보지 않게 되는 원만한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일이었다.

장애청년드림팀 제4기 멤버로 참여해 필리핀을 방문했던 모습. ⓒ장애인생활신문

또 좋았던 일은 다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장애인 관련 사회복지사로 8년을 일했지만 난 지적장애만 알지 다른 분야의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연수를 통해서 지체장애, 청각장애인들에게 좀 더 관심이 생겼다.

해외에서 연수기간 동안 영도와 내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사회복지사로서 내 자신을 다시 조명해보게 되었다. 늘 입으로는 지적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말하였지만 연수 내내 영도를 거의 끌고 다니는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교사요 좋은 사회복지사라 생각하고 주장하면서 막상 현장에서 나는 별로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협회에 결과보고서를 내면서 앞으로는 장애인들과 조금 더 평등한 관계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협력하여 이루어가게 되길 바란다고 했었는데 연수를 마치고 몇 개월이 지난 요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좀 더 반성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도는 여전히 다이어트 중이다. 난 여전히 다이어트와 일상생활의 규칙에 관한 잔소리를 해댄다. 내 마음속엔 ‘영도에겐 이런 것들이 필요해’ 라고 주장하는 마음과 ‘그냥 그렇게 살게 둬’ 라고 주장하는 마음이 같이 있다. 그래서 영도는 늘 나의 잔소리와 싸우고 나는 늘 내안에 소리들과 싸워야 한다.

언제쯤 내가 꿈꾸는 수준의 동등하고 평화로운 삶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될까?

오늘 다시 글을 쓰면서 그동안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마음을 다시 세우고 오랫동안 쉬었던 영도와의 진지한 대화를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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