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6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27편 접수됐다. 이중 최유리씨의 ‘우리 집에 DJ가 산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20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20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세 번째는 에이블뉴스 대표상 수상작인 김명희씨의 ‘우산지팡이’다.

우산지팡이

김명희

지하철역에서 그를 기다린다. 지팡이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지만 그는 아니다. 이내 몇 번의 지팡이 소리가 연신 들린다. 아뿔싸, 오늘이 비 오는 날이란 걸 또 잊고 있었다. 우산 끝이 바닥에 닿을 때 지팡이 소리가 났던 것을.

나는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사다. 그와 같이 움직여 온 지도 십여 년이 넘었으니 그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본인이 아니고선 그가 겪은 지난 시간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녹록지 않은 날들을 오롯이 공감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는 지하철로 통근한다. 익숙한 곳은 무리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기에 큰 우려는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출근하면서 가볍지 않은 사고가 있었다. 지하철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구르고 만 것이다.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나고, 한편으론 무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토로한 건 사람들로 인한 상처였다.

그렇게 나뒹굴어 있음에도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 하나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었노라고. 바쁜 출근 시간이라는 건 차치하더라도 그렇게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은 건 아픈 일이라 했다. 그의 상처 난 무릎을 보며, 그 상처만큼이나 미안하고 속상했다. 섣부른 동정은 장애 당사자의 맘에 생채기를 남긴다. 그러나 그런 차가운 무관심은 맘에 옹이를 만들어, 두고두고 통증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나는 시각장애라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잘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할머니가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내 부모님은 너무 바쁘고 힘들게 사셔서 세 살 터울의 우리 남매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우린 자연히 집에서 유일하게 '노는 손'인 할머니의 손에 맡겨졌다. 시각장애가 있는 분이,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우리를 어떻게 돌보셨을까.

할머니는 내 허리에 광목천을 묶고, 당신의 손목에 다른 한쪽을 단단히 조여 매어 그것으로 연결고리를 삼으셨다. 난 늘 할머니가 묶어 놓은 그 광목천의 반경 안에서 놀아야 했고, 할머니도 그것으로 내 위치를 가늠하셨다. 할머니도 나도 그 좁은 공간에서 뭘 할 수 있었을까.

방 가장자리의 메흙을 손으로 파서 먹은 기억이 남아있다. 시골집은 보통 진흙이 섞인 '메흙'으로 뼈대 사이를 메우고 방을 만들었는데, 난 방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다가 방구석을 조그맣게 후벼 파서 메흙을 먹곤 했다고 한다. 일을 다녀오신 엄마가 보니, 아이 입가에 흙물이 들어 있었노라고, 그래서 방을 보니 그렇게 군데군데 파헤쳐 져 있었다고 했다.

그런 아이의 상태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시는 할머니도 불쌍했고, 그렇게 흙을 파먹으며 말갛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맘이 아팠노라고 엄마는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손에 자라서인지 난 꽤 커서도 할머니 곁에서 맴돌았고, 여전히 방 가장자리의 흙을 손으로 파먹었던 것 같다.

그 친근하면서도 그리움이 섞인 흙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요즘도 그 흙의 냄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코끝에서 그때의 그 내음이 감돈다. 그렇다. 그리움이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하루 종일 그 좁은 방에서 놀아야 했던 아이가, 일을 마치고 저녁에야 들어오시던 엄마를 반기던 마음과, 순간순간 기다렸을 그리움.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우린 할머니의 곁에서 놀았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 드리고, 잔심부름을 하며 할머니를 챙겨드려야 한다는 생각. 그분의 장애에 대해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할머니의 반경 안에서 우리가 사라지면 할머니는 불안해하시며 큰 소리로 우릴 찾으셨고, 행여 밖에서 놀던 내가 울음을 터트리기라도 하면 할머니는 맨발로 뛰어나와 내 위치를 확인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사랑은 초등 저학년 때쯤 봄 소풍을 다녀오던 날 멈췄다. 할머니 드리려고 눈깔사탕도 사 왔는데, 우린 더 이상 할머니의 방에 갈 수도, 그분이 우릴 찾던 음성도 들을 수 없었다. 어린 그때의 그 상실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해 알 수 없었던 나는 그저 할머니의 부재가 낯설고 서러웠던 것 같다. 엄마 말씀에 의하면 한동안 내가 맥이 빠져 있었다는데, 사실 난 철이 들고 나서도 내내 할머니가 그리웠고 속이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렇다. 나의 이용자 '그'의 이야기는 내 할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씩씩하고 쾌활하게 사는 그에게서 그런 생채기가 생기면 가슴이 저 밑으로 '철퍼덕'하고 내려앉고, 그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다. 객쩍은 농담과 시답잖은 위로를 건네 보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음도 안다.

뒹굴던 바닥에서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는데 그 지팡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마냥 쓰렸다는 말을 들으며 난 과연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이 얼얼했다. 황망하게 '장애인식개선'에 대한 언급은 할 생각이 없다. 넘어진 당사자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중요치 않다. 그러나 최소한 그런 상황에서 손을 내밀 수 있는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장마가 시작된다. 늘 그랬듯 난 지하철역에서 그를 기다리며 수많은 '우산지팡이 '소리를 들으며 진짜 '흰 지팡이'가 나타날 때까지 멈칫 멈칫 고개를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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