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은 장애인일자리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매년 ‘장애인일자리사업 우수참여자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9년 공모에는 17개 시·도에서 75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총 13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세 번째는 특화형일자리(시각장애인안마사파견사업)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박혜진 참여자의 ‘볼 수 없는 내게 희망을 보여준 일자리’ 이다.

볼 수 없는 내게 희망을 보여준 일자리

박혜진(대전광역시)

저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파견사업’에 6년 2개월 째 참여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50대 중반의 시각장애 1급 가정주부입니다.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아 매우 불편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눈으로 보기보다는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며 사물을 파악하고, 사람을 알아보았습니다. 늘 큰 불편함을 안고 살았지만, 당시 저희 부모님께서는 맹학교가 있는 것을 모르셨기에 정상인들과 함께 일반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도 제겐 늘 버거웠습니다.

어렵게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무의미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올케언니가 병원에 가서 장애등급을 받아 동주민센터에 등록하면 작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길로 병원에 가서 시각장애 1급 진단을 받았고, 장애등록을 하였습니다. 센터에서 산성동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을 안내해 주어 방문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제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고, 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정상인들 속에서 이방인처럼 지내던 저였는데, 그곳에서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남 자체만으로도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늘 제가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저보다 악조건을 지닌 전맹인들을 만나며 처음으로 ‘삶의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과 교류하며 ‘안마’에 대한 일도 알게 되었습니다. 안마는 시각장애인들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임을 알고 호기심이 생겼지만, 선뜻 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 번도 일은 커녕,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무의미한 시간은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엄마, 나도 학원 보내줘! 친구들은 다 학원 다닌단 말이야”라고 말하며 제 품에 안겨 엉엉 울었습니다. 남편의 수입으로는 먹고살기에도 빠듯했기에 사교육은 엄두도 못 내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저는 ‘이제 내가 일을 해서 우리 아들 학원도 보내주고 남편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눈물은 저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저는 비로소 안마 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체하지 않고 (사)대한안마사협회 수련원에 입학하여 2년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시각장애인 안마사파견사업에서 참여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8월 말이면 74개월, 만 6년 2개월이 됩니다. 어디에서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장애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할 수 있어 기뻤고,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한달 일정표에 따라 날마다 다른 복지관 및 주관보호센터를 다니면서 안마를 해주는 것인데,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특히 처음에는 제 안마를 받으시고 “별로 시원하지도 않네! 이 시간에 차라리 물리치료를 받는게 낫겠어!”라며 역정을 내시는 어르신들을 마주하며 몸은 몸대로 지치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을 시작하고 1년 뒤, 신우신염에 걸려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입원기간동안 누군가는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 거면 이제 일 그만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저는 그래도 제 안마를 받고 좋아하시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얼른 나아서 일터로 복귀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공백기에 저는 일의 소중함을 더욱 크게 느꼈습니다.

퇴원 후 저는 어르신들의 볼멘소리는 저를 더욱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여기고, 저를 격려해 주시는 말씀은 더욱 감사히 여기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안마가 끝난 뒤 수고가 많았다, 고맙다며 주머니 속 고이 넣어두신 사탕을 주시는 어르신. 시원한 음료수를 대접해 주시는 어르신. 두 손을 꼬옥 잡으며 “힘드니까 이제 그만해도 돼”라고 배려해 주시는 어르신. 무엇보다 “안마를 받고 몸이 정말 많이 좋아졌어!”, “병원 물리치료보다 안마가 훨씬 좋아!”, “역시 기계로 하는 것과 사람 손은 달라!”라며 감사의 표현을 해 주시는 어르신들로 인해 정말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이처럼 어르신들의 치료자가 되어드릴 때도 많지만, 때로는 그분들이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느껴져 그분들에게서 도리어 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피곤할 때도 많지만, 어르신들을 섬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큽니다. 제 안마를 받으시고 불만족하시는 분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별도로 안마 강의를 수강하는 등 자기 계발을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저희는 일자리를 얻었고, 저희를 통해 어르신들은 안마를 받으실 수 있기에 이 사업은 진정한 'win-win'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 이 날만 기다렸어!”라며 안마를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분들이 아주 많이 생기셨습니다.

안마를 받으시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리시는 분들도 계시고, 안마 받는 날에 일이 있으시면 서둘러서 일을 보시고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처럼, 안마는 저와 수혜자들 모두의 생활 가운데 정착되었고,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일자리는 제게 ‘무엇이든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안마’라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해 냈듯이, 다른 분야도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복지프로그램을 통해 평소에 관심 있던 오카리나, 하모니카, 난타, 영어, 제과제빵 등에도 도전하여 꾸준히 배우며 제 능력을 계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인 안마사파견사업에 참여자로 일을 하면서, 남편에게는 ‘무거운 짐을 나눠들어주는 고마운 동반자’가 되었고, 아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멋진 엄마이자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 능력 있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비로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정상인들 사이에서 늘 그들보다 뒤쳐져 자신감이 결여된 채 삶을 살았던 박혜진은 이제 없습니다. 그 자리엔 ‘자신감 있는 여자 박혜진’이 서 있습니다.

시각장애인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안마가 필요한 어르신들. 모두에게 힘이 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파견사업’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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