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은 매년 장애인 일자리 확대 및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장애인일자리사업 우수참여자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8년 공모에는 17개 시·도에서 133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3편이 선정됐다. 수상작을 연재한다. 두 번째는 복지일자리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임종기 참여자의 ‘일하며 얻는 행복’이다.

일하며 얻는 행복

임종기(광주광역시 남구)

1987년 초, 중학교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부산으로 학습과 일을 하러 갔습니다. 외삼촌 소개로 먼 친척이 되는 형님 집에서 먹고 자며 일도 배우고 저녁에는 공부하러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즐겁고 보람 있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처음 검정고시에서 국어, 윤리, 영어 세 과목을 좋은 점수로 합격 했습니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습니다.

좋지 않는 일을 계기로 형 집일을 그만두고 공부도 잠시 미루면서 하숙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부산 하숙비는 12만원이었는데 내 월급은 20만원 정도였습니다. 궁핍하고 가난한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19살 되던 해,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했던 부엌 가구 부장님의 소개로 자신이 다니는 싱크대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가구장이’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더니 얼마 만에 반장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그에 대한 대가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고, 하루하루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회사에 기숙사가 제공이 되어 생활하는데 편리했고, 수입도 늘어나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12월 9일 내 생에 기억되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 왔습니다. 국립나주 정신병원 정신과(교육병동)에 입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퇴원하고 또 입원하고를 반복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조금 회복되어 퇴원하게 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검정고시였습니다. 사회에서 홀로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형의 도움을 받아 주경야독하면서 1998.4.5.일 고졸 검정고시 최종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2010년 12월 11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8년이 되어갑니다. 신혼여행 다녀온 후 저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돌봄이 필요했던 아내는 시설에 입소했습니다. 신혼생활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2015년에 직업능력 개발원(기계과) 1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해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서툴고 실수의 연속이었습니다. 관급 봉투를 생산하는 회사였는데, 기계소음과 빠른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6개월 만에 퇴사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했는데 16일이 모자란다 하여 그것마저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장애인 고용공단의 소개로 부엌가구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해 봤던 일이라 수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겨우 2달 근무하고 정신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이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국립나주병원에 6개월 동안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30번 입원이 된 것 같습니다. 정신병원에 30회를 들락날락 하게 된 시초는 23살 때, 부엌가구 회사에서 상사와 말다툼으로 인해 정신병이 발병되어 국립 나주 병원에 처음 입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정신병이 어떤 병인지도 잘 모를 때였습니다.

부산 시립 병원 1번, 호남 병원 3번, 국립 나주 병원 30번의 수많은 입, 퇴원으로 내 병도 하나씩 하나씩 치료되어 갔습니다.

아프면 입원하고 또 퇴원해서 일하기를 무던히도 여러 번 했습니다. 미련하게 살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2016년 9월 1일부터 2017년 2월 17일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또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일상이 되어버렸던 나의 입원과 퇴원의 연속이었던 삶이 이 후로는 한 번도 입원하지 않고 왜래 치료만 받고 있습니다.

일을 너무도 하고 싶어 취업 박람회에 여러 번 서류를 넣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장애 3급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6개월을 보냈습니다. 저를 아는 분들은 너무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2017년 12월, 광주광역시 남구청에서 “노인, 장애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를 뽑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원서를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은 속히 왔습니다. 드디어 면접날 어떻게 면접을 봤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 되었습니다.

2017년 한 해가 질 무렵 구청에서 일자리 담당 부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금년에는 탈락되었다며 다음 기회를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도 많이 서운했습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은 한곳도 없다는 것이 서글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구청에서 2018.1.2. 일자리 공백이 생겼다며 내일부터 장애인단체에서 사무실 청소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앞, 뒤 가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기대되고 행복했습니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나의 일상을 생각하며 마음은 너무도 들떠 있었습니다. “일을 얼마 만에 해보는 거지?”

3개월이 지났을까 구청 복지 기획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소득이 발생해서 수급비를 깎는다는 것이었다.

생계비 50만원에서 생계비 30만원을 공제하고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청 일자리 사업으로 월 42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에서 수급비 30만원 공제하면 수입은 12만원이고 교통비 6만원 정도 제외하면, 날마다 출근하여 생긴 수입은 6만원 정도 됩니다. 그럴지라도 일하는 것이 더 좋기에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일을 하면 공제한 금액이 있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일을 포기하게 됩니다.

나에게 있어 일은 삶의 원동력이며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개인의 능력을 봐 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출근하여 일을 하고 마친 후 퇴근합니다.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나에게는 둘도 없는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이 행복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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