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이용 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사람살이를 나누고자 ‘2018년 장애인거주시설 삶이 있는 이야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장애인 일상 속의 여가, 취미, 학교, 직장, 자립생활 등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시설 직원이 총 82편의 사연을 공모하였으며, 그중 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여섯번 째는 장려상 ‘삶이 있는 군산 나눔의집 이야기’다.

나눔세상 나눔의집 직원 박영희

<병원 가는 날>

“기침해요.”

“언제부터 기침했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아픈 입주인이 찾아와 이야기합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아팠는지, 지금은 어떤지 이야기 듣고 병원에 진료받으러 갑니다.

병원 가는 길에 입주인에게 묻습니다.

“지금 어디 가요?”

“병원요.”

“어느 병원에 가요?”

“○○병원요.”

“병원에 가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뭐죠?”

한참 생각한 후에 대답합니다.

“접수”

병원에 가서 당사자가 해야 할 일에 관해 이야기 나눕니다. 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할 것을 연습해도 막상 병원에 도착하면 당사자 스스로 접수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기도 하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간호사가 알아듣지 못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재치 있는 정수(가명) 아저씨는 본인이 가진 복지카드를 보여주고 접수합니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해서 왔어요?”

의사 선생님 물음에 불편한 곳을 잘 얘기하는가 하면 싱글싱글 웃으며 직원을 쳐다보기도 하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하다 “아~ 몰라요.”하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의사 표현이 가능한 입주인은 의사 선생님께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빨리 나을지 물어보고 얘기 들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기다립니다.

혼자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입주인은 스스로 병원에 다녀오도록 합니다. 혼자 병원에 다녀오는 일은 즐겁지만, 의사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전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메모지에 적어 올 수 있는지 부탁합니다. 본인이 기록하기 어려우면 간호사에게 부탁하도록 안내하고 병원에 부탁합니다.

<오늘은 웬일이냐?>

중이염을 자주 앓는 재영(가명) 씨가 어느 날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고 와서 하는 말입니다.

“원장님이 오늘은 웬일이냐? 했어요.”

“왜?”

“제가 어떻게 해야 빨리 나을지,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물어봤거든요.”

“아~ 그랬구나. 그래서 뭘 조심해야 하는지 얘기해 주셨어요?”

“네. 물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래요.”

“언제까지 오래요?”

“다 나을 때까지 며칠 더 오래요.”

“얘기 들으니까 어때요?”

“좋아요.”

재영 씨가 상기된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다른 입주인도 스스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가구 지원 전담직원과 의논하여 계속 안내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수(가명)씨의 건강검진>

우리 집은 병원에 진료받으러 가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입주인은 시내버스로, 도움이 많이 필요한 입주인은 기관차를 이용하고 직장이 있거나 외부활동이 많아 일정이 빠듯한 입주인은 택시를 타기도 합니다.

시내버스로 병원에 가려면 준비해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먼저 버스노선과 시간을 알아보고, 다른 일정에 지장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병원에서 매년 나눔의 집 입주인과 직원들은 정기건강검진을 받습니다. 올해는 간염, 간 기능, 신장, 영양 상태 등과 기존 질환 중심으로 검진하기로 했습니다.

건강검진 일정 조율이 가장 힘든 사람은 직장이 있는 입주인입니다. 입주인 개인 일정뿐 아니라 직장 근무시간을 확인하여 조율해야 합니다. 직장에 얘기하여 조율하는 것은 전담직원이 애써주십니다.

○○택배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재수 씨는 직장 휴무일인 월요일에 건강검진 하겠다고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에 직원을 찾아와 말합니다.

“저 다음 주 월요일에 건강검진 못 해요.”

“왜요?”

“○○사우회에서 월요일이 저 쉬는 날이라고 새벽에 출사 가자고 해서 간다고 했어요.”

○○사우회는 평생학습관에서 사진 촬영 기법을 배우면서 올 7월부터 활동하게 된 사진 동아리입니다.

“재수 씨가 월요일에 건강검진 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저도 어젯밤에 얘기 들었어요.”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저로서는 건강검진이 먼저지만 재수 씨 입장에서는 요즘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는 사우회 형님들이 권하는 사진 출사가 먼저겠다 싶습니다.

“그럼 건강검진은 어떻게 할까요?”

“화요일에 갔다 올게요.”

“화요일엔 출근해야 하잖아요.”

“일 끝나고 오면서 검사하고 올게요.”

“건강 검진하려면 전날 저녁부터 금식해야 하는데 배고파서 어떻게 하려고요?”

“그래도 해야죠. 갔다 올게요.”

“○○택배에서 ○○병원에 가려면 몇 번 버스 타야 하는지 알아요?”

대중교통을 자유로이 이용하는 재수 씨는 저보다 시내버스 노선에 환합니다. 건강검진은 화요일에 받기로 하고 병원에 연락합니다.

<치과는 무서워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현아(가명) 양은 치과 가기가 두렵습니다. 정기검진 받으러 다닐 때도 어린 동생들보다 더 무서워했습니다. 직원이 치과 검진이 필요한 이유를 얘기하고 또 해도 현아 양은 치과가 무섭습니다.

현아 양이 검진받겠다고 마음먹고 치과에 가도 진료실에 들어가지 않고 대기실에서 주변을 맴돌거나 진료실에 들어가도 진료 의자에 앉기 힘듭니다.

기계 소리가 무섭다고 합니다. 어린이 전문 치과에도 가보고 몇 곳을 가보지만 현아 양은 울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현아 양이 이가 아프다고 합니다. 아래쪽 어금니에 충치가 생겼습니다.

“현아야 충치가 생겼네? 벌레들이 이를 갉아 먹었나 봐. 그래서 이가 아픈 거야. 치료하려면 치과에 가야겠네.”

치과라는 말에 울먹이며 현아 양이 말합니다.

“싫어. 지금부터 이 잘 닦을게요. 치과 안 가요.”

“충치가 생겨서 이를 잘 닦는 거로는 아픈 이를 낫게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지?”

“싫어. 싫어. 싫다고.”

치과 가기 싫다고 소리치는 현아 양 얼굴은 눈물범벅입니다. 지금 충치 치료하지 않으면 이를 뽑아야 할 수도 있기에 어떻게든 현아 양을 설득해서 치과 치료를 받게 해보자고 전담직원과 상의 합니다.

2주 동안 매일 전담직원과 함께 설득했지만, 현아양은 꿈쩍도 안 합니다. 현아양이 치과에 가서 치료받겠다 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아 양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기침하는데 양방치료를 해도 낫질 않아 한방치료를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한의원에서 진료받고 오는 길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현아 양이 얘기합니다.

“별거 아니네.”

“응? 한의원이 무서웠나 보네?”

“네. 근데 안 무서워요.”

“그랬구나. 무서운 줄 알았는데 안 무서웠구나. 현아 충치는 어떻게 할까? 그냥 두면 더 아파질 건데”

“치료 안 하면 고기도 못 먹고 맛있는 것도 못 먹어요?”

“그럼. 지금 치료 안 하면 자꾸 아파서 맛있는 것 못 먹을 거야.”

“어떡하지? 음~ 다음 주에 가요.”

“그래? 그럼 담임 선생님하고 상의해서 날짜 정하자.”

전담직원에게 얘기하고 학교 선생님과 일정 조율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치과에 가는 날입니다. 현아 양이 치료받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닥쳐서 울기만 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섭니다.

자주 다니는 치과에 가서 원장님께 현아 양이 이가 아프다고 한다고 얘기하고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지 상의했습니다. 원장님은 현아 양이 정기검진 받으러 왔을 때 의자에 앉는 것조차 무서워했던 걸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억지로 치료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역효과만 날 거예요. 현아가 치과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당분간은 놀러 온다 생각하고 자주 와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치료하고 가면 어때요?”

“현아야 앉아볼까?”

현아 양에게 치과 직원이 의자가 어떻게 움직일 건지 안내하고 의자를 움직여 봅니다. 올라가며 눕혀지는 의자 위에서 흠칫 놀랐지만 이내 안정을 찾았습니다. 치과 기계에 관해 설명하고 손바닥에 물, 바람을 쐬어 경험하게 해봅니다.

“현아 이를 벌레가 얼마만큼 갉아먹었는지 보려고 사진 찍을 거야. 아~하고 있으면 돼.”

오늘 할 치료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치근단 사진을 찍고 신경치료를 시작합니다. 설명을 듣고 기계를 체험했어도 무섭습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자 반사적으로 손을 듭니다.

“현아야 손 올리면 안 돼.”

치과 직원이 놀라 말합니다.

“아파?”

제 물음에 현아 양이 고개를 흔듭니다. 의사 선생님이 손에 다시 바람을 불어줍니다.

“바람이야. 안 무섭지?”

아프면 손을 들기로 하고 다시 치료합니다. 두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옆에서 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와~ 우리 현아 잘하네.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

치료를 마친 원장님도 현아 양을 칭찬합니다.

“현아가 언니 되더니 치료를 잘 받네. 정말 잘했어. 이렇게 치료하면 금방 끝날 수 있겠다.”

치료횟수가 늘어갈수록 혼자 해보겠다고 합니다. 진료실 의자에 혼자 앉아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를 마친 후엔 치과 직원에게 오늘 어떤 치료를 했는지, 조심해야 할 건 무엇인지, 다음에 언제 와야 하는지 물어봅니다.

친절한 설명과 격려에 현아 양은 이제 치과 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4월 12일에 시작한 충치 치료는 6월 7일 마무리 되었습니다.

나눔의 집에는 28명이 살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성과 욕구가 다 달라 지원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어 늘 고민합니다. 자기 삶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게, 주인 노릇 하게 하려면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살펴보고 부탁해 봅니다.

의료를 담당하는 한 사람으로 입주인들의 건강한 삶, 그로 인해 풍요로워지는 삶을 지원하기 위해 오늘도 입주인, 전담직원과 묻고 의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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