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회장 황규인)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찾고, 장애 여부를 떠나 사람살이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2015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로 ‘2017년 장애인거주시설 우수사례’ 공모를 진행했다.

이번 공모에는 협회소속 시설의 이용장애인과 직원이 총 62편의 우수사례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시설거주 장애인의 삶의 이야기가 담겼다.협회는 외부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수상작으로 최우수상 1편, 우수상 2편, 장려상 3편, 우수작 2편 등 총 8편을 선정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일곱 번째는 특별상 ‘내 인생 첫 번째 취미! 그리고 시작된 도전!’이다.

부천혜림원 직원 김영미

13살의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20여년을 넘게 생활시설에서 지내온 현기씨. 올해 현기씨에게 체험홈 입주라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퇴근하면 집으로 오는 보통 사람들처럼 현기씨는 이제 직업훈련원에서 일을 마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옵니다.

매일 매일 혜림원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일하고, 쉬고, 놀았던 현기씨에게 이제는 본인이 사는 이곳, 부천시내 전체가 현기씨의 동네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갈 곳도, 할 것도 많아지게 된 공간이동~! 현기씨가 온전히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남들처럼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미용실에서 이발도 하고, 수시로 인근 공원에서 산책도 즐기는... 평범하지만 현기씨만의 즐기는‘자기 삶’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즐기는 자기 삶이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기씨가 즐거울 수 있을까?’답답한 마음에 “현기씨는 어떤 걸 하면 즐거워요?”저의 질문을 이해할 수도, 답을 할 수도 없는 현기씨는 그저 제 얼굴만 빤히 쳐다봅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떨 때 즐겁지?’생각해보니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 그거야. 현기씨에게도 나처럼 등산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면 즐겁지 않을까?’

그래서 어머님을 시작으로 현기씨를 아는 주변 분들께 현기씨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여쭤보기 시작했습니다.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았던 답은 ‘그림그리기’였습니다.

이거다 싶어 그때부터 홈 주변 미술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성인 남자분이 다닐만한 미술학원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지적장애아동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는 미술학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조기 퇴근한 어느 날, 현기씨 손에 비타민500 음료박스를 들려 무작정 학원을 찾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수업상담을 받고 싶어왔는데요.”직원의 인사에 선생님은 “네, 어서 오세요.”인사를 건네다 뒤따라 들어서는 큰 키의 현기씨를 보시곤 조금은 당황한 듯 멈칫하셨습니다.

“현기씨도 인사하세요.”저의 말에 특유의 “이히~”소리를 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덩치에 맞지 않게 앙증맞은 손 인사도 소심하게 건넸습니다. 그제야 선생님의 긴장된 얼굴이 풀리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수업상담이 진행되었습니다. 현기씨만의 스케치북에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해 그리고, 붙이고, 접어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된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클레이, 점토 등을 활용한 만들기 수업도 진행된다고 합니다.

직원은 현기씨가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을 찾아드리고자 할 뿐이라는 걸 강조했습니다. 미술 실력이 향상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다양한 재료들을 경험하고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드렸습니다. 다행히 선생님도 같은 생각이라고 하십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체험홈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현기씨와 함께 지내는 다른 입주자분들이 계시기에 이동이 자유롭지는 않다는 직원의 얘기를 들으시고는 “원래는 차량 운행이 되지 않는데요, 수업 마치면 홈까지 데려다 줄게요. 최대한 학원에 올 때도 차량지원이 될 수 있도록 수업 일정을 조율해볼게요.”

참 감사했습니다. 이해와 배려를 동시에 받으니 힘이 났습니다. “현기씨라고 부르면 되죠? 앞으로 잘 지내봐요.”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는 선생님을 향해 현기씨는 ‘낯설다. 무슨 일이지?’라는 표정의 어색한 미소만 지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미술 첫 수업이 있던 날, 직원 휴대폰으로 날라 온 사진과 메시지는 놀라움이었습니다. ‘자화상’을 그린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현기씨 표정이 아주 신나보였고,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화상도 어찌나 잘 그렸는지...

선생님은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제가 그리는 방법을 보고 따라 그렸어요. 너무나 관찰력이 좋아서 놀랐습니다. 채색도 잘하고 잘 그려요. 현기씨 혼자서 설명을 보고 다 그렸습니다.’라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고 누구에게든 알리고 싶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머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과 글을 그대로 어머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잠시 후 답변이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감동이에요~^^’홈으로 돌아온 현기씨에게도 “학원 선생님이 현기씨가 그림 잘 그린대요. 제가 봐도 너무 잘 그렸어요. 대단해요.”칭찬해주니 또다시 어색한 미소만 짓습니다.

직원은 그저 신기해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연신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나 현기씨가 환하게 웃을 수도 있구나. 너무 잘 그리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순간, 작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현기씨만의 작품집을 만들어 작은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다는....

바라는 일을 늘 생각하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고 이뤄진다고들 하지요? 신기하게도 현기씨에게 그런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전시회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 겁니다. 바로‘제18회 경기도 시설장애인 예능발표 및 작품전시회’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전시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완성해온 그림들의 작품명을 짓고, 액자에 끼고, 전시회 배너 소개 글을 올리는 전 과정이 저에게는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살아가면서 본인 작품으로 전시회에 참가하고, 남들에게 재능을 뽐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현기씨가 더 대단해 보입니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무사히 마친 전시회. 설렘으로 가득했던 저와는 달리 무덤덤한 표정의 현기씨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기씨는 과연 나보다 더 기쁘고 설레었을까? 미술수업이 즐거운 건 맞겠지?’이에 대한 답을 본인에게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현기씨는 미술활동과 수업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학원가는 날은.... 기다리는 내내 현기씨의 눈과 입은 싱글벙글 이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밖에서 대기 중인 학원차를 향해 현기씨의 다리는 쏜살같이 움직이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현기씨의 얼굴은 곧잘 웃음이 번지기 때문입니다.

또, 틈틈이 만들기 작품을 집으로 가져올 때는 그 큰 두 손이 조심스러워지고, 그 작품들로 집안을 꾸밀 때는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몇 번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현기씨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색칠 북 세트를 구비해 저녁 여가 시간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구입한 첫 날이 떠오릅니다. 색칠 북 세트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색칠한 번 해볼까요?”라는 말에 바로 색연필 하나를 덥석 잡아 색칠하기 시작하는 현기씨.

일일이 색연필을 골라줘야 할 줄 알았는데... 웬걸요~ 현기씨는 알아서 각양각색의 색연필을 골라 밑그림에 저마다의 색을 입혔습니다. 일일 저녁드라마 한 편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하나의 색칠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알록달록, 꼼꼼하게 색칠한 걸 보면서 ‘정말 그림 그리기를 잘하는구나.’또 한 번 놀랐습니다. 완성하자마자 바로 다음 장을 넘겨 다시 색칠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말리지 않으면 앉은 자리에서 모두 색칠할 기세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어버이날이 있던 5월, 미술 수업 시간에 직접 만든 리본 카네이션과 머리핀을 어머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기뻐하시며‘너무 감사 합니다~’말씀하셨습니다. 가족이지만 떨어져 지내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현기씨를 향한 관심이 옅어진 상황에서 ‘미술’은 가족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었고, 현기씨에게는 ‘취미’이자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홀로 가정 경제를 꾸려야 하는 어머님의 바쁜 사정과 이제는 성인이 되어 본인의 손길이 덜 필요하단 생각으로 현기씨를 자주 찾아오지 않으셨던 어머님. 그런 어머님께도 현기씨 못지않은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현기씨의 완성된 미술작품 사진들을 보내드리며 자연스럽게 얘기꺼리가 생기게 되었고, 안부전화를 더 자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머님과 현기씨만의 데이트도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7월에는 영화관 데이트가 성사되었고, 곧 다가올 11월에는 일산호수공원 나들이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현기씨는 실비입주자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어머님의 경제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혹여 개인통장 잔액 부족으로 취미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워지게 될까봐 자원팀에 문의를 해보았습니다.

마침, 개별통장 후원금 신청 안내가 있었고, 바로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현기씨가 선정되어 매월 개별재활비 명목으로 현재까지 학원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현기씨의 취미생활은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 더 발전해나갈 예정입니다. ‘현기씨는 관찰력과 모방 능력이 뛰어나고, 색채감이 좋아요. 그리고 미술수업 자체를 즐거워해요.’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에 힘입어 앞으로 전시회뿐만 아니라 장애인 미술공모전까지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부디, 이 도전이 현기씨에게 가족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것처럼, 새로운 이웃들과의 만남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기를……. 그래서 현기씨의 일상이 지금보다 더 즐겁고 풍요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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