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회장 황규인)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찾고, 장애 여부를 떠나 사람살이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2015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로 ‘2017년 장애인거주시설 우수사례’ 공모를 진행했다.

이번 공모에는 협회소속 시설의 이용장애인과 직원이 총 62편의 우수사례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시설거주 장애인의 삶의 이야기가 담겼다.협회는 외부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수상작으로 최우수상 1편, 우수상 2편, 장려상 3편, 우수작 2편 등 총 8편을 선정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세 번째는 우수상 ‘나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이다.

SRC보듬터 직원 최병배

첫만남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올해초부터 비염으로 고생이다. 병원도 여러 차례 들락였지만 낳아지는 것도 잠시뿐, 벌써 6개월째 코가 그렁그렁하다. 잘 때 뒤척이는 아들을 볼 때 안쓰럽다.

오늘은 오전 7시 출근하는 근무여서 자고 있는 아들의 작은 등을 보고 나오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해뜨는 집(자립지원팀)의 이 시간이면 언제나 그렇듯 복도 전등불은 꺼진 채 적막감이 흐른다.

삐이∼삐, 적막함을 가르며 날카롭게 울리는 기계음, 이 맘때 늘 듣는 소리지만 들을 때마다 늘 신경이 곤두슨다.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제일 먼저 들르는 곳, 바로 신경을 자극하던 기계음을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곳, 재기씨 방이다.

밤마다 호흡기를 사용하는 재기씨가 가느다란 몸을 옆으로 잔뜩 세운 채 웅크리고 자고 있다. 호흡기를 벗겨주고 몸을 다시 눕힌다.

올해 나이 23살, 피 끓는 청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나이지만 온몸에 근육이 약해지는 근육병으로 점점 줄어드는 그의 몸을 안을 때 마다 너무 가볍고, 가벼워지고 있는 그의 몸에 아프다.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매번 한번씩 찌르르한 가슴 한구석의 결림이 편치 못하다.

재기씨를 처음 알게된 건 3년전이다. 이용자중 한분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상태가 위중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 당시 나는 행정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몇, 몇 사무실로 잘 찾아오는 이용자들만 아는 정도였을 뿐 이용자들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리고 얼마 후 폐렴으로 입원한 그 이용자의 간병을 다녀오신 선생님이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여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왔다며 안타까움에 울먹이는 모습을 보았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이용자였지만 몇년전에도 연고가 없는 이용자 한분의 장례를 치른 아픔이 있던 터라 나 역시 마음이 아파왔다. 직장 전체가 앞으로 다가올 또 한번의 슬픔을 준비하는 듯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폐렴으로 위독하던 이용자가 회복되고 있고 얼마 후에는 퇴원하여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모두들 자기 가족의 일처럼 기뻐하며 기적이라며 입을 모았다.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아나 건강을 찾은 이용자, 그가 바로 재기씨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후 나는 그 구사일생의 주인공과 한 생활공간(해뜨는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배달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해뜨는 집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분씩 악수를 하고 인사하면서 이용자분들의 이름을 여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재기 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였다.

전동휠체어에 허리가 잔뜩 휘어있는 체로 조정기를 잡고 있는 뼈에 살가죽을 살짝 언은듯한 오른손과 그동안의 노고를 말해주듯 도드라져 진한 갈색으로 변한 팔꿈치에 대부분의 몸의 무게를 버티면서 금방이라도 밑으로 꺼져버릴 듯 가냘픈 몸으로 위태롭게 앉아 큰 두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바라보던 재기씨,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근육병으로 몸의 근육이 약해질데로 약해져 대부분의 신체활동에 지원을 받아야 하는 중증장애인이라고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실제의 모습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장애가 심해보였다.

몇일후 우리는 사례관리계획회의에서 다시 만났다.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세요?”라는 질문에 “자립이요.”라고 재기씨는 짧게 대답했다.

다시 한번 물었다. “무엇이 목표라고 하셨어요?” 솔직히 알아들었지만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그날 다시 물은 것에 대하여 나는 지금도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재기씨는 다시 말했다. “자립이요.”

모든 서비스가 이용자들의 자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자립을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자립지원센터의 동료상담이나 각종 인권 교육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독립된 삶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던 터라 ‘자립’이 이용자 누구에게나 앞으로 만나게 될 미래라는 것에 대하여는 의심하면 인권침해일 정도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바로 일년전에 폐렴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지금도 건강관리가 최우선이며 점점 진행되고 있는 장애를 가지고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지원이 필요했던 재기씨가 시설을 떠나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럼, 자립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몇가지 질문이 더 오고 간 후 재기씨와의 첫만남을 마감했다. 대화를 마치고 전동휠체어를 돌려 문으로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았다. 대화를 마치며 내가 했던 마지막 말이 껌딱지처럼 마음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요, 분명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잘해봅시다.”

재기씨 자립하다.

재기씨와의 첫만남 후 얼마지나지 않아 재기씨가 사이버대학교 그래픽관련 학과에 지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재기씨가 지원한 학과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왔다. 그것도 전액 장학생으로 말이다.

이용자들과 선생님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재기씨의 도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포토샵 자격에 도전하였고, 자립지원센터의 자립생활훈련에도 참가하였다.

그리고 초록우산 여행공모에서 선정되는등 마치 지칠줄 모르고 타는 화력 좋은 바싹 마른 나무 장작처럼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가 바쁠수록 선생님들도 숨가빴다.

시험장까지 이동을 지원하고 외부프로그램마다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갖은 일을 지원하기에 바빴다. 재기씨를 지원하는 일이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차량과 운전까지 지원되는 여행공모에 선정되어 내부 프로그램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편안한 여행에 담당 선생님이 동행하여 부럽도록 호사스런 여유있는 시간을 재기씨와 함께 하기도 하였다.

재기씨의 시간은 지나갈 때 마다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면서 유난히도 더웠던 지긋지긋하던 여름과의 반가운 이별을 알릴 즈음 서울복지재단에 자립주택 신청자 모집 안내를 받았다.

재기씨가 희망의사를 밝혔다. 잠시 마음이 주춤했다. 지난 시간동안 우리의 두려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달려온 재기씨의 집념을 보았지만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그 어떤 곳보다 더 안전할 뿐만 아니라 건강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확신(?)과 우리를 떠나면 당장이라도 폐렴이든 끔찍한 사고든 재기씨에게 밀어닥쳐 그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예언자적 염려(?)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모아주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나와의 첫 만남에서 큰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던 말 ‘자립’, 결코 그 말이 빈 말이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산처럼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자립주택에 입주를 위한 과정으로 단기체험을 거치고 감기 한번 걸리지 않으면서 차가운 겨울을 버텼고 마직막인 시설에서의 봄을 넘어 실록이 우거진 6월의 첫날 그렇게도 기다리던 자립주택으로 거짓말처럼 재기씨는 입주를 하였다.

혹여 감기에 들지나 않을까, 외출하다가 다치지나 않을까, 재기씨 본인도 조심스러웠지만 늘 긴장하며 재기씨를 지켜보던 나는 재기씨의 떠남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갑자기 재기씨가 자립주택에 입주를 포기하고 시설에 남아 선생님들과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고 싶다고 말하는 극적인 반전을 한순간 기대했지만 재기씨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잠시 놀러왔던 이웃집을 나가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나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소변지원 김재기. 이런 또 잘 못 썼네. 일지의 지원 내용 란에 또 재기씨의 이름을 쓰고 말았다. 벌써 재기씨가 자립주택에 입주한지도 한달이 넘게 흘렀는데 예전에 늘 쓰던 그의 이름 자리에 아무 생각 없이 이제는 없는 김재기라는 이름을 쓴다.

그럴 때마다 화이트로 지운다. 일지의 잘못 쓴 이름은 화이트로 지울 수 있지만 김재기란 사람의 존재는 나의 마음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듯하다. 얼마 전 상반기 평가를 마치고 그동안 이용자들과 함께 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 재기씨와 내가 지난해 캠프 장소인 낚시터에서 고기를 잡고 함께 좋아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물고기를 잡고 뿌듯해 하는 내 뒤에서 재기씨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둘다 생전 처음 낚시대를 쥐었다. 물고기들이 그런 우리를 봐주었는지 연신 우리의 미끼를 물었다.

팔뚝만한 살이 오른 고기들을 계속 들어 올렸다. 그 때마다 우린 함께 환호했다. 그날 난 내가 본 재기씨의 웃음 중 가장 큰 웃음을 보았다. 난 아마도 그때 그 좋은 재기씨의 웃음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웃음이라고 믿어버렸다.

그에게 있어 최고의 기쁜 날. 더는 바랄 것이 없는 만족의 순간. 그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만약 재기씨가 안다면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 그의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 기껏 고기 몇 마리 잡은 것이라니.

그에게 더 큰 흥분으로 다가올 그만의 인생을 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시설에의 울타리가 그에게 가장 좋은 곳이라는 거만함과 은연중 나의 그 거만하고 발칙한 믿음을 그에게 쇄뇌 시키려고 하였다.

난 그에게 자립을 얘기하고 꿈을 얘기했지만 내 안에 재기씨에 대한 자립의 희망은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그가 처음 나를 만나는 날 말했던 ‘자립’의 꿈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난 그가 짧은 인사를 하고 자립주택으로 떠나가는 그의 작은 뒷모습을 봤을 때, 그제서야 그 안에서 어떤 어려움의 시간속에서도, 생사를 넘나들던 바로 그 병상에서도 그가 놓지 않고 붙들고 있던 희망이라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래, 나에겐 애초부터 그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 오직 희망은 재기씨 그에게만 있는 것이었다. 잠시 신 앞에서 무릎 꿇는 참회의 심정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 희망이 재기씨에게는 없고 나에게 있었다면 난 나의 희망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그를 힘들게 하였을까? 그는 자신에게 있지도 않는 희망을 있는 척하며 나에게 보여주려 얼마나 애를 쓰고 눈치 보면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을까? 희망이 그에게만 있었던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자립주택으로 입주한지 삼개월쯤 지났을 때 재기씨가 갑자기 찾아왔다. 병원에 들를 일이 있어서 왔다가 잠깐 얼굴을 보려고 왔단다.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예전에 있었던 방도 둘러보는 그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어때, 다시 오고 싶지 않아?” 아직도 나는 시설이 그에게는 지상천국(?)이라는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쓴 웃음을 보였다. 이제야 그의 얼굴의 그 어색함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다른 소리, 공기, 맛, 느낌을 그는 거침없이 흡입하고 있었다. 재기씨는 점점 숨죽여가는 풍선처럼 작아지고 있는 그의 몸속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고 그의 가슴속 희망의 소리를 쫓아 점점 커지는 꿈을 담고 있었다.

또 하나의 희망

“당신이 뭐야. 팀장이면 다야. 당신이 한게 뭐있어. 나하고 싶은 데로 하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1층 식당에서 시작된 준비씨의 막말은 3층 상담실로 올라올때까지 사그라들지 않은 체 고함과 온갖 욕설이 버무려져 고스라니 나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1층에서 3층까지 엘리베이터로 길어야 2,3분 정도 걸리지만 2,3시간정도 흐르는 듯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준비씨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어 1층에 있는 식당까지 함께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데 이날은 식사를 마치고 혼자 식당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자신의 방으로 올라온 것이다.

함께 엘리베이터타고 오자고 한 나의 말이 화근이었다. 그렇게 상담실에 온 후에도 한참을 더 소리지르고 나서야 끝없이 갈것만 같던 흥분이 가라앉았다. 준비씨를 만나지도 2년이 지났다.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전동휠체어를 타는 준비씨는 근래에 들어 시력이 눈에 뛰게 나빠지고 있었다. 작년에는 혼자서도 충분히 외출을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혼자서 경사로로 이동하기도 어려워졌다.

근래는 소변실수도 잦아져 옷을 버리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씨는 자존심이 강한 분이여서 자신이 전만큼 활동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준비씨 앞으로 희망하는 목표가 뭐예요? 올 초에 내가 했던 질문이다. “자립하고 싶어요.” 2년째 똑같은 대답이다. 얼만 전 자립에 관련하여 외부 단체에서 설문조사가 있었다. 질문지에는 언제 자립을 예상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는 ‘지금 바로’라는 란에 표시를 했다. 나에겐 희망이 없다. 오직 희망은 그 사람 안에만 있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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