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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 개구리

지체장애 이도근 씨의 삶-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5-26 11:24:15
“집사람은 아들 둘을 낳았고, 저는 이제 겨우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집사람에게 다 갖다 주었다. 그래서 집도 하나 샀다.

“꼬마 때는 한 달에 500원을 받았는데, 망치질을 할 때는 2천원 쯤 받았고, 기술자가 되어 88년도에 120만 원 쯤 받아서 집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니 낮 동안 아내가 집에서 무얼 하는 지 잘 몰랐다.

어느 강가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어느 강가에서. ⓒ이복남
“큰아들이 세 살이고 작은애가 돌 때였는데 집사람이 돈이랑 패물이랑 몽땅 챙겨서 집을 나갔습니다. 설 무렵이었는데 집에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아내가 춤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돈은 한 푼도 없고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돈이 하나도 없다면서 직장은 왜 그만두었을까.

“금은세공은 정밀작업이라 잡생각이나 마음이 편치 못하면 일을 못합니다.”

하기야, 아내는 집을 나가고 두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무슨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그때부터 아이들은 어머니가 키우고 저는 한 일 년 놀았습니다.”

일 년 쯤 지나자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어 다시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한 십년 쯤 지나니까 하루 종일 꼼짝없이 메여있는 직장생활이 슬슬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는 필자와 만났을 때 그리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 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꼼짝없이 앉아있는 일을 하다보니까 숙달이 되어서 그런지 화장실을 잘 안 간다고 했다.

“직장생활이 하기 싫던 차에, 하루는 아침 신문에서 지하철 매점이나 자판기를 분양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부산 지하철 매점과 자판기 분양은 장애인단체에서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동래구장애인협회를 찾아갔습니다.”

동래구장애인협회 A 회장은 금은방을 그만 두고 협회 사무장을 하면 지하철 매점을 분양 받도록 해 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장애인단체를 알게 되었다.

“매점을 분양 받으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협회 사무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매점을 분양 받았을까.

“아니요. 부산장애인총연합회에서 제비뽑기를 했는데 제가 안 뽑혔습니다.”

베트남 여행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베트남 여행에서. ⓒ이복남
그는 이미 지하철 매점을 예상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지하철 매점은 안 되었지만 금은방을 다시 수소문해서 다니기는 싫었다.

“동래구장애인협회 A 회장이 저에게 분양되게 해주겠다는 말은 어쩌면 사기였습니다. 제비뽑기를 하는데 어찌 저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걸 믿은 제가 어리석었지요.”

그러나 이미 직장을 그만두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동래구 사무실에 나갔다.

“거기서 장애인 B 씨를 만났는데, 좋은 사업이 있다고 했습니다.”

B 씨가 제안하는 사업이란 종량제 봉투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때가 IMF 때라 기계가 싼 게 많아서 땅 짚고 헤엄치기라 했습니다.”

IMF란 국제통화기금이다. 1997년 우리나라의 각종 사업은 망하고 외환 보유액이 부족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국제 통화 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도움을 받았다.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모으기 등을 하면서 IMF에서 벗어났다.

“B 씨가 제안하는 종량제 사업이란 9천만 원 쯤 드는데 세 사람이 각각 3천만 원씩 공동 투자를 하자고 했습니다. B 씨가 사업을 하고, 비장애인 C 씨가 기술을 대고, 저는 돈만 내면 된다고 해서 가진 돈을 다 털어서 3천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그는 B 씨에게 3천만 원을 건넸다. C 씨가 중고 기계를 구입했다고 해서 여기저기 공장 부지를 보러 다녔다.

“그런데 제가 공장 부지를 물색해 와도 B 씨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퇴짜를 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B 씨와 C 씨가 자기들은 돈도 안 내고 그가 낸 3천만 원으로 중고기계를 사서 우즈베키스탄 등 외국에 팔아먹고 있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폐쇄된 공간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세상물정을 몰랐던 것이다.

“제가 아무리 우물안 개구리로 살았기로서니 장애인이 장애인을 등쳐먹는 사기를 치다니,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가 B 씨와 C 씨의 사기행각을 눈치 채자 두 사람은 행방을 감췄다.

“하는 수 없이 경찰에 고소를 했는데 B 씨와 C 씨가 경찰서에도 출두를 하지 않아 기소중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장애인 D 씨와 함께 B 씨와 C 씨를 찾아 다녔다.

“알고 보니 B 씨와 C 씨에게 당한 사람은 저 뿐이 아니었습니다.”

공장을 차리면 함바집을 분양해 주겠다며 어떤 사람에게 몇 천만 원을 받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기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C 씨는 붙잡혀서 1년을 살았는데, B 씨는 끝내 안 잡혔습니다.”

나중에 B 씨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친구 D 씨와 같이 잠복근무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경찰과 협조가 잘 되지 않았다.

“그 일로 제 인생은 또 한 번 완전히 파토가 나고 말았습니다.”

운전면허를 따서 차를 가지고 D 씨와 같이 B 씨를 잡으러 다녔는데, 돈은 안 벌고 가진 돈은 다 쓰고 나중에는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몇 년 만에 B 씨를 찾기는 했는데, 이미 형사사건은 시효가 지났고 민사는 ‘혐의 없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가진 재산을 다 날리고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고 했다.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큰아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직장을 다니다가 사고로 죽고, 둘째도 교통사고로 다쳐서 머리가 이상해졌습니다.”

어느 카페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어느 카페에서. ⓒ이복남
그는 현재 LH공사의 임대주택에 혼자 전세로 살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지역법인에서 추진하는 베트남 여행에 50만 원을 내고 참가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차가 있으니까 근처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 차량 봉사를 한다고 했다.

“어떤 장애인이 자기도 베트남을 한 번 가고 싶은데 그때는 몰랐다며, 이번 봄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열대 사바나 기후로 1년 내내 따뜻하다. 그러나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서 건기와 우기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베트남 여행을 비수기에 간다면 비용도 얼마 안 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기약은 없단다.

“직장을 그만두고 장애인단체에 나가면서 양지에서 수영을 배우다가 여수애양병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도 젊은 때 알았다면 어떻게든지 수술을 했을 텐데 몰랐다며 억울해 했다. 너무 늦은 것 같았지만 그 얘기를 듣고는 여수애양병원을 찾아 갔었다.

“저도 수술을 하면 다리가 좀 더 펴질 것 같았는데, 간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신 지 오래고, 누나도 결혼을 해서 멀리 떠나 있고, 그가 수술을 한 후 간병을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수술을 못했던 것이 한이 된다고 했다.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여수가 아니라 가까운 병원에서도 수술 할 수가 있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다리가 점점 나빠져서 요즘은 지팡이를 짚고 다닙니다.”

다리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생각하면 인생이 너무 한탄스러워서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언젠가 유명하다는 사람에게 사주를 본적이 있는데, 날아가는 새가 날개를 화살에 맞은 사주라고 합디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합디다.”

그럴 리가요. 첫 단추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 하실 필요 없습니다.

“요즘은 장애인들에게 차량봉사도 하고, 낚시도 다니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같은 장애인이라도 너무 믿지 말고, 저처럼 우물안 개구리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평생을 금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결혼에 실패했고, 같은 장애인에게 사기를 당해서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사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현재 자신의 일상에 충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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