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쓴 장애인 당사자들의 장애유형은 각각 달랐으나, 일기에서 다뤄진 생활상의 어려움은 비슷했다. 그 중 하나는 ‘접근성’이다. ⓒ Tommy Parker at Synergy

2017년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The Guardian)은 7명의 장애인에게 한 달간 일기를 쓰도록 했다. 이 결과 일기에는 오늘날 영국 장애인이 처한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났고, 해당 일기와 인터뷰는 더 가디언의 연재 시리즈로 만들어져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복지 정책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영국은 한국을 포함한 중진국들의 롤모델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이러한 영국의 장애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두 차례에 걸쳐 그 현실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5. 사샤 사벤 캘라건(Sasha Saben Callaghan) – 에든버러(Edinburgh) 거주, 시각장애, 이동상 어려움이 큼.

2017년 8월 28일

에든버러 프린지(The Edinburgh Fringe,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시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의 마지막 날이다. 보통 8월에는 에든버러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곤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첫째아들 알렉스와 알렉스의 친구 한 명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알렉스는 접근성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 공연장이 있는 곳까지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물론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은 여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데도 없었다. 나는 공연장이 있는 곳에 도착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들을 찾았다.

“공연장에는 들어갈 수 없겠어요, 엄마. 3층이나 돼요.” 우리는 ‘접근 가능한’ 공연장을 찾기 위해 1마일을 더 걸어가야 했다. 가수가 있고, 자막이 제공되고, 그런 곳 말이다. 우리 일행은 고생했지만, 많은 비장애인 공연자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6. 루크 저지(Luke Judge) - 런던(London) 거주, 간질

2017년 9월 15일

응급실에서 휴대폰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약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출근한 후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무언가 환청이 들리면서, 어제부터 시작된 간질의 전조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팀장은 내가 의식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숨이 천천히 차올랐고, 눈꺼풀은 서서히 감겨 시야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 몸이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툭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20분 후 나는 눈을 떴고, 응급처치를 해준 사람이 내 옆에 서있었다. 그는 내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내가 회복 중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곧 이 일이 사무실 한 가운데서 일어났음을 깨달았고,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숙였다.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금방 긴급의료원이 왔다. 내 혈압, 체온, 호흡 등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는 내가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 나는 퇴근 후 브라이튼(Brighton)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밤부터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빌린 해변 가의 집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7. 샘 포크스(Sam Fowkes) - 웨스트 미드랜드(West Midlands) 거주, 뇌성마비이나 보조기기 없이 보행 가능

2017년 9월 13일

끔찍한 밤을 보냈다. 통증으로 인해 잠을 설치는 건 흔한 일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통증이 수면을 방해하니 말이다. 통근 열차에 앉을 자리가 있기를 바랐지만, 나는 또 서있어야 했다. 이미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이 없었다. 이럴 땐 진통제가 오히려 내 몸을 더 피곤하게 할 거란 걸 알아서, 진통제를 먹지 않는 대신 큰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통증과 각성을 맞바꾸는 일은 내게 필수였지만, 대중교통에 앉을 자리가 없다는 건 모든 상황을 그저 더 안 좋게 만들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도 자리가 없었다. 이때쯤 내 다리는 큰 망치에 맞은 듯 아파져 왔다. 집에 도착해서는 진통제를 먹었고, 소파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밤 9시쯤 깨 저녁을 대충 때우고, 샤워도 그 어떤 집안일도 하지 못한 채로 다시 잠에 들었다.

일기를 쓴 당사자들. 왼쪽부터 니나 그랜트(Nina Grant), 크레이그 길딩(Craig Gilding), 프란시스 라이언(Frances Ryan), 피트 랭맨(Pete Langman)과 쇼나 콥(Shona Cobb). ⓒ Fablo De Paola for the Guardian

장애는 현실이다

일곱 당사자들의 일기는 오늘날 영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잘 그려냈다. 비장애인들에게 무시당하고, 복지체계는 부족했으며, 장애인들이 각자의 권리를 영유하며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오해가 만연해 있는 현실 말이다. 일기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진 주제 중 하나는 대중교통으로 인해 발생하는 귀찮은 일들이었다. 이를 테면 니나 그랜트(지난 호에서 다룸. 휠체어 사용, 엘러스-단로스 증후군)는 목적지에 가 닿기 위해 기본적으로 30분을 더 사용해야 했다.

사샤 사벤 캘라건(에든버러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은 낯선 이들로부터 질문을 받곤 한다고 했다. 그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요?(장애를 가지게 됐어요?)”라는 질문을 하면, 종종 “마법사를 화나게 했나 보죠.”라고 답했단다. 그러면 질문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답을 기대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고 했다. 당사자들을 위한답시고, 관심을 갖는다는 의도로 하는 질문이 배려가 부족한 일임을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근무지에서의 협상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루크 저지(런던에 거주하는 간질환자)는 회사에서 한 고객으로부터 왜 오후 4시 30분에 퇴근 하냐는 질문을 받았더랬다. 4시 30분은 루크의 의사와 회사의 사장이 상호 동의한 시간이었다. “그는 내게 왜 일찍 나가냐고 물었어요. 화가 났죠. 제가 뭐라고 할까요? ‘제가 간질환자라서요. 의학적인 이유가 있거든요‘? 참 당황스러웠죠.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몇몇은 저를 ’파트타이머‘라고 불렀거든요. 물론 저는 웃어넘겼지만요.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내가 간질환자인 걸 모르죠. 그래서 그저 약속이 있다고 말할 뿐이에요.”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날은 모든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이직할 때는 언제나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또 하나의 위험이 더 있다. ‘내가 장애 때문에 학대 받거나 따돌림 당하면 어쩌지?’ 하는 것이다.” 이 대목은 샘 포크스(웨스트 미드랜드에 거주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일기에서 발췌하였는데, 그는 “혹은 ‘내게 약간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열등하거나 성가시다고 여겨진다면?’, ‘지원 절차에서 장애 사실을 공개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심사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한다.”고도 썼다.

장애인 당사자이면서, 이번 기획을 구성한 작가인 프란시스 라이언은 노팅햄 트렌트 대학교(Nottingham Trent University)에서 쇼나 콥, 니나 그랜트, 피트 랭맨(지난 호에서 다룸. 파킨슨병으로 인한 지체장애인)과 크레이그 길딩(지난 호에서 다룸. 청각장애인)을 만나 일기를 쓰면서 겪은 그들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중에는 몇 번의 ‘빵 터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를 테면, 콥과 그랜트는 휠체어 사용자가 일어서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비장애인이 실제로 휠체어 사용자가 일어선 걸 봤을 때의 충격 받은 눈빛을 비꼬며 “이건 기적이야!”라고 소리쳤을 때가 그랬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좌절의 순간을 나누기도 했다. 사회보장체계에 대항하는 비슷한 종류의 투쟁부터, 장애가 있어 일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선구안을 가진’ 고용주들을 맞닥뜨리기까지…. 네 명 모두 일기를 쓰는 행위가 큰 깨달음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들이 주기적으로 마주하는 불평등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했다. 콥은 “일기 쓰기는 얼마나 부당한 일들이 많은가를 깨닫게 했어요. ‘나는 거기에 닿을 수 없어.’라는 말이 일상이었고, 보통이었죠.”라고 말했다.

여러 일기에서 충분히 그려졌다시피, ‘접근성’의 문제가 특히 심각했다. 대중교통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접근 가능한 거주지 보장 문제도 함께 제기되었다. 콥의 경우 2층 집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자신의 침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이용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하게, 그랜트도 그녀의 가족과 런던의 불편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접근 가능한 집을 찾고자 지난 몇 년간 노력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단다. “개인 임대인들은 내가 자립해서 살기 위해 필요한 집수리를 해주길 원치 않았어요. 의회는 접근 가능한 거주지를 공급하지 못했고요.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라고 그랜트는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그랜트가 말했다. “우리는 정부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려 해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버스 탑승을 거절당하죠. 여전히 살 곳이 없고요.”

물론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는데 몇 가지의 큼직한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집을 신축할 때 휠체어가 접근 가능하도록 하는 것, 식당과 상점에서 평등 관련 법률을 더욱 강화하는 일은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기에서도 그려졌듯 사소한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 상점 주인으로써 상점의 자동문 접근 버튼이 실제로 사용 가능하게 만들어둔다든지, 상점 직원으로서 장애인용 탈의실은 비장애인이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노력들 말이다.

실천할 수 있는 변화와 함께 문화적인 변화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랜트와 길딩은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더 자주 볼 수 있어야 하고, 정계에서는 장애를 주류화 하는 움직임이 행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당사자는 모두 ‘비장애인인 대중들이 오늘날 영국의 장애인들이 여전히 매일매일 불평등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랭맨은 다른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이렇게 트위터 메시지를 보냈다. “이 일의 결과로 무엇이라도 하나 나아진다면, 우린 이기고 있는 겁니다.”

※ 출처:

1.

https://www.theguardian.com/inequality/2017/nov/15/whats-life-really-like-for-disabled-peopld-disability-diaries-reveal-all

2.

https://www.theguardian.com/inequality/2017/nov/15/stares-glares-internet-dating-the-harsh-realities-of-life-with-a-disability-diaries

※ 이글은 인천전략이행 기금 운영사무국을 맡고 있는 한국장애인개발원 대외협력부 윤주영 대리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인천전략’은 아‧태지역에 거주하는 6억 9천만 장애인의 권익향상을 위한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2013~2022)의 행동목표로,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인천전략사무국으로서 국제기구협력사업, 개도국 장애인 지원 사업, 연수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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