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람이 노트북을 가지고 다닌다. 노트북이란 휴대용 컴퓨터인데 가격이 100만 원~300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은 그런 노트북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한소네라는 점자정보단말기(점자노트북)가 있는데 가격이 약 600만 원가량 된다. 가격이 비싸서 개인이 구입하기는 어려우므로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나 기관에서 장애인 정보화기기 보급 사업의 일환으로 일 년에 몇십 명씩을 선정하여 한소네를 나눠주고 있다.

정재문 씨가 필자와 만났을 때 한소네로 몇 가지 자료를 찾아 주기도 했다. 그래서 한소네를 어디서 받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정재문: “우리 교회에서 대학 입학 선물로 사 주셨습니다.”

고신대학교 졸업식에서 독창. ⓒ이복남

그는 고신대학교 교회음악과 1학년이 되었다. 정재문 씨는 고신대학교에 시각장애인은 자신이 처음이라고 했는데 필자가 알아보니까 오래 전에 시각장애인 학생이 한명 더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교회음악과에. 학생들은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므로 장애인을 위해서는 생활도우미와 학습도우미가 있었다.

정재문: “대학에서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생활도우미와 한 방에 살았습니다.”

생활도우미는 기숙사 룸메이트로 재활학과 선배였다. 새벽에 같이 일어나서 6시에 강당으로 가서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7시부터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정재문: “대학 4학년 때는 식당이 기숙사 근처로 바뀌어서 잘 안 갔습니다.”

그러면 아침은 무엇을 먹었을까? 선식 아니면 우유?

정재문: “우유는 안 먹었습니다. 우유를 안 먹는 게 아니고 기숙사에서는 전기 사용을 못 하므로 냉장고가 없어서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전기 사용을 못 한다면서 컵라면은 어떻게 먹었을까?

휴게실에 가면 냉온수기가 있으니까 컵라면은 먹을 수가 있었단다. 아침을 먹고 강의실로 가면 그때부터는 학습도우미가 있었다. 학습도우미는 교회음악과 선배인데 강의실 이동은 도와주었지만 같은 학년이 아니라서 약간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신춘음악회 대기실에서. ⓒ이복남

정재문: “1년쯤 지나니까 2학년 때부터는 음악 동에서는 혼자서도 잘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정재문: “강의는 듣고 녹음을 했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리포트는 한소네로 작성해서 파일로 제출했고, 시험도 일대일 구술시험을 치르거나 아니면 한소네로 작성해서 파일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어려움 한 가지가 있었단다.

정재문: “합창 같은 것을 하면 제가 볼 악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점자 악보를 제작해 주는 곳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 등 서울의 몇 곳뿐이었다. 그가 노래해야 할 파트의 악보를 복지관으로 보내면 점자악보로 만들어서 보내주는데 대기자가 많으면 제때 안 오기도 했다.

정재문: “그러면 선배들이 녹음해 주었습니다. 점자도서관에서도 해 준다던데 유료라서 안 해 봤습니다.”

그의 음역은 테너인데 합창단에서는 오카리나도 불고 노래도 하곤 했다. 그는 베데스타 합창단 단원이기도 했고, 대학교에서는 페로스 합창단에 속해 있었다.

KNN 베리어프리 오페라 점자 팸플릿. ⓒ이복남

기억에 남는 연주회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정재문: “고신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음악회를 부산시민회관 대강당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했습니다. 안민 교수님의 지휘로 메시아를 했는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고신대학교에서 개교 70주년을 맞이해 안민 교수의 지휘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대연주회를 가졌다. 서울에서는 2016년 11월 17일 (목) 오후 8시 여의도 KBS홀에서, 부산 연주는 11월 29일 (화) 오후 7시 30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이었다. 그때 재문 씨는 헨델의 메시아 전 곡을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

현재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석사 논문은 어떻게 쓸까.

정재문: “음악과는 논문을 안 쓰고 한 시간짜리 졸업 연주회를 합니다.”

한 시간 독창회를 하려면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멘델스존의 엘리야 등의 오라토리오 외에도 성가곡 등 12곡을 노래해야 한단다.

오라토리오(Oratorio)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주제로 그 주제에 대한 성구들을 모아서 작곡한 대합창곡이다. 오라토리오는 독창, 중창, 합창, 관현악, 오르간 등이 사용되며, 음악은 극적으로 표현되고, 동작이나 배경이나 의상은 사용하지 않는 교회음악 형식을 말한다. 오라토리오의 창시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필리포 네리(Filippo Neri, 1515-1595년) 신부이다. 참고로, 교회 음악의 3대 오라토리오는, 헨델의 '메시야'(Messiah), 하이든의 '천지창조'(the Creation), 멘델스존의 '엘리야'(Elijah)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신대 졸업식에서 가족들과. ⓒ이복남

그의 꿈은 공부를 더 해서 그의 목소리로 제3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단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면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갈 예정이란다.

정재문: “안민 총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유학을 마치면 아프리카 등에서 오라토리오나 성가곡 등으로 복음성가를 할 예정이란다. 성가곡 중에서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송명희 시인의 ‘나’를 얘기하면서 불러 봐도 되느냐고 했다.

마침 사무실에는 정재문 씨와 그의 할머니 그리고 필자밖에 없었기에 불러도 된다고 했다.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나 갖게 하셨네.”

정재문 씨는 ‘나’를 정말 멋지게 잘 부른 것 같았다. 참 잘 했어요. 관중은 필자와 그의 할머니 둘뿐이었지만 힘껏 손뼉을 쳤다.

정재문 씨와 한소네. ⓒ이복남

송명희 시인은 어린 시절을 고통 속에서 보냈고 시를 쓰면서 깨어진 질그릇이 고귀한 보배가 되었다. 그러나 정재문 씨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눈을 감았다는 것 외에는 할머니와 부모님 등 좋은 가족, 좋은 교회와 교우 그리고 좋은 대학에서 좋은 교수를 만나 별 어려움 없이 즐겁고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시편 35장 9절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그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그리고 사랑으로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정재문: “아직은 별 어려움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정재문 씨는 대학원 2년생인데 그동안 좋아하는 아가씨는 없었을까.

정재문: “아직은 제 이상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정재문 씨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일까.

정재문: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는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아야 하고, 셋째는 음악 전공(성악이나 피아노 등)이어야 하고, 넷째 연상이고 (저보다) 키가 컸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이상형의 아가씨를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정재문 씨가 하루빨리 그의 이상형인 아가씨도 만나고, 미국 유학도 하고, 그의 꿈인 제3세계에 그의 목소리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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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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