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인 함정균 씨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에이블뉴스

“제목! 우리 아빠!” 낭랑한 민서 양의 목소리가 담긴 1분 47초 영상이 유튜브에 게재됐다. ‘예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된 마술사의 진솔한 이야기~!’란 제목에 끌려 클릭!

“우리 아빠는 멋진 마술사이다. 교통사고 전까지는 그랬다.”

손에서 비둘기가 나오며 환호를 받던 마술사의 모습에서, 사고로 망가진 오토바이, 그리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씻는 장면까지 차례차례 바뀐다. “아빠는 사고 전과 많이 달라졌다. 혼자서 옷도 못 입고 혼자서 씻지도 못한다. 아빠는 못 하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지하철을 타고, 영상을 찍고, 장애가 있는 손으로 직접 6시간 이상 걸려 영상 편집도 마친다. 영상 속 그는 민서 양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슈퍼맨’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지하철 환승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지 2년 6개월.. 아빠는 촬영하고 편집한 것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SNS에 올렸던 것이었다.”

지난 2016년 11월 유튜브에 개설된 ‘함박TV’(https://www.youtube.com/channel/UCGHRIgIdfbN4tEwdmz5zthg)는 현재 510개의 동영상, 그리고 2000여명의 구독자가 함께하고 있다. ‘함박웃음’을 뜻하는 ‘함박TV’ 운영자는 척수장애인 함정균 씨(만 46세, 지체 3급)다.

사고 전 마술가로 활동했던 함정균 씨.포털사이트 프로필도 등록돼있다.ⓒ화면 캡쳐

■마술사 생활 10년, 갑작스러운 사고 ‘충격’

함정균 씨는 비디오카메라, 스마트폰 등 4개의 장비로 지하철 장애인 편의시설을 촬영하고, 직접 편집해 업로드 하고 있다. 장애인에게는 꿀 정보를,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식 전환의 계기를 심어준다.

“몸이 불편해지고 나서 휠체어를 타고 도봉산역을 갔는데 너무 불편한 거예요. 환승 안내도 잘 안되있고. 화가 나서 바로 스마트폰으로 환승 경로를 영상으로 찍었죠. 그걸 계기로 지하철 환승 정보를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2013년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함 씨는 사고 전 꽤 이름이 알려진 마술사였다.

대학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운명처럼 들어온 마술. 인터넷에서 외국 사이트를 뒤져 책과 비디오를 주문해 독학한 끝에 1년 만에 마술대회에서 3등 상도 받았다.

10년간 쏟아지는 공연과 강연, 그리고 쌍둥이 남매 민서 양과 민형 군의 든든한 아빠였던 함 씨, 사고 이후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지 못해 마음속으로 매일 같이 울었다.

“사고가 났을 때가 아이들이 7살, 본격적으로 몸으로 놀 시기였죠. 다쳐서 못 놀아주니까 아이들이 많이 서러워했어요. 저도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함박TV 영상 캡쳐.160여개의 환승구간 정보가 담겨 있다.ⓒ영상캡쳐

■160개 환승구간 촬영, “고맙다는 댓글 뿌듯”

‘함박TV’ 개설은 우연히 이뤄졌다. 2015년 퇴원 이후, 지하철을 이용해 사가정역에 위치한 녹색병원에 정기적으로 들렀던 함 씨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너무 좋지 않은 모습에 화가 나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촬영한 것을 계기로, 더 많은 장애인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환승 정보 영상을 찍어 올렸다.

“전철 환승을 영상으로 알려주면 좀 더 쉽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영상을 만들었어요, 교통약자 환승은 휠체어 뿐 아니라 유모차 혹은 다리가 불편한 분들도 있기 때문에 환승 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서울권인 서울지하철 1호선 38개, 2호선 44개, 3호선 27개 등 9호선까지 모든 노선과 의정부경전철, 경의중앙선, 경강선, 분당선 신분당선 등을 다룬 상태다. 영상만 160개에 달한다.

3~4분 남짓한 영상에는 각 지하철 환승구간에서 휠체어, 유모차가 환승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또 환승하는데 걸린 시간과 위치, 주의사항까지 꼼꼼히 담아냈다.

“대체로 처음에는 볼일 있는 곳에 가서 촬영했고요. 영상을 올리다 보니까 다른 역도 해달라는 제보나 요청이 와요. 특별히 날 잡고 가서 촬영하기도 하죠. 서울권은 모두 촬영했고, 2년 안에 경기도권도 모두 촬영해 올릴 예정이에요.”

함 씨는 지하철 환승 정보 외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휠체어 나들이 영상으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경마공원, 한국시리즈3차전, 한국민속촌 등의 영상을 통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영상들을 보고 서울 여행을 계획했던 미국에 거주하던 척수장애인이 큰 도움을 받았다는 댓글에 큰 감동도 받았다.

“항상 언급하는 분인데요. 내용도 정확히 압니다. ‘함박TV를 발견하고 보물 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이대로만 루트를 짜도 한국 가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흥분됩니다!’란 댓글이었죠. 그 외에도 척수장애인 분들이 도움이 된다고 말씀해주시면 뿌듯합니다.”

영상 편집을 하는 함정균 씨 모습. 촬영을 위한 장비는 총 4개다.ⓒ에이블뉴스

■“휠체어리프트 무서워”, 편의 개선 절실

하.지.만. 영상 촬영이 모두 아름답지만은 않다. 불편한 편의시설 때문에 화도 나고, 휠체어리프트에 떨어져 사망한 장애인들의 소식에 안타까울 때도 많다.

특히 함 씨는 지난해 신길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다 사망한 한 모 씨의 사건을 언급하며, “휠체어리프트는 정말 무섭다”고 했다. 또 대림역, 충무로역, 창동역을 공포의 환승구간으로 꼽았다.

“대림역의 경우 휠체어리프트로 환승하는 구간이 엄청 깊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창동역의 경우도 계단 바로 앞에 휠체어리프트 버튼이 있는데 위험하죠. 사람이 죽어야 제도가 조금씩 바뀌는 거죠. 매우 안타까워요.”

전동휠체어를 탄 채 여행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장애인도 기본적으로 화장실과 식당에는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작은 턱 때문에 불편함을 겪을 때가 많다.

“종로 시내에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턱이 있어서 도저히 들어갈 곳이 없었어요. 결국 편의점 밖에서 점원을 불러 길바닥에서 빵을 먹었어요.”

함박TV 유튜브 채널 화면.ⓒ화면캡쳐

■“장애인식 바뀐다면 내 영상은 성공한 것”

인기 유튜버들의 경우 광고 수익에 따라 1달에 억대 수입까지 올린다. 문득 함박TV의 수익 또한 궁금했다. 함박 웃음을 짓던 그는 후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광고가 적어요. 월 10만원 언저리죠. 영상을 찍기 위해 들어가는 돈에 비해 택도 없어요. 하하”

“척수장애인이 10만명 정도 되는데, 다 구독자가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잖아요. 장애에 대한 편의, 그리고 인식이 개선돼야겠다는 생각이 전달된다면, 제 영상은 성공한거죠.”

현재 함 씨는 더 질 높은 영상을 제공하기 위해 1인미디어제작스쿨 수업을 받고 있으며,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식개선강사도 도전할 계획이다. 물론, 함박TV 업로드도 계속된다. 몇일 전 촬영한 김포공항역의 경우 환승 편의가 거의 완벽하단다.

“함박TV를 통해 장애인들의 불편한 점을 계속 업로드할거에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길 느리게 느리게 전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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