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불현듯 서해(西海)에 풍랑(風浪)이 일어

오늘 아침

천지가 온통 요란스럽습니다.

하늘에 구름은

한층 바삐 달음질치고

수목(樹木)들이

슬픈 몸짓으로 설레입니다.

난데없는 소란에 황급한 꾀꼬리

몸을 감추고

숲 속 소스라쳐 깨인 벌레소리

하늘에 가득 찹니다.

아아 영혼의 슬픈 유랑(流浪)과

조락(凋落)의 붉은 상장(喪章) 몸에 두르고

가을이 산을 넘어

찾아옵니다.’

이 시는 김현구 시인의 ‘입추(立秋)’이다. 봄이 오면 싹이 나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다. 서해의 풍랑, 하늘의 구름, 꾀꼬리, 벌레소리 등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예고한다. 슬픈 유랑과 조락의 붉은 상장을 두르기 전에.

서영선 씨. ⓒ이복남

가슴을 쥐어뜯으며 견디기 어려웠던 젊음도 그렇게 흘러갔다. 인생의 가을쯤에서 삶의 회의와 허무를 일깨워주는 쓸쓸한 겨울만 남기고.

서영선(1960년생) 씨의 고향은 경상북도 상주군 화서면 달천리이고, 그는 3남 4녀의 다섯째였다.

“해방 전 아버지는 연해주 같은 곳에서 보따리 장사를 했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고향 상주에서 농사를 지었다. 부산에는 어떻게 왔을까.

“6.25 때 피난을 왔습니다.”

그 때 피난 온 곳이 지금의 대청동인데 그는 아직도 그곳에서 그대로 살고 있단다. 부산 중구 대청동은 용두산 공원 부근으로 국제시장이 가까이 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아이들을 키웠다.

“어머니가 모자 기술자였답니다.”

일반 저고리. ⓒ이복남

어머니는 집에서 모자를 만들었고 아버지는 그 모자를 국제시장에 납품했다. 어머니가 모자를 만드는 동안 그가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가 만드는 모자 옆에서 자랐다.

“7~8개월 동안은 잘 자랐답니다.”

돌이 되기 전에 열병이 그를 덮쳤다. 어머니는 하던 일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렸다. 며칠이 지나자 열은 내렸다. 자박자박 걷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세워 놓으면 픽 쓰러지고 또 세워 놓으면 픽 쓰러졌다.

“그게 소아마비였던 모양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침을 맞았고 어머니는 한약을 달였다. 그가 소아마비에 걸린 것은 왼쪽 다리였는데 그는 얼굴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침을 맞았다. 의사가 침을 놓으면 침을 맞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울었다.

“꽈배기 과자가 유행이었는데, 꽈배기 과자를 양손에 쥐어 주면 울음을 뚝 그쳤답니다.”

젊은 날의 서영선 씨. ⓒ이복남

대여섯 살까지는 침을 맞았는데 침을 맞고 꽈배기 과자를 먹었던 것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적령기가 되어 남일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왼발을 사용하지는 못했으나 목발은 짚지 않았고 왼손으로 왼쪽다리 무릎을 짚고 오른발을 끌면서 다녔다.

“엄마는 일을 하고, 나는 큰누나 손을 잡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체육시간에는 당연히 교실지킴이였다.

“저학년일 때는 교실지킴이가 좀 서운했는데 고학년이 되니까 차라리 교실에 남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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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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