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홀로 지킨 딴 하늘에서

받아들인 슬픔이라 새길까 하여

지나가는 불꽃을 잡건만

어둠이 따라서며 재가 떨어진다.

바람에 날려 한 많은

이 한 줌 재마저 사라지면

외론 길에서 벗하던

한 줄기 눈물조차 돌아올 길 없으리.

산에 가득히 …… 들에 펴듯이 ……

꽃은 피는가 …… 잎은 푸른가 ……

옛 꿈의 가지가지에 달려

찬사를 기다려 듣고 자려는가.

비인 듯 그 하늘 기울어진 곳을 가다가

그만 낯선 것에 부딪혀

소리 없이 열리는 문으로

가는 것을 나도 모르게 나는 가고 있다.’

이 시는 김광섭 시인의 ‘가는 길’이다. 고독한 상황을 참고 견디기 위해 빛나는 불꽃을 잡아 보기도 했지만 불꽃은 뒤따라온 슬픔으로 인해 재가 되고 만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외롭고 고독한 인생길에 꽃은 피는가.

노선영 씨. ⓒ이복남

그녀의 인생길도 외롭고 고독했다. 앞앞이 말 못하고 가슴을 치며 홀로 삼킨 슬픔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참으로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웃을 수 있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노선영(1966년생) 씨의 고향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이다. 그녀는 6남매의 막내로 위로 오빠가 셋이고 언니가 둘이다. 가난한 촌 동네라 부모님은 새벽이면 들로 나가시고 해가 져야 돌아오므로 그녀는 언니들 손에서 자랐다.

가난했으나 막내로 태어나 집안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첫돌 무렵부터 자박자박 잘도 걸어 다니며 엄마 아버지 큰오빠 작은오빠 큰언니 작은언니도 곧잘 불렀고 밥 달라 국 달라 업어 달라 등 못하는 말이 없었다.

“사촌언니가 있었는데 언니들과 놀다가 높은 대청마루에서 떨어졌답니다.”

친정엄마와 언니. ⓒ이복남

아이가 대청마루에 굴러 떨어져 자지러지게 울었으나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서로의 잘못에 대해 겁이 나서 함구했다. 아이는 울고 보채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고 밤새 열이 펄펄 끓었으나 집에는 돈도 없고 근처엔 병원도 없었다.

“엄마가 무슨 해열제를 썼는지 잘 모릅니다.”

그렇게 며칠인가 시름시름 앓다가 털고 일어났다. 아마도 청각장애는 그 때 생긴 것 같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식구들은 단지 말없이 조용한 아이로만 알았다.

다섯 살 때 할머니가 아이가 이상하다고 했다. 뒤에서 부르며 고함을 질렀는데 못 알아 듣더라는 것이다. 그제야 어머니도 애가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는 것을 알고는 뒤에서 냄비 뚜껑 같은 것을 두드렸다고 하는데 그녀는 듣지 못 했기에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막내라서 귀엽다고 한 것 같은데 귀가 들리지 않자 언니 오빠들도 같이 잘 안 놀았습니다.”

그녀는 놀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조그마한 인형이 하나 있었는데 인형이 누더기가 되도록 혼자서 인형하고만 놀았다. 세 살 때 그랬으므로 웬만한 말은 할 줄 알았을 텐데 귀가 들리지 않자 자연히 말문도 막혔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들 말하는 입모양을 보고 대충 짐작만 할 뿐이고 집에서 엄마 아빠 심부름 같은 것은 눈치로 알아차렸다.

지금은 이름이 노선영이지만 어릴 때의 이름은 말순이었다. 집에서는 막내라고 말순이라고 했다는데 말순아! 말순아! 부르는 입모양을 보고는 자기를 부르는 줄 알았다.

노선영 씨의 처녀시절. ⓒ이복남

학령기가 되어 근처에 있는 지곡국민학교를 다녔다. 귀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칠판글씨나 선생의 입모양을 보면 공부는 눈치로 따라 잡을 수 있을 텐데 선생은 야속하게도 제일 뒷자리에 앉혔다. 선생은 키대로 앉힌 것 같은데 뒷자리에서는 선생의 입모양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선생은 왜 알지 못했을까.

“저는 앞자리에 앉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고, 오빠나 언니들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못했다. 선생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냥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공부를 못한다고 선생한테 많이 맞았습니다.”

선생은 공부를 못한다고 그녀를 때리고 방과 후에도 남아서 복습을 하게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제법 멀어서 어린 아이가 걸어가는 걸음으로는 한 시간 남짓했다. 혼자 남아서 공부를 해야 하므로 무섭기도 했지만 언니 오빠들은 아무도 와 주지 않았다.

“언니나 오빠들이 쟤는 똑똑하니까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 때는 그 말이 많이 서운했습니다.”

한참을 지나고 보니 선배 중에 청각장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애는 엄청 시끄러웠다. 그러나 자신은 말없이 조용한 아이였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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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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