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나 연주 등을 배우면서 작곡가 라흐마니호프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라흐마니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좋아합니다.”

기초적인 음악점자는 읽을 수 있었지만 세부적인 전공도서와 이론은 들으면서 암기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행사에 협연자로 출연하기도 했고(2010. 10), 그 밖에 여러 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다.

피아노 치는 박송이 씨. ⓒ이복남

졸업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드레스덴 음대 A교수가 인제대학교에 온다고 했다. 예고 음악 선생은 3학년 학생 몇 명을 인제대로 데려갔는데 송이도 그 속에 포함되었다. 독일에서 온 A교수는 송이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 보더니 자기학교에서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외국 유학을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송이는 독일어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면서 드레스덴 음대를 가기 위해 입시를 준비했다.

“드레스덴 대학 입학시험은 바하(18세기)에서부터 메시앙(20세기)까지의 각 시대별로 한사람씩의 음악을 다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송이는 피아노를 가르치던 피아노 레슨 선생과 함께 독일 드레스덴 대학으로 갔다. 그야말로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 그것도 시각장애인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서툰 독일어로 겨우 알아듣고 피아노를 쳤는데 입학시험은 합격이었습니다.”

드레스덴 대학에는 기숙사가 없었다. 학교 근처에 방을 하나 얻어서 자취를 했다. 드레스덴 대학에는 한국 유학생들도 있었지만 송이반에는 한국인도 없었고, 시각장애인도 없었다.

“필요한 일은 근처 한인 교회 사람들이 도와주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특별히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주의라서 부탁하면 잘 도와주었으나, 부탁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았다. 어쩌면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개인주의에 길들여진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혼자 살아야 했으니 어려움은 없었을까.

“목표가 있으니 그런 것은 없었으나 개인주의라 약간 외롭기는 했습니다.”

박송이, 그녀의 목표는 피아노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위해서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피아노 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곤 했다. A교수는 너무나 유명해서 세계 곳곳을 다니기에 드레스덴 대학에서는 만나 보기도 어려웠다. A교수를 만나기 힘들어지자 그 대신 엄마가 보고 싶었다. A교수는 만나기가 어렵지만 엄마는 한국으로 가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향수병에 걸린 것인지도 몰랐다.

“엄마 나 한국으로 갈래, 엄마가 보고 싶어요.”

졸업을 앞두고 그렇게 부산 집으로 다시 와서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연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독일 문화에 대해 사전 이해 없이 간 것, 주변의 도움을 주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한 점, 그리고 향수에 대한 외로움이 저를 힘들게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체계적으로 제가 가려고 하는 길을 가겠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이제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박송이 씨의 회상과 다짐이다.

“일단은 국내 대학에 다시 입학하려고 합니다.”

국내 대학을 목표로 연습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기회를 놓쳤기에 내년을 바라보고 연습하고 있단다.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일반인과 겨루어 당당하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모발기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박송이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하루 종일 피아노 연습을 한다고 한다. 지금은 음악 점자 악보가 많이 제작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레슨 강사가 악보를 보고 시범을 보여 준 음계를 그대로 외워 연주한다. 비장애인들은 메트로놈(속도계)으로 박자나 속도를 재지만 박송이 씨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레슨 강사가 그녀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는데 따라서 강약이나 속도를 조절한다고 했다.

박송이 씨는 피아노 치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

“재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을 겁니다.”

그동안 피아노를 치면서 어려운 일은 없었을까.

“선생이 맘에 안 들어서 바꿔 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안 된다고 해서 속이 상했습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사람이 바뀌면 지도하는 방법도 달라, 오히려 혼선이 오므로 안 된다고 했는데 다행히 송이가 잘 참아 넘겼고 지금 와서는 송이도 잘 한 일이라고 생각 한단다.

박송이 씨는 긴 생머리를 올백으로 곱게 빗어 넘겨서 묶고 있었다. 머리를 참 곱게 빗었는데 엄마가 빗겨 주었을까.

“아니요, 제가 빗었는데요.”

머리 빗는 것은 혼자서도 잘 한다고 했다.

“머리는 입시 때까지 기르고 합격하면 자를 거예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머리는 왜 자르려고 할까.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소아암 환자들이 쓰는 가발은 염색도 파마도 안 한 생머리여야 된다고 해서 대학에 입학하면 잘라서 기증하려고요.”

소아암 어린이들은 항암치료 중에 탈모가 발생한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서는 정서지원사업으로 소아암 어린이들의 스트레스를 경감해주기 위해서, 모발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가발을 지원하고 있다. 기부하는 모발은 염색이나 파마를 하지 않은 25cm이상의 생머리이다.

피아노의 최고가 되겠다는 꿈은 좋은데 그 꿈이 설마 하늘까지는 아닐 테고 과연 어디까지일까.

“현재는 대학 진학 후 쇼팽 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 입상해서 카네기홀에서 연주하는 것입니다.”

박송이 씨. ⓒ이복남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는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레데리크 쇼팽을 기리기 위해 1927년에 시작된 피아노 경연대회이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세계무대 등용문이자 꿈의 콩쿠르로 불린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 주기로 열리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2015년에 조성진이 우승했다.

“대부분이 쇼팽의 피아노 발라드를 치는데 1~4번 전곡은 약 40분쯤 됩니다.”

악보도 없이 40분을 치려면 연습은 얼마나 해야 할까.

“아직은 그냥 할 만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휴일이면 엄마와 같이 서울로 사사를 받으러 간단다. 그러는 가운데 지난 4월 23일에는 부산시각장애인기독선교회 제7주년 창립기념 행사, 6월 2일에는 장전중학교에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일환으로 쇼팽의 연습곡, 쇼팽 피아노 발라드 1번, 하이든 피아노소나타 Op.60번 1~3악장, 그리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3악장 등을 연주하기도 했다.

인생에는 많은 갈림길이 있다. 어느 길로 갈 것이냐 고민하면서 한쪽 길을 택하게 된다. 박송이 씨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먼 훗날 그녀가 택한 길이 잘한 일인지는 그 때 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녀가 택하지 않았던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므로 내가 걸어간 길, 그리고 내 선택이 옮고 바른 길이었음에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가는 길이 많이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더라도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길에 매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싶다.<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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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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