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큰엄마와 같이 광주전남지방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았다. 징병검사 전담의사는 장애가 몇 급이냐고 물었는데 그도 큰엄마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군대는 면제였고 의사는 장애등급을 받아 보라고 했다.

“의사가 보건소에 가보라고 했는데 거기서 지체장애 1급을 받았습니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사실상 앵벌이는 정리를 하고 왔었다. 그런데 장애 1급을 받았지만 막상 뭘 해보려고 하니 할 게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수 없이 장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응급구조요원 양성교육. ⓒ이복남

삼륜 오토바이를 하나 마련해서 잡화 구루마를 싣고 혼자서 여기저기 시장 통을 누볐다. 지난 번 앵벌이를 하면서 봐 둔 도매상에서 잡화를 받아서 시장을 다니면서 팔았다. 뭐라고 하는 대장도 없이 혼자 하니 마음은 편했다.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서도 이곳저곳을 누비다가 대전까지 갔다. 대전에서 장사를 하다가 만남 한 선배가 다른 일을 한 번 해보라고 했다. 그 선배가 말하는 다른 일이란 모 장애인단체였다.

“제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아가씨를 한 번도 사귄 적도 없단 말인가.

“지금은 이렇지만(?) 예전에는 아가씨 앞에는 말도 한마디 못했습니다.”

그래서 장사할 때 사장집 딸이나, 대전에서 경리 아가씨 등 마음에 드는 여자가 더러 있었지만 혼자 속앓이만 하다가 말았단다.

“장애인 단체에 있으면서 오토바이는 한계가 있어서 운전면허를 따고 자동차를 구입했습니다.”

그러자 부산에 사는 한 선배가 부산으로 와 보라고 했다. 처음 부산에서 모 봉사단체에서 일을 했는데 한 선배가 정보화협회로 가 보라고 했다. 컴퓨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컴퓨터를 만질 수는 있었다. 그럴 즈음 청년회 설립을 위해서 회원을 모집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너도 나이가 있으니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당시 부산장애인지역법인연합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김대현 씨가 장애인청년회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김대현 씨를 처음 만났는데 당시 김대현 씨는 그를 보더니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참배움터에서 공부를 좀 해 보라고 했다. 그 후 김대현 씨는 부산장애인청년연합회를 설립하고 회장이 되었는데 그를 사무국장으로 앉혔다.

“저의 오늘은 모두가 김대현 회장 덕분입니다.”

처음 부산에 와서는 영도 남항동 여관방에 살았는데 장애인 야학 참배움터는 동래 온천장에 있었다. 몇 달 동안은 영도에서 동래까지 다녔는데 나중에 반송으로 이사를 갔다.

“참배움터 선생은 주로 대학생들인데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도 못했었기에 중입검정고시부터 고입검정고시까지 치러야 했다.

“수학하고 영어는 정말 어려워서 그동안 6년이나 걸렸습니다.”

이제 다시 대입검정고시에 도전해서 대학을 다닐 거라고 했다. 그 사이에 정보화협회를 그만 두고 구두닦이를 하다가 반송에 임대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사실 부산에 오기 전에는 기초생활수급자도 몰랐습니다.”

그의 호적이 여수 큰아버지 밑으로 되어 있었기에 동사무소에서도 몰랐던 것이다. 그는 부산에 와서야 호적을 정리하고 1인 가구가 되어 임대아파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부산장애인청년연합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을 했습니다.”

회장 이·취임식. ⓒ이복남

물론 무보수 사무국장이었기에 그는 여전히 구두를 닦았다. 부산장애인청년연합회 회원은 1000여 명인데 회원은 성인(주민등록증 발급)부터 50세까지 나이제한이 있다. 청년에는 남녀 구분이 없고 하늘의 절반은 여자라지만 청년회 회원 중에 여자는 1/3이 될까 말까란다. 그것도 젊은 아가씨들은 거의 없고 아줌마들뿐이다.

“미스들은 이런데 나오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회장선출은 총회에서 직접선거가 아니라 이사회에서 간접선거를 하는데 2017년 회장 선거에서 김대현 회장은 나이제한으로 청년회를 떠나야 했다. 이사들은 그가 그동안 사무국장을 해서 청년회를 누구보다 잘 알 테니 회장을 하는 게 제일 낫겠다며 만장일치로 추대하였다. 회장의 임기는 3년인데 연임할 수 있다고 했다. 청년회에서는 무슨 사업을 할까.

“문화기행으로 작년 4월에 일본 후쿠오카를 갔는데 그날 밤에 지진이 났습니다.”

2016년 4월 16일 새벽 호텔방에서 잠을 자다가 지진을 만났다. 호텔에서는 대피하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엘리베이터는 사용중지인데 어디로 어떻게 대피하란 말인가. 장애인은 갈 곳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살겠지! 그는 호텔방을 나가지 않았는데 얼마 후에는 잠잠해 지더란다.

“일본여행에서 지진이 기억에 남지만 별로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꿈은 꿈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했던가. 일본 ‘태양의 집’에도 가 봤는데 우리 곁에도 ‘태양의 집’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단다. 그리고 응급구조교육을 1년에 두 번 씩 하는데 그도 응급구조사다. 그리고 장애인복지실무는 그도 배우고 다른 청년들에게 교육도 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박진영 씨. ⓒ이복남

한편 장애인청년회 회원들은 대부분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여수 바닷가에서 헤엄을 잘 쳤기에 수영을 한 번 해보려고 했으나 자신과는 잘 안 맞더라고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좌식배드민턴이었다.

“휠체어 배드민턴은 선수들이 많은데 좌식배드민턴은 선수들이 별로 없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부산의 좌식 배드민턴 선수로는 20여명이 매주 일요일 오후에 2~3시간씩 연습을 하고 있지만 우승은 요원하단다. 좌식 배드민턴에도 단식과 복식 등이 있는데 오픈등급은 장애인복지카드만 있으면 가능하므로 다리가 성한 사람들도 앉아서 하므로 그들을 이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장애청년들이 너무 참을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는 장애인복지라는 말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작은 것에도 못 참고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아서 약간은 안타깝단다. 그리고 장애인 선배들이 단체 임원에 연연하기 보다는 후배들의 역량강화에 힘을 좀 써 주면 좋겠단다.

“후배들의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 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단체 회장단들은 한 사람이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청년들이 올라 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이든지 장애인 단체든지 열심히 일해 보려는 청년들에게 선배들이 일자리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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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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