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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문 밖 세상, 아픔은 예술이 되다

[인터뷰] 시인·일러스트레이터 최윤정 작가

“학교 못 다닌 서러움 커, 장학금 조성이 꿈”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4-10 17:03:39
자신의 작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최윤정 작가.ⓒ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자신의 작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최윤정 작가.ⓒ에이블뉴스
최윤정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 두리함께에서 주최한 제주도 팸투어에서 였다. ‘생애 첫 여행’이라며 환한 미소로 기자에게 명함을 건넨 그녀는 놀랍게도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직접 디자인했다는 아기자기한 그림이 마음에 쏙 들었다. “기자님, 최윤정 선생님은 시도 쓰세요.” 여러 재주를 가진 그녀의 이야기가 참으로 궁금했다.

“저는 학교를 다니고 싶었어요. 작은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게 일상이었어요.”

1959년 2월15일 서울 신촌에서 4녀1남 중 셋째로 태어난 윤정 씨는 선천적 뇌병변장애인이다. 윤정 씨의 엄마가 임신했을 때 많이 아파 약을 먹어서 그렇게 됐다고 들었다. 윤정씨 바로 위 작은언니 또한 같은 장애를 가졌단다.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오남매 모두 학교에 보내기 힘들었다. 비장애인 형제부터 학교를 보낼 수 밖에 없던 엄마, ‘나중에 꼭 보내주겠다’는 말만 믿었지만 형제들이 모두 졸업해도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의 가방을 한 번씩 메어보고, 어깨너머로 책을 읽는 것이 윤정 씨의 일상이었다.

“학교를 너무 다니고 싶어서 많이 울었어요. 나중에 어른이 돼서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널 가르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형편이 되지 않아 학교를 보내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팠을까요? 엄마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생각만 하면 지금까지 아파요.”

성인이 된 후에도 윤정 씨의 일상은 ‘작은 창문 밖 세상보기’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을 바라보며 일상생활을 기록했다. 속상했던 내 마음도 적어보고, 휠체어 탄 나의 모습을 고양이에 빗대어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복희 시인이 윤정 씨의 글을 보고 ‘시집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거절하며 돌아왔지만, 지루한 일상 속 문득 ‘한번 해볼까?’란 호기심이 생겼단다. 지금까지 적어온 120여개의 시를 문 시인에게 보여줬다. 그렇게 윤정 씨의 첫 직업이 생겼다.

최윤정 작가가 그린 장애인들. 왼쪽부터 휠체어 사용 장애인,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의족 사용 장애인, 상지 절단 장애인.ⓒ최윤정 에이블포토로 보기 최윤정 작가가 그린 장애인들. 왼쪽부터 휠체어 사용 장애인,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의족 사용 장애인, 상지 절단 장애인.ⓒ최윤정
살짝 내미는 여인의 발끝
소리 없는 윤곽 같다

이름은 두 개
날지 못한 나비가
한을 풀 듯 사뿐히
내딛는 발그림자

유연한 몸매
아치형이 되어 버리고
전설에 갇혀 겁먹은 시선은 떨고 있다

빛을 지탱하는 버선 끝
토닥토닥 손에 흥건히 젖어본다

<고양이, 최윤정>


살금살금 다니는 고양이, 무섭기도 겁먹은 눈이 휠체어를 탄 자신의 모습과 같았다는 윤정씨. ‘고양이’란 작품을 가장 아낀단다.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면 사람들이 무서워 피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이 작품으로 화백문학 문예지에서 문학상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고양이’라는 4번째 시집도 발간했다. “교보문고에서도 팔더라고요.(웃음)”

윤정 씨의 또 하나의 이름은 ‘일러스트레이터’다.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 요소로 표현하는, 흔히 삽화나 캐릭터를 작업한다. 손 장애가 있는 그녀는 모양자를 들고 네모, 세모, 동그라미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몸이 심하게 흔들릴 때는 활동보조인이 옆에서 자를 잡아준다. 색연필로 제작한 그림을 물품으로 제작해 선물하거나 직접 팔기도 한다는데. 최근에는 화장품 케이스에 캐릭터가 실리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 후 그녀는 기자에게 캐릭터가 그려진 거울을 선물하기도 했다.

“수입은 없다고 보면 돼요. 참 안타까운 게 그거 예요. 장애인 예술가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노력해 그리는데 기회가 없어요. 이젠 인식이 바뀔만한데 아직까지 편견의 벽은 높아요. 장애인 작가들의 수준을 다 똑같이 평가하더라고요. 장애를 하나의 개성으로 봐줬으면 하는데.”

활동보조인이자 연인 조성락씨와 최윤정 작가.ⓒ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활동보조인이자 연인 조성락씨와 최윤정 작가.ⓒ에이블뉴스
인터뷰 내내, 지난달 제주여행에서도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준 활동보조인 조성락씨(52세, 남)는 윤정 씨의 세상 하나 뿐인 반쪽이다. 4년 전 활동보조를 하며 만난 두 사람은 물 흐르듯 인연을 이어오고 있단다. 인터뷰 내내 그녀에게 딸기 주스를 먹여주고, 언어장애가 있는 그녀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성락씨를 “다정하지는 않은데 날 끔찍이 생각해요”라는 후한 평도 잊지 않았다.

“제가 작품하는 목적이 있어요. 바로 장학금을 모아서 학교 못 다니는 장애아동에게 학교를 보내주고 싶어요.”

예술가로서의 포부를 밝힐 줄 알았던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의 꿈은 ‘최윤정 장학금’이다. 과거 학교를 다니지 못한 서러움을 잊지 않는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아동을 돕고 싶단다. 목표액은 10억원.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서 꼭 이루겠다는 윤정씨다.

그녀 또한 5년 전 늦은 나이에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현재는 숭실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직도 집안에만 있는 장애인 언니가 바깥에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했다.

“제 호는 우여입니다. 깃 ‘우’에 같은 ‘여’. 깃털처럼 날아오르다, 자유롭게 날아오르더란 뜻이죠. 언젠가는 날아오르고 싶어요. 내 꿈이 이뤄지면 날 수 있을까요, 훨훨.”

당신 또한 긴 아픔 속에서 살아왔지만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남을 더 생각하는 여인 윤정 씨의 소박하고도 찬란한 꿈이 이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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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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