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금정장애인자립센터를 알게 되었다. 그도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뇌전증은 두리발(장애인 콜택시)도 안 태워 준단다. 그나마 지자체를 상대로 투쟁을 해서 2급까지는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고, 두리발도 보호자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보호자 없이 택시는 어떻게 타고 버스나 지하철은 또 어떻게 탈겁니까” 그는 두리발에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고 했다.

“요즘 시각장애인 안마바우처 제도가 있는데 뇌전증은 안 된답니다.” 안마바우처는 지체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 그리고 60세 이상 노인 중에서 기초생활수급자나 평균소득이 140% 이하인 저소득층은 월 4회 10개월간을 시각장애인에게 안마를 받을 수가 있다. (2015년 기준)

뇌전증장애 홍보. ⓒ이복남

뇌전증장애인이 발작하게 되면 신체가 경직되기 때문에 전신이 쑤시고 아프지만 뇌전증장애인은 안마바우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뇌전증장애인이 안마바우처가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지체나 뇌병변 등 장애인의 신체적 재활을 위해서는 10개월도 문제다. 이들은 평생을 받아야 장애 정도가 심해지는 것과 건강이 나빠짐을 예방하고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전증을 잘 몰라서 생긴 일인데, 지난여름 해운대에서 발생한 7중 추돌 교통사고도 마찬가집니다.” 지난여름 해운대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에서 7중 추돌 교통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사고 초기 광란의 질주를 한 운전자는 뇌전증 장애인이라고 했다.

처음에 경찰은 뇌전증 장애인 운전자가 약을 먹지 않아 발생한 발작이라고 했다. 언론은 들 끓었고 뇌전증 때문에 억울한 희생자들이 생겼다며 뇌전증에 대해서 더욱 안 좋게 보도했다.

“이런 일도 다 뇌전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의 무지에서 온 편견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고 운전자는 뇌전증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1차 사고를 내고 도망치다가 2차 사고를 낸 뺑소니 운전자였던 것이다.

그는 몇 번이나 재판정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 2014년이었다. 그는 다행인지 대발작이 있어 2급을 받았지만 부분발작 같은 것은 장애등급을 받기도 어렵단다. “사회생활도 어렵고 장애등급도 받기 어렵다면 뇌전증 장애인은 어쩌란 말입니까?”

그는 금정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공간을 빌려 뇌전증 장애인의 권리 확보와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힘들고 어렵단다. “첫째는 뇌전증 장애인은 노출을 꺼려해서 잘 안 모입니다.”

2015년 현재 부산의 뇌전증 등록장애인은 540명이고 전국은 7,069명이다. “요즘은 동사무소에서도 개인정보라 안 알려주니 뇌전증 장애인들이 직접 연락을 안 해오면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뇌전증단체를 하나 만들기도 어렵다고 했다. “현재는 서로 연락이 되는 50여명이 모여서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병원에서 주는 약을 오래 먹다보니 기억력도 떨어지고 이것저것 생각하면 머리도 아프단다. 약의 부작용인지 메스껍고 졸리고 피곤하고 자살충동이나 공격성도 있고 그리고 탈모증상이 있는 것 같단다. “전에는 이렇게 뚱뚱하지 않았는데 약을 먹으니까 살도 찌는 것 같습니다.”

수술 후 약을 먹는데도 대발작을 자주하게 되니까 치매도 오는 것 같아 요즘은 치매약도 먹고 있다고 했다. “뇌전증은 발작을 할 때가 아니면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니까 사람들이 장애로 취급도 안하다가 발작을 하게 되면 지랄병이니 뭐니 하면서 인간취급도 안합니다.”

부산시청 앞에서 홀로 뇌전증 홍보. ⓒ이복남

뇌전증의 발작을 하게 되면 어디로 어떻게 쓰러질지 알 수 없으므로 우선 똑바로 눕혀서 주변에서 위험물만 제거해 주면 2~3분이 지나면 깨어나게 된다. “혹시라도 발작이 3분 이상 지속이 되면 119에 신고해 주면 됩니다.”

간혹 사람들이 길에 쓰러져 발작을 하게 되면 게거품을 물거나 청색증이 나타나기도 해서 응급상황인 줄 알고 119를 부르는데 119가 올 때쯤이면 멀쩡하게 깨어난다는 것이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뇌전증은 응급상황이 아니라 일시적인 발작일 뿐이란다.

“어떤 기사에서 보니까 심폐소생술을 하고 또 어떤 한의사는 침을 놓았다고 하던데 뇌전증장애인은 심폐소생술이나 침으로 신체를 압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오히려 뇌전증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제가 한 번은 밖에서 발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깨어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알고 보니 발작 중에 누군가가 심폐소생술을 한다면서 가슴을 눌러서 생긴 압통이었다.

얼마 전에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얼굴에 상처가 나서 병원에 가려고 두리발을 불렀는데 보호자 없이는 안 된다고 해서 너무 화가 나서 택시를 타고 두리발 회사를 찾아 갔다. “그런데 두리발 회사 관계자가 내가 밀었다면서 상해진단서를 끊어서 저를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뇌전증이 에스컬레이트를 이용하다가 발작을 하게 되면 큰일이므로 지하철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젊은 사람이 왜 타느냐’고 질책하는 것 같단다. 그래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잘 앉지도 못한다고 했다. “뇌전증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누가 알겠습니까?”

뇌전증이 왜 어떻게 오는 지 아직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뇌전증은 천형도 아니고 정신질환도 아니다. 수술이나 약물로 100% 완치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나 뇌전증을 잘 알고 대처를 하면 별로 위험하지도 않고 그냥 지체 등 다른 장애와 마찬가지로 평생 같이 해야 할 친구일 뿐이다.

단, 사람들이 뇌전증에 대해서 좀 알고 이해하여 따듯하게 격려하고 지원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상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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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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