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이 시는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다. 상한 갈대라도 뿌리만 있으면 밑둥이 잘리어도 새 순은 돋아나고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라도 물이 고이면 꽃은 피나니 무엇이 두려우랴,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시인은 힘든 여건 속에서도 결국은 살아남아 열매를 맺는 상한 갈대처럼 지혜로운 삶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철 씨. ⓒ이복남

입으로는 무슨 말을 못 하랴. 그러나 상한 갈대 같은 현실은 온통 고통이고 상처투성이다. 그 고난과 상처를 부둥켜안고 묵묵히 홀로 가는 길은 너무나 무겁고 외롭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홀로 가야 하는 인생인 것을…….

김정철(1975년생) 씨는 부산 수정동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위의 형님과 10살이나 차이가 나니 늦둥이인 셈이지요.” 아버지는 회사원이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했다. “어렸을 때는 별 탈 없이 잘 컸다고 합니다.”

수정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도덕은 잘했다. “나중에 도덕 선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점수는 잘 받았고 방과 후 친구들과 곧잘 야구를 했는데 포수도 하고 투수도 하는 등 야구를 좋아했다.

엄마와 일본 삼촌집 여행. ⓒ이복남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연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는 여전히 수정국민학교를 다녔다. “초량중학교를 가려고 전학을 안했습니다.” 초량중학은 수정동 관내에 있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하루는 자다가 “군부독재 타도”라며 잠꼬대를 했다. 어머니는 아이가 잠꼬대를 너무 심하게 하므로 놀라 아이를 깨웠으나 아이가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이를 들쳐 없고 A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도 ‘오월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독재타도’를 외쳐서 어머니가 제 입을 막았답니다.”

그 때는 1987년 6.29 선언이 있기 전이었다. 문현동 일대에는 날마다 데모대가 ‘군부독재타도’를 외쳤고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것이 각인 된 모양입니다.” 그의 속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것인 지 아니면 데모와 최루탄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것이 이른 바 간질의 시초였다.

뇌전증이 유발될 수 있는 뇌의 부위. ⓒ네이버 백과

날이 밝았고 A병원에 입원했다. -간질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사회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에 2014년 6월 30일 장애인복지법 개정에서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다. - 뇌전증에 대한 검사를 했다. 그의 왼쪽 측두엽에 뇌전증파가 감지된다고 했다. 뇌전증 즉 뇌피질세포의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울었다. “당시만 해도 간질은 귀신이 들렸다느니, 지랄병이니 해서 편견이 심했습니다.” 어머니는 막내의 귀신들린 지랄병을 고쳐 보고자 별 짓을 다 했다. 여기저기 좋다는 병원이나 한의원을 찾아다니고 점도 치고 굿도 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다시 학교에 나갔는데 그 때부터 발작이 자주 왔습니다.” 뇌전증 장애인은 발작이 올 때는 여러 가지 전조증상이 있었다. “저 같은 경우 제일 먼저 귀가 윙하고 울리고 가슴이 조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발작이 오는구나 싶어 화장실 구석에 가서 쪼그리고 숨어 있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오는 발작은 단순부분발작으로 의식은 있지만 한쪽 손이나 발에 감각이상이나 경직이 오기도 한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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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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