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 왔다. 그러나 이제부터 학비와 기숙사비를 낼 사람이 없었다.

“광명학교에서 전국 맹학교에 점자교과서를 대 주고 있었는데 방학 때는 제본 알바를 했습니다.”

한 달 정도 하면 4~5만원을 벌었는데 학비와 기숙사비는 가능했다. 그러나 방학 때면 데리러올 사람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숙식 할 곳이 없었다. 기숙사와 식당은 문을 닫았고 그는 고아도 아니었던 것이다.

주기철목사기념관 순례. ⓒ이복남

잠은 교실에서 잤다. 그리고 건빵을 사서 대접에다 물을 붓고 건빵을 한 움큼 넣고 퉁퉁 불면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교실에서 잘 수가 없으므로 염치불구하고 고아들 틈에 끼어서 잤다.

학교에서도 그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고아가 아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나, 아무도 없는 천애고아인데 그냥 고아로 해 주지.

중3 때 교장 선생이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하면 학비와 기숙사비를 면제 해 주겠다고 했다. 기를 쓰고 공부를 했다. 다행히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제본 알바를 하지 않았을까.

“아니요. 제본 알바는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학비와 기숙사비를 안 내도 되므로 용돈이 넉넉해서 저축도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주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특수교육은 의무교육이므로 학비와 식비, 그리고 기숙사 등 모두가 무료다. 학교에서는 행정적으로는 고아가 아니었지만 실상은 아무도 없는 천애 고아였다.

“방학 때도 데리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서러웠지만 제일 서럽고 외로웠던 것은 명절 때였습니다.”

그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찾아 갈 곳도 없었던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기도의 응답은 그가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고3이 되었지만 대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교장 선생님이 제가 중학생 일 때는 공부를 어떻게 시킬까 걱정했고, 고등학생일 때는 어디다 취직을 시키나 걱정했답니다.”

요즘처럼 안마원이 흔치 않은 때였다. 안마시술소에서는 대부분이 여자 안마사를 원했기에 남자 안마사는 갈 곳이 없었다. 교장 선생은 어디든지 오라는 곳만 있으면 보내라고 했다.

하계수련회에서 점심시간. ⓒ이복남

그는 취업을 하기 위해 노심초사 했다. 80년 여름 부산 해운대 A안마원에서 남자 안마사를 구한다고 했다. 그동안 조금씩 모아 두었던 돈으로 옷도 사고 구두도 새로 장만하고 짐을 꾸렸다. 잘 있거라 대구야! 참으로 한도 많고 서러운 눈물을 흘렸던 곳이었으나 그가 자란 곳이기도 했다.

그는 대구를 뒤로 하고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 그 때까지만 해도 희미하게 윤곽은 알아 볼 수 있었기에 물어물어 해운대 A안마원을 찾아 갔다.

“A안마원에는 남자 여자 안마사들이 여럿 있었는데 저는 주로 파라다이스 호텔로 파견을 나갔습니다.”

당시에는 해운대관광호텔이라고 했는데 손님은 주로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근처에 이병철 회장 별장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이병철 회장을 비롯하여 아들딸들이 휴가를 와서 그를 불렀다.

“처음 한 번 출장안마를 했는데 잘 한다고 계속 부르데요”

이병철 회장 별장에서 부른다는 소문이 나자 그의 인기도 조금씩 올라갔다. 그 외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그를 불렀다.

“출장 안마를 나갈 때면 꼬마(안내원)을 하나 데리고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던 눈도 전혀 안 보이게 되어서 안내원이 동행을 했고 갈 때는 택시를 탔지만 돌아 올 때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택시에서 멀미를 심하게 했습니다.”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도 아니었기에 출장 안마를 거절 할 수 없었다.

“택시를 탈 때마다 이 일이 삶의 터전이니 무사히 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어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기도하면서 다녔는데 이제는 멀미 같은 것은 안 한단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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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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