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음악재활센터 하은주 음악점역팀장.ⓒ에이블뉴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번역가 ‘음악점역사’를 아시나요? “그게 어떤 일이죠?”, “역술가 아니에요?”, “점치는 사람인가”란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음악재활센터 하은주 음악점역팀장.

그녀는 “음악점역사는 말이죠…”란 설명을 수도 없이 해왔단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소한 직업인 음악점역사. 하 팀장을 만나 자세히 들어봤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문자인 ‘점자’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 ‘점역’은 시각장애인들이 촉각을 이용해 읽을 수 있도록 일반 문자를 점자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점역·교정사’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가 공인한 민간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 국어, 음악, 영어, 수학, 컴퓨터 등 총 4개의 과목의 시험이 있는데, ‘음악’과목을 통해 자격을 취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전국 60명 수준이다.

“국어를 포함해서 3개를 취득해야 1급이 나오는데요, 사실 국어, 수학, 컴퓨터 등 학문적인 것들을 많이 취득하세요. 음악 같은 경우는 음악전공자가 아니면 쉽지 않거든요. 음악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전국 60명 정도구요, 현재 복지관에서 25명이 근무하고 있어요.”

복지관 소속 음악점역사들은 1년에 총 500종의 점자악보를 제작한다. 어려운 오케스트라 향연부터 친숙한 트로트까지. 시각장애인들이 신청하는 악보에 대해서는 모두 제작하려고 노력한다는데.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한 개의 악보 당 평균적으로 1주일이 꼬박 걸린단다. 음악점역과 음악교정단계를 모두 거쳐야 완성되는 ‘점자악보’.

먼저 일반 악보를 의뢰받은 음악점역사는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도록 음악점자 규정에 맞게 점자악보를 제작하는데, 단순히 악보에 나온 음표, 빠르기 등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악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 또한 음악점역사들의 몫이다.

“단순히 음표만 나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음표는 가장 중요하구요, 빠르기부터 점점 커지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해석해서 작업해야 하거든요. 만약 오케스트라라면 다른 악기가 어디서 어떻게 들어가는 지도 다 분석해서 작업을 해야겠죠.”

음악점역사가 작업이 끝났다고 끝은 아니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이해가 잘 되는지, 잘못된 곳은 없는지 다시 꼼꼼하게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

예를 들면, 한글의 경우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란 단어를 보고, 띄어쓰기가 잘못됐구나 유추하지만, 음악의 경우 유추할 수가 없다. 검수과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위) 점자악보를 제작중인 음악점역사 모습(아래) 만들어진 점자악보.ⓒ에이블뉴스

음악을 전공한 시각장애인인 ‘음악교정사’와 2인1조로 이뤄 컴퓨터로 제작된 점자악보를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를 활용해 점역사가 제작한 파일을 교정하는 것.

이때 두 사람의 호흡 또한 중요하다. 교정사가 소리 내어 읽고, 점역사는 악보를 보며 최종적 확인을 거친다. 이 과정을 모두 거쳐 점자프린터로 출력하면 작업 끝. 일반악보 1장을 점자악보로 제작하면 3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은 기본이다.

완성된 점자악보는 음악재활센터 홈페이지(www.musicbraille.org)를 통해 시각장애인임을 확인하면 누구나 무료 다운받을 수 있다.

이론서가 담긴 음악교육부터 성악, 건반악기, 현악기 등 다양한 점자악보를 다운받을 수 있다는데. 특히 이 홈페이지는 한글뿐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히 지원해 홍보, 교류를 꾀할 예정.

‘혼자서 음악을 배우고 싶은데.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네요’ 독학을 원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도 최근 무료 점자음악강의까지 개설했단다. 성악을 전공한 음악점역사가 기본적 음표부터 악보를 읽는 과정까지 음성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다운받은 점자악보를 읽을 수 있다는데.

“요즘 시각장애인분들이 음악을 많이 배우시지만 점자악보를 제작하는 유일한 기관이 이곳이거든요. 그래서 지방에서도 점자악보 읽는 법을 배우고 싶다거나 악보를 받고 싶다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희가 종이값만 받다보니까 배송비가 더 많이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 쉽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개설했어요.”

1999년 처음으로 음악점역사업을 시작했다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국내에는 자료들이 많이 부족해 외국 점자서적를 통해 익혀야 했다.

지난 2009년 입사했다던 하 팀장의 경우도 6개월간 유럽 점자서적을 통해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너덜너덜해진 서적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단다.

“저는 시각장애인이나 점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음악점자를 배우고 능숙해지기까지 3개월 이상은 걸렸던 것 같아요. 지금 점역사로 일한지 6년이 됐지만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어요. 그래도 저희가 아니면 점자악보가 필요하신 분들은 다른 곳을 찾아다니셔야 되요. 그만큼 가치있고, 사명감을 갖고 있죠.”

점자악보를 다운받을 수 있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음악재활센터 홈페이지.ⓒ화면캡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번역가, ‘음악점역사’.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청음에 의지해 음악작업을 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에 점자악보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단순한 악보의 경우는 청음으로도 가능하지만, 복잡한 오케스트라 등 악보에 대해서는 한계가 분명 있다. 시각장애인들의 수요가 점점 커져야만 점자악보 활용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활용도가 커지면 음악점역사들의 숫자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시각장애인분들이 점자악보의 활용 목소리를 내주셔야돼요. 수요가 있어야 음악점역사도 늘어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또 음악점역사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들도 많이 기획되야 겠죠.”

하 팀장의 손끝을 통해 만들어진 점자악보. 이를 통해 서울예고 입학생, 예술의전당 무대에 당당히 선 연주가 등이 키워졌다. 꼬박 일주일이 투자해 만들어진 점자악보의 가격은 60원이지만 “절대 60원의 값어치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시각장애인들의 조력자이자, 가장 아름다운 번역가인 음악점역사들은 세상에 한 발, 한 발 나서는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의 징검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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