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정년퇴임식에서 천노엘 신부와 환하게 웃고 있는 지적장애인 문삼세씨.ⓒ에이블뉴스

“오늘 내가 퇴직하요. 산업이 젤 좋은 곳이니깐 모두 산업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건강하쇼.”

26일 광주 첨단단지에 위치한 엠마우스산업 식당 안.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천노엘 이사장, 엠마우스산업 문성극 원장을 비롯한 법인 식구들, 그리고 40명의 동료들 앞에선 문삼세씨(지적1급, 61세)의 소감에 웃음이 터졌다.

파란 눈의 천노엘 이사장도 “참말로 이렇게 열심히 일하셨는데 오래오래 사십쇼”라고 화답했다. 엠마우스산업 설립 이래 첫 정년퇴임자 삼세씨의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마지막을 따라가 봤다.

“정년퇴임 축하드려요!”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꽃다발을 받는 것이 처음인 그는 쑥스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던 직원까지 “삼세오빠”하며 눈물을 흘린다. 기쁨과 섭섭함이 공존하는 복잡한 얼굴과 때가 묻은 유니폼은 삼세씨 인생에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리라.

그의 마지막 출근길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전라도 광주 첨단단지에 위치한 엠마우스산업,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소속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이곳은 양초와 화장지를 생산하는 중증장애인생산품 시설이다. 지난해 35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곳에서 삼세씨는 40명의 동료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매일 오전9시부터 오후3시까지 양초작업장에서 광주, 제주 등 전라도지역의 성당에 쓰이는 가톨릭전례초를 만드는 삼세씨는 최저임금인 매월 75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이번 정년퇴직으로 약 1500만원 가량의 퇴직금도 받는다.

“놀고싶어요”라며 조그맣게 속삭인 그, 하지만 조금은 섭섭했었나보다. 정년퇴임식이 몇 분 앞으로 다가오자, 양초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한다. 동료가 양촛물을 부으면 심지를 세워주고, 단순한 작업으로 보이지만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직장이다. 60년의 인생중 3분의 1을 이곳에서 웃고 울었다.

19년동안 일해온 엠마우스산업 양초작업장. 퇴임을 앞둔 그의 마지막 작업 모습을 담았다.ⓒ에이블뉴스

“삼세씨가 엠마우스로 온건 1999년이에요. 시립갱생원이라는 부랑아시설에서 탈시설하신거죠. 너무 힘들게 사셨어요. 그동안.”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눈에 띄는 삼세씨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 초기 삼청교육대를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조직적인 폭력 및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진 이곳 피검자들의 3분의 1이상은 무고한 일반인이었다. 26살이던 삼세씨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동네를 돌아다녔을 뿐인데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그곳에서 새겨진 문신이라요” 삼세씨 팔꿈치에 그려진 오래된 새 모양의 문신. 그 작은 문신은 삼청교육대 시절 고통스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어 끌려간 부랑아시설 시립갱생원에서도 그 고통은 이어졌다. 알 수 없는 여럿과 마구잡이로 뒤섞이며 술과 담배를 배웠다. 어쩔 때는 담배를 2개씩 물고 피기도 했다는데.

더욱이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그는 정확한 생년월일도 이름도 몰랐다. 문삼세가 아닌 문삼수로, 또 1955년생이 아닌 1957년생으로 그렇게 20년간을 살았다.

“삼세씨는 운이 좋았어요. 무지개공동회에서 탈시설화를 하며 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지역사회로 나오게끔 했거든요. 작업능력이 갖춰진 삼세씨가 1999년 엠마우스와 인연을 맺은 거죠.”

1999년 탈시설화를 통해 무지개공동회 소속 그룹홈으로 오게 된 삼세씨는 같은 해 5월, 엠마우스산업에서 정식직원이 됐다. 하지만 그의 몸은 오랜 시설 생활을 지우지 못했다. 남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너무 강했다.

일을 시작한지 3개월간은 모든 짐을 배낭에 넣고 출근했다는데. “삼세씨 배낭 가져오지 마세요!”란 선생님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몰래 쓰레기장에 배낭을 놔뒀다고. 일을 하던 사이 그의 배낭을 쓰레기차가 들고가버렸단 웃지 못 할 해프닝까지 빚기도 했다.

“한 방에서 12명이서 시설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었어요. 빨래를 널어놓으면 그냥 없어져버렸던 그런 곳이에요. 그룹홈에서도 그 생활을 지우지 못해서 장롱에 꽁꽁 자신의 물건을 숨겨놓기도 했죠.”

의아하기도, 엉뚱하기도 했던 삼세씨의 첫 월급날, 19년이 흐른 지금도 직원들은 잊지 못한다. 당시 37만9000원의 월급명세서를 받은 그는 정금숙 팀장에게 휙 던졌다는데.

“이런걸 뭐하러주쇼잉. 막걸리나 사주쇼잉.” 시설생활에 너무 익숙해버렸던 것일까. 정 팀장은 어린아이와도 같던 삼세씨에게 직접 월급을 받아 막걸리를 사는 법 등을 알려줬다.

정년퇴임식에서 직원들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동료들을 위해 PC모니터를 기증한 문삼세씨. 엠마우스산업 설립이래 첫 열린 정년퇴임식은 축제 그 자체였다.ⓒ에이블뉴스

그렇게 19년의 생활이 지나, 정 팀장은 삼세씨의 정년퇴임식에서 약력을 소개했다. 그의 이름부터 퇴사까지의 생활을 소개한 그녀는 “제가 삼세씨의 약력을 소개할지는 꿈에도 몰랐네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19년간의 생활동안 삼세씨는 웃음을 찾았다. 가장 큰 것은 엠마우스산업에 일하면서 방송에 소개되며 잃어버린 형을 찾았다. 형만 찾은 게 아니라 그의 이름도, 생년월일도 찾은 것. 그의 진짜 이름은 삼수가 아닌, 문삼세였다.

문삼수에서 문삼세가 된 그는 체육대회에서 2인3각을, 구성진 노래를, 가끔은 그림도 그리는 평범한 일상도 찾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제일은 ‘막걸리’란다. 정년퇴임식에서도 막걸리 3잔을 연거푸 마신 그는 “기분 좋아요”란다. 이내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에 막걸리를 가득 채워준다.

정년퇴임을 한 삼세씨를 바라보는 동료들도 섭섭하긴 매한가지. “축하해요”, “섭섭해요”란 말을 남기며 포옹을 한다. 어떤 이는 식사를 마친 그에게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타오기도. 큰 형 노릇을 똑똑히 했던 것일까. 그는 마지막 출근길에 동생들을 위한 PC모니터를 기증했다.

“퇴직하고서는 조금 놀고 싶어요. 막걸리도 먹고 싶고요”란 삼세씨는 앞으로 그룹홈에서 생활하며 엠마우스복지관에서 문화프로그램 강의를 들을 계획이다.

아참, 그의 진짜 계획은 또 있다. “아가씨 한 명 없소”라며 환히 웃는 삼세씨에게 “이제 아가씨 찾으면 안됭께~”란 타박이 따라온다. 아가씨든, 아줌마든 그게 무슨 문제랴. 삼세씨, 그동안 꿈꿨던 평범한 일상을 마구 누리시라요.

천노엘 신부로부터 막걸리 한 잔 받는 문삼세씨. 그가 제일 좋아하는 건 덜도말고 막걸리다.ⓒ에이블뉴스

26일 광주 첨단단지 안 엠마우스산업 식당에서 열린 문삼세씨 정년퇴임식.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찍고 있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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