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건축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단언에도 그는 1년여의 병원 생활 후 곧바로 일상에 복귀했다. 그의
사고로 인해 잃은 것은 너무나 많았다. 오랜 시간 신뢰하며 일 해온 직원들, 회사 앞 사람보다 높이 자란 잡초, 쌓인 임대료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침7시에 출근해 오후9시에 퇴근했다. 주말이고, 휴가고 그에게는 없었다.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야만 했다. 정신없이 일에 집중하며 마이너스를 지워나가기 시작했을까. 이제는 매년 매출이 2배씩 뛰는 든든한 업체의 대표로 거듭났다.
성공적으로 일상에 복귀한 박 대표. 지체1급 척수
장애인이 되면서 얻은 것이 있다는데. 바로 불편한
장애인들의 삶이었다. 다치기 전에는 “불편하겠구나”란 생각이 들면서도 실천을 못했지만 직접 휠체어를 타는 당사자가 되니 자연스럽게 눈높이도 내려가게 된 것.
“저는 그래도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병원에 있다 보니 안쓰러운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한 사람의 삶을 두 사람이 살고 있더라고요. 사업을 하면 꼭 불편한 사람을 도와줘야 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복귀하자마자 사랑의집수리를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흰돌하우징은 사랑의 집수리를 합니다.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후원 및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바랍니다’ 흰돌하우징의 카탈로그 맨 뒷페이지에 적혀있는 문구다. 그는 지난 2010년부터 ‘사랑의 집수리’를 통해 5년간 매년 2000만원 예산에서 무료로 집을 고쳐주고 있다. 올해도 벌써 3군데의 집수리를 마쳤다는데.
“오늘도 사랑의 집수리 작업이 있어요. 동국사랑병원에서 퇴원한
장애인인데요.
장애인 편의에 맞춰서 화장실, 턱 등을 수리할 예정이에요. 가장 필요한 게 아무래도
장애인화장실이거든요. 예전에는 미처 몰랐죠. 당사자가 되니까 건축가로서의 자세가 바뀌었어요.”
늘 좋은 일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장애를 갖고 나서 서러움도 많았다. 세무신고를 하러간 세무서에서
장애인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해 저 멀리 차를 대고 ‘끙끙’ 대며 휠체어를 밀고 왔다.
장애인주차장에 비
장애인이 떡하니 주차해놓은 모습에 대해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바쁠 땐 아무나 차를 대도 되지”란 짜증 섞인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