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이 시는 강은교의 ‘너를 사랑한다’이다. 강은교 시인은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후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진실함에 대해 노래했다고 한다.

후회와 절망은 시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절망의 희망이라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김영희 씨. ⓒ이복남

시인은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바람의 허벅지는 어떻게 생겼으며 사과의 빨간색은 또 어떤 색이란 말인가. 더구나 일출의 눈초리가 일몰의 눈초리를 그렇게 흘기고 있는 줄도 그는 잘 몰랐었다.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처절한 이별은 있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김영희(1966년생) 씨는 서울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의주가 고향이라고 하셨다. 6.25 무렵 월남하셨는데 국군에 입대해서 혁혁한 공을 세우셨단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많은 훈장을 받으셨지만 그 때는 잘 몰라서 언니 오빠가 학교를 다닐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나중에서야 아버님이 국가유공자가 되셨고 현재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님께서 임대아파트에 살고 계신단다.

6.25가 끝나고 아버지는 서울에서 양복점을 하셨다.

“어머니 사촌이 양복점을 하셨는데 그 사촌이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소개 한 모양입니다.”

오빠 하나와 언니 둘은 그럭저럭 보통으로 키워졌는데 그는 3~4개월이 지나도 눈을 맞추지 못했단다. 엄마는 막내딸이 웃는 것 같으면서도 눈을 맞추지 못하자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백내장이라고 했다.

“지금은 망막박리로 왼쪽은 전혀 안보이고 오른쪽은 물체는 알아 볼 수 있는데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백내장이면 사시랍니다.”

어느 숲속에서 김영희 씨. ⓒ이복남

선천성 백내장은 대부분이 원인 불명이거나 유전성이거나 태내 감염 또는 대사 이상에 의하기도 한다는데 그 역시 원인 불명이었다. 일가친척 중에 눈이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그의 어머니가 곱씹어서 찾아낸 원인이 엄마가 임신 때 먹었던 약이었다. 그를 가졌을 무렵 원인 모를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서 임신인 줄 모르고 약을 먹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병원을 전전했으나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다. 어머니는 서울이 싫다고 했다. 그가 일곱 살 때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버지는 서면에 자리를 잡았고 그는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병원에서도 그의 눈은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수술을 해 보자고 했다.

아홉 살 때 서면에 있던 적십자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우리나라의 적십자는 1905년에 고종황제칙령으로 반포되었다. 부산은 해방 후에 설립되어 대청동에서 진료를 하다가 1955년 현재의 전포동 적십자회관 자리로 신축 이전하여 47개 병상으로 운영되었으나 종합병원의 현대화 내지 대형화로 이용객이 줄어들어 적자를 면치 못하자 1986년에 병원은 폐업하고 종합봉사관 청소년수련장 혈액원 등으로 사업을 전환하였다.-필자 주)

그런데 그가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던 병실에는 또 다른 아이들 예닐곱 명이 있었다. 모두가 그와 비슷하게 눈 수술을 한 라이트하우스 원생들이었다.<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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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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