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하씨와 말 '필드'는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절친이다.ⓒ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이 승마 선수가 된다는 것은 그리 위험한 것이 아니예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말의 눈을 빌려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시각장애인들도 저를 보며 조금씩 깨어났으면 좋겠어요.”

화창한 날씨 속 광주의 한 승마장. 회원들이 한가로이 말과 함께 호흡하는 가운데, 눈을 감은채 승마를 즐기는 조금 낯선 모습의 이가 눈에 띈다. 크게 음악을 틀어 놓은 승마장에서 말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는 모습이 꽤 능숙해 보이는 그는 바로 시각장애1급 이병하씨(32)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승마를 할까?”라는 의아함으로 만난 병하씨의 능숙한 승마 자세는 고정관념을 확실히 깨버리는 결과였다. 300m 남짓한 원형 공간에서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과 호흡하며 달리고 있었다. 카세트에 틀어놓은 음악을 통해 위치를 파악하고, 말을 두드리면서 악셀라이트 조정을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오전 내내 말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그는 승마장에서도 한 인기한다. 김병훈 원장의 특별 관리는 물론, 회원들로부터 “병하씨 파이팅”이라는 격려도 꾸준히 듣는다는 병하씨지만, 처음 승마에 발을 들이던 시작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체험승마를 몇 번 경험해봤어요. 제주도에서 했는데 밑에서 마부가 끌어주고, 거의 말이 걷는 수준이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말의 눈을 빌려 달리는 대리만족이랄까요. 그 뒤로 전국의 승마할 수 있는 곳은 다 다녔어요. 서울 쪽도 가보고, 지방 쪽도 20군데 정도 다녔는데, 시각장애라는 사실에 위험하다고 거부하는 거예요. 정말 힘이 쭉 빠지더라구요.”

전국에 위치해있는 승마장을 돌았지만, 병하씨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시도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저 ‘위험하다’라는 게 전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찾아간 광주첨단승마클럽은 다행히 그를 따뜻하게 받아줬다.

광주첨단승마클럽 김병훈 원장은 시각장애를 갖고있는 병하씨에게 9년간 잘 단련된 자신의 말 ‘필드’와 함께 고가의 수강료를 대폭 절감해주는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

김 원장은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에게 어떻게 말을 태워야 할까? 하며 고민이 많았다. 근데 병하씨와 함께하며 내 고정관념도 깨졌다”며 “승마에서는 말의 시각이 20∼30% 정도 차지하기 때문에 말이 사람의 눈이 되어주고, 주어진 공간에서 열심히 훈련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3개월 남짓 이 승마장에서 열심히 훈련해 왔다던 병하씨는 시각장애인 최초로 오는 21일부터 열리는 ‘제11회 국민생활체육회장기 전국지구력승마대회’ 10km부문에 당당히 출전표를 던져놓은 상태다. 지구력 승마대회는 흔히 말 마라톤이라고 불리며, 고도의 기술 보다는 끈기와 말과의 호흡을 중요시하고 있다.

말과의 친밀도가 중요한만큼, 병하씨도 말 ‘필드’와 친해지기 위해 수시로 말을 쓰다듬고, 연습을 마칠때면 각설탕도 듬뿍 선물해준다.

병하씨의 승마를 지켜보던 김 원장은 “말의 시선은 사람의 시선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람이 쳐다보는 곳에 말도 같이 쳐다보는데, 병하씨 같은 경우는 시각이 고정이 안되기 때문에 말이 어디로 가야하지 하며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며 “계속 보조해주고 병하씨가 열의를 갖고 말과 호흡하니까 이제는 정말 한 식구 같다”고 웃음 지었다.

그러나 여유도 잠시, 직접 자신의 말을 타고 병하씨에게 다가가, “병하씨 왼쪽으로 틀어야지, 왼쪽! 왼쪽”, “오른쪽으로 조정해야지!”하며 열심히 지시하던 김 원장은 소나기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병하씨와 함께 말을 타고, 먼 산 쪽으로 달리더니, 20분가량 돼서야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병하씨, 많이 늘었네”, “그렇게 하면돼, 조정을”, “경기할때는 내가 주머니에 카세트를 넣어야겠다”며 아낌없는 격려와 경기를 무사히 마치기 위한 조언도 빼먹지 않았다. 장애를 갖고 있는 병하씨를 위한 김 원장의 따뜻한 온정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병하씨를 직접 데리고 연습을 나가는 김 원장.ⓒ에이블뉴스

병하씨는 9살 때 선천적 녹내장으로 한 쪽 눈이 실명된 이후, 5년이 지나 급우생과 부딪혀서 14살 때 한쪽 눈마저 실명됐다. 한참 사춘기 소년이었던 그는 수술붕대를 푸는 순간 앞이 컴컴해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조선대병원에서 입원한 후, 수술붕대를 푸는데 앞이 캄캄한거예요. 붕대를 풀었는데도요.. 짜증이 아니라 도저히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말도 안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절망해있던 저에게 어머니는 지극한 병간호를 해주셨어요.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모습에 ‘아 정말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망에 빠졌던 2년, 그 후 병하씨의 인생은 달라졌다. 중3때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용돈벌이를 시작했으며, 좋아하던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론볼도 즐겼고, 급기야는 시각장애인 자전거 동호회도 구성했다.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 총 40여명으로 구성된 동호회는 2인용 자전거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자전거를 통해 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자동차를 정말 좋아했어요. ‘자동차 매니아’라고 불릴 정도였죠. 그런데 제가 지금은 운전을 못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자전거를 통해 내가 달리는 느낌을 받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승마를 통해 하늘을 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어요. 제 내재된 욕구불만이 터지는 순간이랄까. 승마를 할 때 가장 행복한 시간이예요”

병하씨는 이번 대회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전국적으로 시각장애인 승마를 알리고 싶다. 지인들에게도 "같이 승마를 배우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해왔지만, 무섭다는 이유로 피해오고 있다는 것.

인터뷰 중인 이병하씨.ⓒ에이블뉴스

“지체장애인일 경우, 재활승마가 정부의 지원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어요. 승마장도 따로 존재하고요. 승마를 함으로써 신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온다고 해요. 그런데 아직 시각장애인 승마는 너무 생소한 종목이죠. 시각장애인도 말을 타면서 자신감과 함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많은 효과를 가져오는데 불구하구요. 사방에 카세트가 장착된 시각장애인 승마장 같은 것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좀 많이 만들어져서 시각장애인도 승마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시각장애인 최초로 출전하는 대회인 만큼, 부담감도 긴장감도 더 하다는 병하씨의 목표는 '2016년 브라질장애인올림픽' 출전이다. 현재 장애인올림픽에는 승마종목으로 시각장애인 승마가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표 선수가 없다는 것.

이번 대회를 계기로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던 병하씨는 “그저 열심히해아죠”라고 수줍게 미소지었다.

병하씨와 인터뷰를 마치자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 “이제 점심 드시고 좀 쉬시겠어요?”라고 묻자, 병하씨는 “아닙니다. 말 좀 더 탈겁니다”라며 다시 ‘필드’에게 다가가더니 승마장을 돌았다. ‘다그닥, 다그닥’ 열심히 질주하는 병하씨의 꿈이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승마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병하씨.ⓒ에이블뉴스

병하씨의 말 '필드'.ⓒ에이블뉴스

연습을 마치고, 함께한 필드에게 각설탕을 먹여주고 있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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