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스가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샘

피아노 앞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악보. 연주곡들이 대부분 엄청나게 빠른 손가락 놀림을 필요로 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모든 곡을 망설임 없이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40여분 동안 열 서너곡 정도, 수만개도 넘을 음표들을 어떻게 다 암기 했을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순서를 외우는 것만도 몇 시간은 족히 걸리고, 외웠다고 해도 다시 순서가 뒤 바뀔 위험 요소가 얼마든지 있는 데 그는 실수도 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지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의 음악의 공감을 위해 한 동안 눈을 감고 감상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잠시의 눈감은 세계는 그가 지니고 있는 영구한 암흑의 세계에 접근 불가능한 것임을 알았기에 그에게 작은 죄책감을 느끼며 보이는 세계로 돌아와 펜을 들었다.

1부 피아노 연주회가 끝나고 메디머시 회원들의 합창이 있었다. 대부분이 노년 층인 합창단은 필리핀어로 된 곡들과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캐롤 오 거룩한 밤을 함께 불렀다.

합창이 끝나고 칼로스가 다시 무대로 올라왔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우리 귀에 익은 토스티나 푸치니의 곡들을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열창했다. 박력있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청중은 감동에 휩싸였다. 곡이 끝날 때마다 피아노를 잡고 조심스럽게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다음 곡을 설명했다. 곡을 설명할 때마다 말미에 타고난 유머 감각을 발휘했다.

“다음에 부를 곡은 로리타 인데요. 멕시칸 식당 이름하고 똑 같네요.”

그가 유머를 말할 때마다 그 특유의 정중한 목소리로 하는 것이어서 더욱 큰 웃음을 자아냈다.

박력과 열정이 있는 성악이 주는 감동, 웃음, 그리고 경이 그것들이 혼합된 음악회가 점점 더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음악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그를 잡아 세웠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연습하세요?”

“여섯 시간 연습합니다. 네 시간은 피아노, 두 시간은 성악.”

무대에서와는 달리 참 정겹고 따스한 음성을 지니고 있었다.

“꿈이 무언가요.”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아노와 성악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요.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빨간 외투의 백인 여성이 내내 함께 하고 있었다.

“부인이세요?”

“아니요, 여자 친구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 대기하고 있어 인터뷰를 짧게 마쳐야 했다.

공연을 마치고 로비에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이 마르도록 칼로스를 칭찬했다. 로버트라고 이름을 밝힌 50대 남성은 대단한 실력에 감탄했다며 그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 그가 나가는 천주교를 찾아 가겠다고 말했다. 성악에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는 한인 H씨는 파바로티의 젊었을 때 음색과 힘을 지녔다고 음악회를 평하기도 했다.

현대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칼로스는 31년 전 미숙아로 태어났다. 미숙아 보호 과정 중 처리가 잘못되어 평생을 보지 못하고 사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인규베이터 시간, 그 3개월을 마치고 그는 겨우 살아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미약한 아이가 오늘의 세계적인 스타로 발 돋음하고 있는 칼로스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은 극심한 장애도 막지 못했다. 두 살 때 반짝반짝 작은 별로 시작된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이제 오대양을 누비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는 워싱턴 디시에 있는 케네디 센터를 비롯 필리핀, 이탤리, 러시아, 호주, 이스라엘 등을 날아다니며 탁월한 피아노 실력과 풍부한 테너로 특유의 무대를 펼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7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두 눈 가지고도 외국어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어머니의 헌신과 성악가 해리 던스턴 등의 훌륭한 지도가 큰 뒷받침이 되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메디칼 미션 오브 머시 유에스에이는 필리핀 계 자선 단체로 주로 의료인들이 자국의 의료 선교와 각국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 주는 단체다.

매년 5일씩 해외 봉사를 나가는 데 5일 동안 보통 2청 5백여명에게 무료로 시술을 한다. 특히 이번 행사로 생긴 수익금은 언청이 장애 아동들의 무료 수술을 위해 쓰여 지게 된다.

* 샘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 미상원 장애인국 인턴을 지냈다. 현재 TEC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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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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