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벽지집의 주인 부부가 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 좋은 벽지집 ‘성진인테리어’ 성중기 사장은 빈집에 들어 왔어도 웃으면서 우리들을 반겼다. 성중기 사장은 이경희 씨가 처음 왔을 때부터 잘 지냈다고 하면서, 손짓과 눈빛으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된다고 했다.

이경희씨(좌)와 성중기 사장(우) ⓒ이복남

“이경희 씨가 처음 왔을 때부터 그가 농아라는 것을 알고는 왠지 친근감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구청에서 구두터를 못하게 하는 바람에 두어 차례 자리를 옮긴 끝에 구청을 설득하고 집주인을 설득해서 현재의 구두터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했다.

“이경희 씨가 성실하게 일을 하니까 저도 아우처럼 잘 대해 주고 있습니다.”

성중기 사장은 이경희 씨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끔 어떤 손님들은 구두를 고치러 와서 말이 안 통하니 자기를 찾아오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범어사에서 스님들의 신발을 수선하는 일이 들어오기도 했단다.

한편 이경희 씨의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으로 데려 왔는데 아이가 여명중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근처인 사직동으로 이사를 갔고, 아들은 동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의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다.

이경희 씨는 아들이 더 이상 바랄 게 없이 최고라고 했으나, 좋은 직장과 착한 아내를 만났으면 했다. 아들은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인데 지금은 취업준비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로 집을 떠나 있다기에 어렵사리 아들과 통화를 했다.

아내와 제주도 여행 ⓒ이복남

“부모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을까요?”

가끔 부모님의 모임에 가면 따라 온 어린 아이들이 있어서 함께 어울려 놀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우리 부모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속으로 짐작은 했지만 실제적으로 청각장애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부모님의 장애인수첩을 보게 되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기는 싫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싶지 않아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5년 때 반장으로 뽑혔다. 공부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담임선생은 부모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군복무중인 아들 면회 ⓒ이복남

가을 운동회가 되면 반장 부반장 등의 부모들이 학교에 왔는데 부모님이 일을 하시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농아라는 사실은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었기에 할머니와 집주인 아줌마가 운동회에 같이 왔었다. 그런데 집주인 아줌마가 다른 학부모들에게서 들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했는데 장애인의 아들이 공부도 못하면서 반장이 되었다고 쑤군거리더라는 것이다.

그 일은 오랫동안 가슴을 핥기는 생채기로 남았다. 어떻게 어른들이 남의 흉을 그렇게 볼 수가 있는지. 그 얘기를 듣고 나자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더더욱 남들에게 말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사춘기였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장애를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으로 여겨 부모님을 멀리 했다는 것을 부모님이 눈치 채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춘기가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어 그런 사실을 처음 느꼈을 때 얼마나 부모님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든지 자신의 철없음에 가슴을 쳤다.

“그 때부터는 우리 부모님을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들 이용철 씨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가 남의 신발을 자기 신발처럼 소중하고 꼼꼼하게 닦고 깁는 모습에서 투철한 직업정신을 배웠다. 가정에서는 든든한 가장이자 아버지이며, 금슬 좋은 부부였는데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 많이 약해진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은 자신을 남부럽지 않은 아들로 키우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셨던 것이다.

이경희씨의 구두터, 앞에 선 사람은 강주수씨 ⓒ이복남

“저도 나중에 부모가 된다면 우리 부모님한테서 받은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싶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는 마음씨 착한 여자면 좋겠지만 부모님이 심성이 고운 분들이니까 별 걱정은 안 된다고 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저를 돌봐 주셨지만 이제는 제가 부모님을 모실 차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얻어 집을 떠나게 되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까봐 걱정이란다. 우리 사회에서 이경희 씨 부부 같은 부모님과 이용철 씨 같은 아들만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아버지는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행복한 부자지간이었다. <끝>

*이경희씨에 대한 인터뷰는 강주수(춘해보건대학 겸임교수, KBS부산뉴스 수어통역) 선생의 수어통역으로 취재했습니다.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