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담임선생의 예상대로 동의대학교 한의대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담임선생이 위험하다고 했지만 ‘무슨 소리냐’며 큰소리 쳤는데 한의대 낙방은 처음으로 맛보는 인생의 쓴맛이었다.

재수학원에 등록을 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학원의 6층이었는데 새벽 5시 반에 학원에 도착하여 밤 11시까지 공부에 몰두했다. 그렇게 1년을 버틴 결과 이듬해에는 당당히 합격을 했다.

미로한의원 입구 대기실. ⓒ이복남

“당시 등록금이 95만 원 정도였는데 피 끓는 청춘인 대학 1~2년은 꼬박 과외로 보내면서 등록금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선배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6개월 정도 진료를 하고는 영주동에 태백한의원을 차렸다. 물론 한의사니까 별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장애인은 결혼이 어려운데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십여 년 전 어떤 환자가 심장이 안 좋다고 찾아 왔는데 진찰을 해 보니 심장 뿐 아니라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었다. 그 환자는 유명의사들도 포기한 상태라며 몇 곳인가를 거쳐서 왔는데 다행히 태백한의원에서는 병이 호전되었다.

“그 환자가 장모님입니다.” 일어과를 나와서 학원 강사를 하던 현재 부인을 만났는데 장모님 덕분인지 10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지금은 서인(9) 자인(6) 규인(4) 세 딸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현재 그의 한의원은 서면에 있는데 2008년 2월에 이사를 왔다고 했다. 태백한의원이 있던 부산 중구 영주동은 도심의 공동화 현상으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거야 별 문제 아니겠지만 지난날 그의 단골손님이었던 어르신들은 나이가 많아 하나 둘 떠나가고 새로운 환자는 점점 줄고 있었다.

그 무렵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장애인 동료와 같이 일침요법을 배우면서 15년 동안 정 들었던 태백한의원을 나와 서면에서 미로한의원을 개원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의원 이름을 미로(迷路)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의원 이름은 迷路가 아니고 아름다움 즉 ‘미(美)로’였다.

마침 미로한의원의 이상민 원장을 찾아 갔을 때 필자도 목이 뻐근하고 왼쪽 어깨와 팔이 아파서 그에게 침을 맞았는데 그는 필자의 오른쪽 다리에 침을 놓았다.

김광호 선생의 일침요법은 장부를 다스리는 것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침도 1~6개만 사용하여, 장부의 근본원인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가장 한의학적인 치료법이라고 했다.

미로한의원 원장실. ⓒ이복남

그는 묵묵히 환자들을 치료하고 공부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그는 장애로 인해 불평하거나 투덜대지 않는다. 다만 비장애인보다 더욱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훈련받은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런 훈련은 과연 누가 시킨 것일까.

“정말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내 스스로 절대로 힘들지 않다고 최면을 겁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어렵지만, 그렇게 말한 기억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100m 달리기는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영원한 꿈에 불과할 뿐이다.

“가끔 아이들을 목말을 태우고 다니는 아빠들을 보면 조금은 부러울 때도 있지만 그 대신 비장애인들이 못 보는 깊음 혹은 느림에서 나오는 단맛을 저는 조금 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가장이라면 처자식을 굶기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지금은 앞만 보고 갈 뿐이다. 나이가 더 들면 시골에 내려가 자연을 벗 삼아 힘든 환자를 돌보면서 공부하고 싶은 게 소망이란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은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하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대부분 말문이 막히는 것 같다. 그는 거울을 얘기한다. 인생은 어차피 반사경이므로 그 거울에 자신만 비추지 말고 타인의 삶도 반영해 보면 많은 깨우침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내가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내가 대접받을 수 있다고 했다. “

사랑하는 시간도 모자라는데 미워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인생은 짧다고 말하는 그는 하루를 25시로 사는 사람 같다. <>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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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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