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따라 열매 맺으리.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

양영식씨. ⓒ이복남

이상은 성경(공동번역)에 나오는 시편 1편이다. 양영식씨는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시편 1편이라 했다. 그는 지금도 묵자(墨子)는 모르지만 점자(點子)를 배우기 이전부터 시편과 성경구절은 외워서 알고 있었다며 시편을 읊조렸다.

시편은 노래와 기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편 1편은 사색의 노래라고 한다. 그는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의인의 길을 걸으며 복된 삶의 길로 가고자 했다.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펴 줄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저런 근심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양영식(48) 씨는 부산 부암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양00(80)는 이북사람으로 1.4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부산까지 내려왔다. 할아버지가 다음을 기약하며 먼저 내려 보냈다는데 그것이 영영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영어를 잘해서 미군부대에 근무하면서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주인의 소개로 어머니 김00(78)를 만나 결혼하였다.

그는 1녀 2남의 둘째인데 위로 누나가 있었고 그가 다섯 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옛날 집은 마당가에 축담이 있었고 그 축담 위에 마루가 있었다. 다섯 살배기 큰아들은 마루기둥을 돌면서 혼자서도 잘 놀았다. 새로 태어난 남동생은 내일이 삼칠일이고 어머니는 산고도 채 가시기 전이라 어린동생을 돌보기에 여염이 없었는데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 온 큰아들의 비명소리에 어머니는 놀라서 마루로 뛰어 나왔다. 마루기둥을 안고 혼자서도 잘 놀고 있던 큰아들이 마루아래 축담에 머리를 처박았는지 피를 흘리며 마당에 나둥그러져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갓난쟁이도 뒷전인 채 큰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에서는 뇌출혈이라고 했다. 큰아들은 머리를 수술하고 붕대를 감고 입원을 했다. 어머니는 동생을 업고 누나를 걸리며 큰아들을 돌보아야 했다. 작은 아들의 삼칠일 같은 것은 간곳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큰아들은 머리의 붕대를 풀고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만하기를 그래도 다행이라며 아들의 퇴원기념을 축하하며 과자 접시를 아들 앞에 내밀었다.

“엄마 눈이 안 보인다.”

병원에 있을 때는 붕대를 하고 있어서 몰랐던 것이었을까. 퇴원 후 집에 와서 처음으로 어머니가 건네 준 과자 접시를 큰아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눈이 안 보이다니. 어머니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처음 다쳤을 때 보다 더 놀래서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큰아들은 눈이 안 보일 뿐 아니라 오른편에 마비가 와서 오른손과 오른발은 잘 쓰지도 못했다. 짐작컨대 아마도 뇌출혈 수술을 하면서 시신경 등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점자 그리고 휴대용점판과 점필. ⓒ이복남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었다. 부모님은 원인도 모른 채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큰아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들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기에 그 의사가 미국에서 돌아오면 다시 머리 수술을 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는 미국에 가기도 전에 서울에서 화재로 죽고 말았다. 1971년에 불타버린 대연각호텔일 거라고 아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 다시 한 번 아들의 머리를 수술해 보겠다던 부모님의 꿈은 저만치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떻게든 큰아들의 눈을 낫게 해 보려고 병원도 다녀보고 점도 치고 굿도 했으나 아들의 눈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 할머니들이 그런 어머니의 정성이 딱했는지 몇 가지 양밥을 일러 주었다.

양밥이란 ‘쥐의 눈알을 먹으면 낫는다 카더라’ 그리고 ‘월남개미를 먹으면 낫는다 카더라’였다. 물론 믿을 수도 없고 믿기도 힘든 ‘카더라 방송’에 불과했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행여나 싶어서 쥐의 눈알을 구해 먹이기도 하고, 월남개미는 집에서 카스텔라를 먹여 키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세월은 가고 아들의 눈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양영식씨 이야기는 2편에 계속.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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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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