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서울시지부 관악지회 개소식 장면. ⓒ김창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서울시지부 관악구지회를 창립하고 현재 지회를 이끌고 있는 김장환(60)씨. 그는 현재 시력을 완전히 잃은 시각 1급의 장애인이다. 충남 서산의 작은 마을, 음암(音岩)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마쳤다. 학창시절 학교까지 8km의 거리를 왕복하며 모두 개근하는 성실함을 보였던 그는 약한 친구와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의협심과 동정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학창시절 의협심과 성실함이 무기…간농양으로 죽을 고비를

20세 때 서울로 올라와 편무기 오파상을 하며 큰 돈을 벌어 27살 어린나이에 잠실의 아파트를 장만하는 등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하지만 그 해 감기증세로 찾아간 병원에서 생소한 간농양(간에 염증이 생기는 병)을 선고받게 됐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그 병으로 3명이 수술을 받았는데 그중에 2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가장 상태가 나쁘다는 그는 3번의 죽음의 고비 끝에 살아날 수 있었다. 그는 수술 후 의식불명 상태에서 꿈속에서 3번에 걸쳐 저승사자가 찾아왔고, 그 시간에 호흡곤란으로 병원에서는 긴급 응급처치를 해야 했었다. 그 똑같은 시간에 그의 아내는 순복음 교회의 기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당시 담당 목사가 기도제목을 함에 넣고 뽑은 뒤 기도를 하는데 11시, 2시, 4시 모두 김장환 회장의 기도제목이 뽑혀지고 교인모두가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그 3번의 시간대에 꿈속에서 저승사자를 만나 사경을 해매고 있었다고 한다.

수술 전 가망이 없어 시체보관 냉동실도 준비된 상태였지만 그는 기적같이 살아났다. “오죽하면 그 후 재수술을 했는데 가망이 없어 대충 수술 부위를 봉합하다보니 수술부위가 덧났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지금 할 일 많기 때문에 살려주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그에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건축 사기로 전 재산을 잃어…성실함으로 구의원 당선

그 후 그는 건축업을 하며 돈을 벌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2번째 시련이 찾아 왔다. 연립주택 건축을 하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게 되고 어린 두 자녀와 월세 방을 전전하며 정말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4월 15일 구의원으로 당선되고 구의회 의장직을 역임하며 눈 코 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에게 불행이 다가왔다.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이던 2004년에 선거사무실을 책임지고 있던 그는 무릎을 다치게 되고 바쁜 그에게 병원은 항생제를 과다 처방하여 당뇨가 있던 그의 눈에 치명상을 주게 되었다. 망막에 실핏줄이 터지고 수술 후 합병증인 녹내장으로 왼쪽 눈이 실명되고 희미하게 보이던 오른쪽 눈마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는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지방으로 내려가 2년간 휴양을 하며 다시 한 번 재기 하려 했으나 그의 절망은 더욱 깊어지고 결국 그는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자살도 시각장애인에겐 장애로 다가왔다. 두 눈이 모두 보이지 않는 그에게 자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결국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로 결심했으나 순간 이러다 죽지 않고 신체까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멈추었다고 한다.

“참 우습죠? 하지만 중도에 장애를 입은 사람들은 꼭 한 번은 경험하는 일이지요.”

장애인계 입문하며 제2의 인생…지역 장애인을 위한 지회 설립

그러던 중 우연히 구의원시절 함께 의정 활동을 하던 지인의 전화를 받고 실로암시각장애복지관을 소개 받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명문대 법대를 나와 시각장애인이 된 복지관 팀장의 격려와 조언을 통해 새 힘을 얻고 기초재활교육, 보행 교육 등을 받으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점자를 쓰는 것은 쉬운데 읽는 것은 너무 어려워요.” 그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쑥스럽게 웃음 지었다. 그렇게 재활교육을 받으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고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구의장 시절 구청장을 지낸 김희철 민주당의원의 소개로 관악구내에 등록 시각장애인이 약 2,200명이고 등록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위한 실질적 도움과 지원을 위해 시각장애인 관악지회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고 김 의원과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의 도움으로 2008년 9월 18일에 창립총회를 갖고, 이후 2008년 9월 30일 인준, 12월 3일 개소식, 12월 19일 시각장애인 초청 송년회 등을 거치면서 지회를 이끌고 있다.

지난 2009년 지회에서는 움직임이 어려운 시각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이·미용 봉사(월 1회), 시각장애인 초청 잔치, 독거 시각장애인을 위한 밑반찬 나눔 활동(월 2회 세계 재단 재해 본부의 협조 20가정), 이불 빨래 세탁 봉사대와 연계) 등의 사업을 펼쳤다. 이제 첫걸음이라 어려움도 많지만 조그마한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관내 시각장애인들에 가장 필요한 재활센터(쉼터)를 만들기로 하고, 현재 장소를 섭외 중에 있다. 하지만 재정이 전혀 지원이 안 되는 터라 지하 12평 정도를 알아 봤으나, 그곳은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해 있고 지하이기 때문에 내려가는 도중 머리가 부딪히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쉼터로 적합하지 않아서, 현재 장소를 위해 구청과 시에 협조를 요청한 상태지만 설립한지 1년 밖에 안 돼서 조례상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이 활동이 어려워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다 보니 그들의 삶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삶의 의욕도 떨어지게 되어 자립은 어림도 없죠.”

그래서 김 회장의 올해 첫 번째 목표는 이런 시각장애인들을 양지로 이끌기 위한 재활 교육센터(쉼터)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미 구의 협조로 컴퓨터 등은 지원 받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제 장소만 확보된다면 쉼터에 컴퓨터를 설치해 시각장애인에게 컴퓨터를 이용하는 능력을 교육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삶의 희망을 얻고 이들이 또 다른 장애인을 도와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그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기초교육을 받으면서 컴퓨터 활용으로 음악을 듣고 뉴스와 신문을 접하며 삶의 의미와 또 다른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행복을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한다. 아직은 재정적으로 어려워 몇 달 전에는 지회 전화비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연말이 다가오자 관내 청년봉사단에서 자신들의 송년회 비용을 모아 쌀 20kg 10포대와 사과 20상자를 보내와 어려운 시각장애인 가정을 방문하여 그것들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때 한 독거 시각장애인 노인은 쌀이 떨어져 3일 동안 라면만 드셨다고 하며 정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실 때 내가 정말 이 일을 잘 시작했구나 하는 뭉쿨함과 다시 한 번 각오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을 음지에서 양지로

그는 직접 일을 해보니 도움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장애인이라는 노출을 꺼리는 본인과 가족들로 인해 이들은 더욱더 음지 속으로 움츠려 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재활센터 건립과 동시에 이런 사각지대의 시각장애인들을 찾아내 도와주려 한다. 또한 정확한 실태 파악을 통해 이들이 정말 절실히 필요한 것을 찾아 관계 기관에 요청하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렵지만 자신에게 3번의 생명을 다시 준 하늘의 뜻이 바로 이런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자신이 구의원 시절 대답만하고 뒷전으로 미루던 장애인 관련 그 일을 지금 자신이 그 요청하는 입장이 되어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서울시지부 관악지회 전화 02-882-3326

*김창화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물리치료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