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테란의 황제’라 불리는 프로게이머 임요한 선수와 멋진 한판 승부를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민석군.ⓒ에이블뉴스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한다고 말하면 다들 놀래요. 컴퓨터 화면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게임을 한다는 게 이상하고 신기한가 봐요. 하지만 ‘폐인’을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게임인데, 시각장애인도 당연히 그 재미를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2004년, 미국의 게임제작업체인 블리자드가 주최한 행사에서 한 시각장애인 남학생이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황제’라 불리는 프로게이머 임요한 선수와 멋진 한판 승부를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서울맹학교 고등부 1년에 재학 중이던 이민석(21·백석예술대 실용음악학과 2학년)씨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그의 경기는 큰 화제를 모았다. 임요한 선수에게 일정부분 핸디캡이 주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씨의 실력은 실로 놀라웠다. 20분간의 격전 끝에 역전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만한 명승부였다.

경기 직후 임요한 선수는 “혹시 보이는 게 아닌지 의심했고, 농락당하는 기분도 들었다”며 그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고, 방송과 언론에서는 그를 극찬해마지 않았다. 게임제작업체인 블리자드사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 그날의 경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이씨는 “임요환 선수에게 3분동안 눈을 가리는 핸디캡이 주어졌기 때문에, 제가 즐겨 쓰는 맵을 가져갔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어요. 사실 아쉬웠죠. 물론 최고의 선수와 경기를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짜릿한 경험이었지만요.” 4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이씨는 마치 어제일 마냥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이러한 실력을 갖기까지는 무단한 노력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기숙사 선배를 통해 게임을 접하게 된 후 스타크래프트의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설계된 온라인 게임을 배우기란 쉽지 않았고, 시력을 대체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해 매일 밤을 새웠다.

그가 게임을 하는 방법은 청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단 게임에 등장하는 수십 가지 건물과 유닛을 지정한 키보드 단축 버튼을 다 외우고, 각 종족이 내는 고유의 소리도 다 외웠다. 게임 중에는 비명 소리를 듣고 적의 위치와 전세를 파악해 공격을 한다. 시각적 한계는 있지만, 그의 실력은 비시각장애인 친구들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다.

“인터넷 게임은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어요. 물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용게임들도 나와 있지만, 수준의 차이가 심하죠. 시각장애인 게임은 컴퓨터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형태라 별로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는 적에게 맞서 전략을 짜고, 내 의지대로 게임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죠.

시각장애 학생들이 누릴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게임문화예요. 게임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지만, 요즘에는 게이머가 직업이 되는 세상이잖아요. 시각장애인들도 또래가 즐기는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온라인게임은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중요한 매개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는 자신을 매료시킨 인터넷 게임을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즐기지 못하는 점이 무척 안타깝다. 또래의 문화를 함께 즐길 줄 알아야 이질감 없이 비장애인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고, 장애인의 경쟁력도 커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씨는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게임을 많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게임문화가 활성화된다면 게임업체들이 시각장애인도 접근가능한 게임들을 만들려고 나서지 않을까요? 전 시각장애인도 유효 고객이 될 수 있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한때 프로게이머를 꿈꿨을 만큼 게임을 좋아했지만, 프로진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아래 그 꿈은 잠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또 다른 꿈이었던 음악을 위해 매진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품고 있다.

“제가 아무리 게임을 잘 한다고 해도 사실 프로게이머를 이길 정도의 실력은 아니에요. 때문에 프로진출은 사실 어렵죠. 하지만 늘 마음 한 자락에 담아두고 있어요. 꼭 게이머가 아니더라도 게임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게임해설가도 해보고 싶고, 게임음악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이 있는데요. 시각장애인들끼리 경쟁하는 프로리그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제 생각보다 세상은 차갑더라고요. 잠시 시도해봤지만 안됐어요. 돈이 되지 않는 장애인경기에 투자할 리가 없죠. 하지만 언젠가는 시각장애인 누구나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게임을 업으로 삼는 시각장애인들이 배출되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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