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벤처기업가 김정호 씨. ⓒ에이블뉴스

“컴퓨터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도구죠. 삶의 중심이기도 하고 제 기반이기도 하네요.” 5일 오후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김정호(시각장애1급·37세) 씨는 컴퓨터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정보통신표준화포럼 관련 표준 연구위원 역임, 2007년 웹 접근성 지키미 선정, 정보통신부장관상 수상 등 컴퓨터와 관련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는 현재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SW) 개발기업인 엑스비전테크놀로지의 마케팅 사업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만졌던 김 씨가 본격적으로 컴퓨터와 함께 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영어로 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누군가 자신의 타이핑한 화면을 읽어주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때 만난 컴퓨터는 김 씨에게 행복감을 줬고, 현재의 직업까지 갖게 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던 김 씨가 IT분야로의 진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김 씨는 “장애인을 어떻게 하면 고용 활성화를 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고 싶어 사회복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했어요. 그러던 중 전부터 알던 시각장애인 프로그래머들과 얘기를 하다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그걸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창업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회사를 창업하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컴퓨터가 없었으면 제 삶은 우울했을 거에요. 학교는 졸업했겠지만 입만 산 사람이 되었겠죠.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글로 담아내지 못하니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현재 하상장애인복지관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며칠째 밤을 샌 김 씨. 김 씨는 "현재의 일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우선 흔하지 않은 일이고 개발자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힘들죠. 시각장애인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니 미덥지 않은 시선도 많았고, 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한다는 건 TV에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던 김 씨는 "지금은 인식 등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며 미소를 보였다.

컴퓨터의 보급과 활용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제2의 개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개인편차가 있겠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웹사이트 접근이 힘들다. 이는 현재 이슈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김 씨는 정부가 정보화 교육에 힘을 많이 써 시각장애인이 집에서 혼자 컴퓨터를 사용하는데는 거의 불편함이 없으나 스크린 리더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이 없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회사에 취업해 서류를 작성하는 등의 회사업무를 수행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스크린 리더가 화면을 충분히 못 읽어주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이러한 것에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요. 그래서 스크린 리더의 개발·보급과 함께 훈련이 많이 돼야 해요. 자동차 운전면허를 딴 뒤 연수와 연습 등을 거쳐 안전한 운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애는 많이 써서 기초 인프라는 많이 구축해놨는데 교육과 훈련이 없어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취업 등은 힘들다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씨는 시각장애인 전자도서와 관련해 “도서가 점점 많아진다고 하나 20만명이라는 시각장애인의 수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죠. 그리고 도서관 소장 도서에 비해서도 그 비율은 굉장히 적고요. 또 대학 교재의 경우도 주제가 같다고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아요. 비장애인은 선택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은 선택을 할 수 없고 마련돼 있는 도서를 봐야 하죠”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컴퓨터 환경이 엄청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빠른 속도는 스크린 리더가 따라가기 벅찬 수준까지 격차가 커지고 있어요. 빠른 정보화 속도와 같이 가기 위해서는 계속 개발해야죠. 프로그램 개발은 집 짓는 것과 같아요. 절대적인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죠. 개발해야 할 것도 많고 또 보완해야 할 프로그램도 많고, 할 일도 많고, 일손도 많이 필요한데 한정된 인력이 걱정이예요.”

이러한 걱정을 안고 있는 김 씨에게 최근 시각장애인 청소년들이 "또 다른 희망 직종이 프로그래머"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큰 희망으로 다가온다.

김 씨는 “시각장애인들이 공부해서 프로그래머가 되는 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사실 비장애인 프로그래머들은 메리트가 별로 없어서인지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시각장애인 프로그램의 개발은 먼저 개발자 자신에게 필요하고 또 그것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씨는 정부를 향해 “정보통신과 관련해 새 서비스와 기술을 도입할 때에는 시각장애인의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각장애인을 많이 고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컴퓨터를 사용해 최근 벌이고 있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있는 김정호 씨.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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