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소중한 우리 땅을 두 발로 느껴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꿈을 이뤘습니다.”

시각장애 마라토너가 한반도 서쪽의 인천 강화군 창후리 선착장에서 동쪽의 강원 강릉시 경포 해변까지 308㎞를 64시간 이내에 달리는 ‘2010 한반도 횡단 308km 울트라 마라톤대회’에서 당당히 완주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시각장애 1급 이용술(48)씨. 울트라 마라톤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두 번의 실패 끝에 ‘3수’ 만에 한 반짝 한 발짝 내디디며 출발 62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에 마라톤으로 한반도를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9일 인천을 출발한 이씨는 11일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강릉 경포 해변에 도착해 박수와 함께 완주 꽃다발을 받았다.

골인 지점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이씨는 "소중한 우리 땅을 눈이 아닌 발로 직접 달리면서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걸 이뤄 정말 기쁘다"며 "다른 장애우들에게도 꿈과 희망의 선물이 되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후천성 시각장애인인 그는 풀코스 완주 158회를 비롯해 울트라 마라톤 30여회, 고비사막 마라톤 완주 등 일반인을 뛰어넘는 출중한 이력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앞서 2006년과 2008년 한반도 횡단 마라톤에 도전했지만 250㎞ 지점과 173㎞ 지점에서 각각 도전을 멈춰야 했을 정도로 그에게 한반도 횡단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 대회는 100㎞ 이상의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어야 참가 자격이 주어지지만 참가자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데자뷔'(최초 경험임에도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 현상까지 겪는 등 완주가 무척 어려운 대회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는 시각장애 마라토너들을 돕는 모임인 ‘해피 레그’ 회원들의 도움으로 그동안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쳤고 낙동강 200㎞울트라 대회에도 참가해 완주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지난 8월에는 이번 대회의 지옥의 코스로 알려진 횡성 태기산 오르막과 대관령 내리막길을 직접 답사하고 마찰로 허벅지가 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치마를 입기도 하는 등 만반의 준비까지 갖췄다. 실제로 그는 이번에 치마를 입고 달렸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도 사흘 내내 폭우가 쏟아진 것은 물론 사타구니와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터져 달리는 것은 고사하고 걷기조차 힘든데다 지난 9일 출발과 함께 의욕이 너무 앞서면서 발을 접질리는 사고를 당해 최악의 조건을 극복해야 했다.

이씨는 “시각 장애인은 귀가 눈인데 겁이 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려 빗소리와 비옷의 마찰소리로 도우미들의 위험 신호 등을 잘 전달받지 못한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그런 만큼 도우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씨의 이번 완주는 휴가까지 내고 도우미로 나선 김용열(49)씨를 비롯한 6명의 '해피 레그' 회원이 오르막과 내리막길에서 이씨가 지칠 때 같이 달리는 등 철저한 역할 분담을 해 이뤄졌다.

이씨는 “형제도 못하는 것을 해피 레그 회원들이 해줬다”며 완주의 공을 도우미에게 돌렸다.

김용열씨는 “폭우가 쏟아지는 등 최악의 조건에 250㎞ 지점을 넘어서는 체력이 급격히 저하됐는데도 이씨는 한 차례도 포기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이씨의 끊임없는 도전을 옆에서 돕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풀코스 200회 완주를 위해 계속 도전하고 장애인을 편견하는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과 함께 기회가 되면 소망이기도 한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여행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도전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117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는 이씨 외에 국내 거주 미국인 마크 졸린 씨를 비롯해 다섯 번 연속 완주한 여자 마라토너 김순임씨, 해군 SSU대원 등 이색 도전자들도 많았다.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 박길수 회장은 "이 대회에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사회와 가정에서 인생의 굴곡을 경험하고 전환기를 맞은 4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출전하는 사람이 특히 많았다"라고 말했다.

yoo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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