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Saint-Exupery)의 작품 어린왕자 中.

몹시 쓸쓸할 적에는 해지는 게 보고 싶어,어느 날은 해 지는 것을 마흔 네 번이나 구경했던 어린 왕자.

처음 '어린 왕자'를 만났을 때 참으로 가슴이 아렸던 것 같다. 쓸쓸할 적에는 어린 왕자처럼 백목련이 지는 것을 구경하러 갔다. 긴 겨울 매서운 바람 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고한 자태로 홀로 피는 백목련. 봄소식이 들려오고 백목련이 슬픈 조종을 울리면 북으로 향했다. 어린 왕자가 해 지는 것을 보는 데는 의자를 몇 발자국만 물려 놓으면 그만이겠지만 백목련이 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북행 열차를 타야 했던 것이다. 목련이 피고 지면 기차를 타고…. '어린 왕자'를 만난 후 해마다 그렇게 봄앓이를 했다.

인생은 만남이다. 만남은 우연처럼,축복처럼 이루어진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머물다 떠나면서 때로는 슬프게,때로는 기쁘게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만남이다. '어린 왕자'와의 만남은 축복이었다. 그 무렵 이 소중한 만남을 위해서 많은 지인들에게 '어린 왕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얼마 전 '어린 왕자'를 다시 찾았다. 1973년 인문출판사 초판본. 책값은 500원이고 그림은 흑백이다. 모서리는 낡아서 더러더러 헤어졌고 꼬질꼬질 손때가 묻은 데다 속살은 누렇게 빛이 바랬지만 '어린 왕자'는 나의 보물이자 경전이다.

어쩌다 장애인복지 일을 하게 되면서 더욱 자주 '어린 왕자'를 찾게 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편견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어린 왕자'에 답이 있었던 것이다.

여우가 말했다. '나는 밀밭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좋아 질 거야'. 여우가 빵을 먹을 리도 없고 여우와 밀밭은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럼에도 여우가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밀밭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린 왕자와 길들여졌고, 어린 왕자의 머리 색깔이 황금색이기 때문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한번 길들여지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아쉬워지는 거라고 여우가 말했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하기 시작할 거야'

장애인을 이방인 취급하는 것은 장애인들과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장애인교육이란 특수학교라는 높은 담장 속으로 장애인을 몰아 넣고 20년 가까이 격리시켜 놓기에,가족 친지가 아닌 다음에야 장애인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대는 길들여져서 아쉬워지는 친구가 있는가. 기다림이 행복한 순간이 있었는가. 창을 열고 밤하늘을 쳐다보라. 어린 왕자의 영롱한 눈동자가 그대를 맞아 줄 것이다. 그러나 못 만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본다고 했으니 말이다.

10여년을 일해 왔던 단체를 떠나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팸플릿 첫머리에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실었다.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운 것은 어린 왕자가 있기 때문이고,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며,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7월 15일 부산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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