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아지똥의 포스터.

지난 제헌절 휴일 오후,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에서 서성거리느라 아이들을 돌볼 틈이 없던 나는 늘 하던 대로 EBS 교육방송을 틀어주었다.

꼭 특별한 시간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며 인형극이 많이 나오는지라 교육방송은 우리 집의 고정채널이 되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야채를 썰기 위해 도마질을 하던 나의 귀를 사로잡는 감미로운 피아노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너가 하고 보니 '강아지 똥' 이라는 타이틀이 화면 가득 떴다. 서둘러 비디오에 공테이프를 넣고 녹화버튼을 눌렀다.

이런 좋은 작품은 두고두고 간직하며 보아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신문에서 '강아지 똥'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강아지 똥'은 한국 최초의 장편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고 게다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TAF(Tokyo animation fair)2003'에서 파일럿 콘텐츠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한국 아동문학서적 중 스테디 셀러로 알려진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여, 요즘 신세대 뮤지션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루마가 음악을 맡았고, S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 CF를 담당한 권오성 감독의 연출로 원작의 감동을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과 함께 입체적인 영상동화로 재현해냈다.

"넌 더러워."(참새)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개똥."(흙덩이)

"점심거리로도 못 쓰겠다."(닭)

시골 어느 외딴 돌담길에 버려진 강아지 똥에게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강아지 똥의 존재를 무시한다. 한없는 슬픔에 잠긴 강아지 똥에게 옆에 있던 흙덩이가 위로를 하지만 마침 그를 버리고 간 농부아저씨가 다시 와서 소원대로 밭으로 돌아가고 엄마나무에게 버림받은 가랑잎이 와 신세한탄을 하지만 매서운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린다.

홀로 남은 강아지 똥은 세찬 바람을 맞으며 외롭게 겨울을 보낸다. 그리곤 어느 날, 그에게 봄이 다시 오고 어느 새 민들레가 불쑥 다가와 놀라운 말을 던진다.

"내가 별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존재인줄 만 알았던 강아지 똥은 기뻐하며 "내가 너의 살이 되어줄게"라고 말하며 드디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다.

따뜻한 봄햇살에 강아지 똥이 녹아 민들레에 스며들어 꽃을 피우게 하고 홀씨를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강아지 똥'의 원작이 갖고 있는 매력을 영상을 통해 다시 보는 것도 즐겁지만 똥이라기 보다는 감자처럼 동글동글한 귀여운 캐릭터의 강아지 똥과 실제 경기도 양평군 조안면 양수리의 마을사진을 찍은 것을 토대로 해서 만든 사실적인 미니어처, 권정생 선생님의 얼굴을 닮게 만든 농부 아저씨, 영화 내내 흐르는 이루마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을 감상하는 것 또한 이 영화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클레이 애니매이션은 이미 잘 알려진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을 만든 영국 아드만사가 세계 클레이 애니메이션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찰흙 소재로 된 점토인형을 한 동작씩 일일히 수작업으로 옮긴 후 찍는 'stop watch'방식이라 '강아지 똥' 또한 제작에만 1년여 세월이 걸렸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도 훌륭하지만 제작진의 오랜 끈기와 고도의 숙련도를 요하는 영화 장르라 이러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헐리우드 영화의 장면을 패러디하고 다소 과격하기까지 한 빠른 속도의 인형들의 움직임이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영국 아드만사의 작품들에 비해 우리의 국산 애니메이션 <강아지 똥>이 다소 정적이고 밋밋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만의 고유한 정서와 이미지만큼은 세계적인 클레이 애니매이션 반열에 오를만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폭력과 선정성이 난무하는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요즘 아이들에게 가치없는 것들에게도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이 작품을 꼭 보게 했으면 한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요구대로 이 학원, 저학원을 오가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오로지 타인과의 경쟁에 승리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살아가는 데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감동을 전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영화를 보던 도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그동안 모두에게 하찮은 대접을 받던 강아지 똥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민들레를 만나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장면에서였다.

아들 승혁이의 미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정신지체 3급 장애아동으로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만 하고 살아가지만 언젠가 다른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의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힘겨워하는 장애아와 장애아 부모들에게도 꼭 힘이 되는 영화이다.

극중 흙덩이가 강아지 똥에게 던진 위로의 말 "너도 어디엔가 꼭 귀하게 쓰일거야"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간다면 세상의 모든 장애아들도 강아지 똥처럼 언젠간 사회에서 '귀하게 쓰일'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영화 '강아지 똥'에 관한 정보는 제작사인 아이타스카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www.doggypoo.co.kr)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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