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이식을 해 주면 죽습니까?”

“죽지는 않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 난립니까?”

얼마 전 KBS2 드라마 ‘이름 없는 여자’ 에서 골수이식 이야기가 나올 무렵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그야말로 난리였던 이야기다.

이름 없는 여자. ⓒKBS2

KBS2 저녁일일드라마 ‘이름 없는 여자’의 기획의도에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위대한 모성. 그래서 그 모성은 위대하고 숭고하며 감동적이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본능적이고 집요한 사랑은 때론 이기적이어서 또 다른 이를 잔인하게 위협하기도 한다.’고 되어 있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제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고 결심한 엄마 홍지원과 구해주. 그 잔혹한 모성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지켜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고 스스로의 이름까지 지운 또 하나의 모성 손여리가 있다.

그러나 홍지원이나 구해주 두 여인에게 과연 누가 돌을 던지랴!

손여리(오지은 분)는 아버지 손주호(한갑수 분)와 살고 있는 미대생이다. 손여리의 아버지 손주호는 위드그룹 회장으로 있는 구도영(변우민 분)의 운전기사이다. 위드그룹 안주인 홍지원(배종옥 분)은 손주호와 같은 보육원 출인인데 홍지원에게는 손여리와 동갑내기인 구해주(최윤소 분)라는 딸과 해성이라는 아들이 있다. 그런데 아들 해성이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신이시여, 제 자식을 살려만 주신다면 어떤 벌도 달게 받겠나이다!”

홍지원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주변 모든 사람들의 조직검사를 받게 한다. 그런데 손주호의 딸 손여리의 조직이 해성과 일치 하는 게 아닌가.

홍지원은 손주호를 찾아가서 해성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나는 너희들 종으로 살았지만, 내 딸만은 안 돼!!”

홍지원은 해성을 살리고자 손여리를 입양시키려고 했으나 아버지 손주호가 반대한다. 홍지원은 말 안 듣는 손주호를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죽인다 - 요양병원에 몰래 입원시켜 나중에 찾게 되지만.

홍지원은 손주호가 죽고 난 후 손여리를 입양시켜 해성에게 골수이식을 하게 한다. 그런데 해성의 백혈병이 재발한다. 두 번째 골수이식을 해야 할 상황인데 손여리가 달아났다. 그동안 손주호와 손여리는 김무열(서지석 분) 식구들과 오랫동안 한 집에 살면서 손여리는 김무열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홍지원이 자기 아들 해성의 두 번째 골수이식을 위해서 손여리를 찾았을 때 손여리는 김무열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여리는 홍지원이 보낸 폭력배를 피해 달아나다가 폭력배가 실족사하자,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으로 피신해서 이름 없는 여자 즉 김불상이 된다. 손여리가 달아나자 홍지원은 아들 해성과 조직이 맞는 골수를 찾지 못해 결국 해성은 죽고 만다.

“너 때문이야!”

홍지원은 자기 아들 해성을 죽였다고 손여리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법제처

그동안 구해주는 위드그룹 본부장 김무열이 손여리의 남자라는 것을 알고는 김무열에게 접근하여 빚을 갚아주고 결혼한다. 손여리는 감옥에서 딸아이 봄이를 낳고, 구해주는 가야와 마야라는 쌍둥이 남매를 낳는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이런 일 저런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여성수용자가 교도소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53조(유아의 양육)에 의거 18개월 동안은 아이를 키울 수가 있다.

손여리는 봄이를 지키기 위해 김불상으로 10년형을 받았는데 3개월 만에 봄이가 폐렴에 걸렸다. 봄이는 외부 보육원으로 보내져 치료를 받는 줄 알았는데 봄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손여리는 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때 감방 동기였던 사채업자 서말년(서권순 분)을 만난 후 서말년과 윤기동(선동혁 분)의 딸이 된다. 출소 후 손여리는 구도영의 이복동생 구도치(박윤재 분)와 결혼하고, 죽었다는 봄이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구해주는 가야와 마야라는 쌍둥이 남매를 낳았으나 마야가 백혈병으로 죽었다. 홍지원은 손여리 때문에 자기 아들 해성이가 죽었다며 복수를 결심했는데 이번에는 마야마저 죽고 말았던 것이다. 홍지원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손여리의 딸 봄이를 몰래 데려와서 구해주의 죽은 딸 마야의 이름으로 키운다. 손여리에게 복수를 다짐한 홍지원은 마야 즉 봄이를 엄청 구박하고 못 살게 하면서도 키우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손여리가 모든 것을 알았다.

홍지원과 구해주가 가야 동생으로 봄이를 키운 것은 가야의 백혈병이 발병할 경우 가야의 골수이식 대비용으로 수술 받게 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가야는 백혈병으로 입원했고, 손여리는 마야 즉 봄이를 찾았다. 구해주와 홍지원은 봄이가 없으면 가야가 죽는다고 손여리에게 매달리고 애원하고 겁박했다.

손여리가 봄이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봄이를 키우려고 데려간 게 아니잖아.”

봄이를 뺏어 가려는 구해주와 홍지원, 봄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손여리와 구도치, 서말년과 윤기동은 손여리와 봄이를 외국으로 보내려다가 공항에서 다시 붙잡히는 등 숨 막히는 추격전이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는 동안 ‘이름 없는 여자’의 실시간 검색이나 블로그, 카페 등은 ‘골수이식을 해주면 죽습니까?’라는 문제로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봄이는 가야를 그리워한다. 가야가 입원해 있는 동안 아빠 김무열은 ‘가야가 영어 캠프에 갔는데 너를 보고 싶어 한다’며 가야와 전화연결을 해 주고 봄이를 몰래 데려오다가 손여리에게 들키기도 한다. 그러나 봄이는 가야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는 엄마 손여리에게 애원한다.

“저, 가야 살려주면 안 돼요?”

조혈모세포 기증 절차.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손여리도 가야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차마 봄이의 청을 뿌리치지 못한다. 병원에서는 오후 3시까지 오라고 했다. 아직 시간은 남았지만 손여리는 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그 때 아버지 윤기동으로부터 손여리의 친부가 있는 요양병원을 찾은 것 같다며 빨리 오라고 한다. 죽은 줄만 알았던 친부 손주호가 살아 있다니…….

손여리는 요양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구해주는 손여리가 봄이를 데리고 달아날까봐 노심초사 감시하고 있었는데, 손여리가 병원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몰자 손여리가 도망치는 줄 알고 뒤쫓아 간다.

“손여리를 죽여서라도 마야(봄이)를 데려 갈 거야.”

손여리가 봄이에게 잠깐 기다리라 하고 병원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뒤따라 온 구해주 차가 손여리를 덮치려는데 봄이가 손여리를 밀쳐내고 구해주는 차를 멈춘다. 마야(봄이)가 다치면 안 되므로.

아무튼 손여리가 찾아 간 요양병원에 친부 손주호는 없다. 손여리는 급히 그 자리를 수습하고 가야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봄이를 데려 간다.

가야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KBS2

아직 오후 3시는 멀었는데 가야는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떠났다. 구해주와 홍지원은 가야가 죽은 것은 손여리 때문이라며 패악을 부린다. 구해주는 “우리 가야 살려 내라”고 울부짖으며, 손여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겠다며 괴롭힌다. 홍지원은 손여리를 때리며 “네가 가야를 잡아먹었다”며 온갖 원망을 퍼붓는다.

또 하나, 차마 웃어버릴 수도 없는 어이없는 설정은 14년 동안이나 누워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손여리의 친부 손주호는 14년 전 홍지원의 고의적인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차가 폭발했음에도 그 순간에 죽지 않고 살아 난 것은 아이들 만화 같은 이야기지만 드라마니까 그렇다 치자. 당시 교통사고를 조사하던 오형사가 홍지원에게 돈을 받고 아무도 몰래 손주호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해 왔었다.

14년을 누워 있다가 걸어 다니는 손주호. ⓒKBS2

구해주는 자신의 아들 가야가 죽은 것은 손여리 탓이라며 복수를 다짐하는데, 홍지원이 손주호를 숨겨 놨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의 딸 손여리를 괴롭히려고 홍지원 몰래 손주호를 빼돌려 감금한다. 정신이 혼미한 손주호는 구해주를 홍지원으로 착각하고 “지원아! 네 딸이 살아 있다”며 손여리가 예전에 홍지원이 버린 딸이라고 말한다. 구해주는 아들 가야가 죽은 원망에다 손여리와 홍지원에 대한 복수로 친모녀 간인 홍지원과 손여리가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14년 동안이나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손주호가 - 보통의 사람들은 몇 달만 누워 있어도 욕창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 욕창하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으니 아연할 수밖에.

아직 인간의 신체는 로봇 같은 기계가 아니다. 14년 동안이나 누워서 지냈다면 설사 다시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재활기간이 필요하다. 장애인 중에서는 오랫동안 누웠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는 만화 같은 그런 오해를 하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혹여라도 비장애인 중에서 그런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심히 염려스럽다.

‘이름 없는 여자’에서 해성이 죽고, 마야가 죽고, 가야마저 죽었다. 홍지원과 구해주는 모든 것이 손여리 때문이라며 손여리를 괴롭혔다. 왜 손여리가 구해주랑 똑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하는 걸까. ‘이름 없는 여자’ 시청자 게시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야가 죽은 것은 손여리의 책임이 아님에도 손여리 탓으로 돌리는 내용에 대해서 질타했다.

‘이름 없는 여자’에서 말하는 골수이식이란 조혈모세포이식이다. 백혈병 등 혈액종양 환자에게 새로운 조혈모세포를 이식해 주는 치료법이다. 난치성 혈액종양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새로 심어줌으로써 질병을 완치시킬 수 있다고 한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려면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해야 한다.

‘이름 없는 여자’ 시청자 게시판. ⓒKBS2

조직적합성항원의 일치는 부모가 5%, 형제자매가 25% 정도이고 그 외 비혈연관계는 수천 내지 수만분의 일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조혈모세포이식의 치료성적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다른 장기이식처럼 공여자가 부족해 조직적합성항원이 맞는 공여자를 찾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조혈모세포 기증자는 18세 이상 40세까지의 신체건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봄이(마야)는 이제 겨우 12살의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도 조혈모세포를 기증할 수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라는 김무열은 가야를 위해서 골수이식을 하도록 마야를 꼬드기기까지 한다.

가야가 죽은 것이 손여리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름 없는 여자’에서는 백혈병으로 어린 생명을 세 사람이나 하늘나라로 보냈다. 홍지원의 아들 해성이를 비롯하여 구해주의 쌍둥이 남매 마야와 가야까지 다 죽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가능이나 한 이야기일까.

조혈모세포 기증은 기증희망자로 등록을 하게 되면 그 가운데서 항원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게 되는데 비혈연간 일치자는 2만 분의 1 정도라고 하니 조혈모세포를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조혈모세포 기증 공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만에 하나 그대가 생명나눔운동을 실천할 수 있음은 또 하나의 행운이므로 기꺼이 그 기쁨을 맞이할 수 있기를…….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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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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