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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인터뷰, 한승완 시인

사회복지사로 근무, 올해 구상솟대문학상 수상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1-30 09:51:16
2021구상솟대문학상패를 들고. ⓒ한승완 에이블포토로 보기 2021구상솟대문학상패를 들고. ⓒ한승완
한승완(남, 45, 지체장애)은 실속형 작가이다. 자기 직업이 있기 때문에 경제생활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승완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가장인 어려운 가정이었다. 자식 사랑이 지극한 어머니가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아들을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고 승완은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하며 학교생활을 하였다.

공부를 잘 했지만 체육에서 점수를 깎이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던 그즈음 승완은 점점 몸무게가 늘어났고, 어머니는 허리 디스크로 아들을 더 이상 업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택하였다. 독학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2005년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였다. 그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꾸준히 학업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선한 직업 사회복지사 한승완

컴퓨터가 가정에 보급되기 전, 한승완은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애인 목사님이 목회의 한 프로그램으로 개설한 장애인 컴퓨터교실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 결과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나서 교육과정을 마치고 승완은 보조교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런 성실성을 인정받아 목사님이 그를 직원으로 채용하여 20세에 드디어 월급을 받는 직업인이 되었다.

중증 지체장애인이 취업이 되었을 때 가장 힘든 점은 출퇴근이었다. 자가운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운전면허증을 획득한 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취업 장애인 대상 자동차 구입비 대출 사업을 이용해서 경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생기자 사회 활동에 자신감이 생겼다.

사회에 처음 나올 수 있게 해 주신 윤경열 목사님과 30년을 함께하며 차근차근 지금의 사회복지법인 행복원으로 성장시켰고, 드디어 한승완은 2019년도 중증장애인거주시설 행복누림 원장으로 취임하여 원생 30명, 직원 26명을 관리하는 대표로 자리매김하였다.

장애인계에서 탈시설화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시설이 필요한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며 올해만 해도 입소 상담 건수가 15건이지만 시설 정원제여서 누군가가 퇴소를 해야 입소가 가능하다.

탈시설화로 시설을 새로 만들지 않고 있어서 장애인시설이 부족 현상을 낳고 있다.

한승완은 자립이 가능한 원생은 적극적으로 퇴소를 지원한다. 지역사회로의 전환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주거시설에는 하루하루가 사건사고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초비상이다. 행복누림에는 무연고자가 43%나 되어 사망을 하면 장례까지 치루고 그 원생의 삶을 정리를 해야 하는 일도 해야 한다.

멋진 직업 시인 한승완

문학과의 만남은 한승완의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아주 재미있다. 신승훈 노래를 너무 좋아했는데 특히 그 가사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글로 표현해 보곤 하였는데 그것이 쌓이자 시가 되었다.

자신의 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발표할수 있는 지면을 찾다가 『솟대문학』에 투고를 하였는데 자신의 작품이 활자로 책에 실리자 매우 신기했다. 컴퓨터 파일로 있을 때는 초라해 보이던 시가 책으로 나오자 아주 근사해 보였다. 거기다 원고료도 보내주어 너무 놀랬다. 창작으로 생긴 수입이 비록 액수는 적지만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원고료를 받으면 그날은 가족 파티가 벌어졌다. 치킨과 콜라만 있어도 진수성찬이었다.

그런데 구상솟대문학상에는 도전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가 상을 받을 수준은 아니라는 겸손함이 만든 양보였다. 그러다 코로나19가 그를 다시 문학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 결과 2021년 첫 도전으로 구상솟대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수상 소감 글 가운데 이런 부분이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됩니다. 도쿄올림픽이 한창이던 날 구상솟대문학상에 당선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이어도 참 행복한 꿈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기쁘면 사람이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삶은 끝없는 배움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내가 구상솟대문학상을 받게 되다니….’ 제 생애 가장 기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올해는 구상솟대문학상에 46명이나 응모, 예년에 비해 더욱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10명 응모자의 시를 본심위원 유자효(시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 회장), 맹문재(시인,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승하(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3인이 세심히 검토한 결과 후보가 3명으로 압축되었다. 합산 결과 한승완이 최고점을 받았다고 구상솟대문학운영위원회(위원장 김초혜 원로시인)에서 밝혔다.

이승하 교수의 심사평 마지막 부분을 소개한다.

-한승완의 <벚꽃 백신>은 자연의 치유력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 나가는 과정이 실감있게 전개되는데 언어의 조율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벚나무에 봄비가 찾아와 원료를 주입시키면/벚나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백신을 만들 채비를 한다”는 첫 문장부터 조성된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이 시의 최대 장점이다. 바이러스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퇴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공기, 맑은 물, 나와 너의 거리, 청정한 자연이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 시인의 주장에 십분 동의 한다. ‘감또개’ 같은 작품이 질적 완성도는 더 높다. 투철한 역사의식의 산물이어서 주제가 아주 미덥다. ‘탱고를 추고 싶었다’는 공감각적 표현이 뛰어난 시인데, 웬만한 기성시인의 시보다 훨씬 낫다. 한승완 시인의 앞날을 기대감을 갖고 계속 지켜보고 싶다.-

한승완은 올해 45세, 형님이 한 분 있지만 노모를 모시고 산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을 위해 밥을 짓는다. 주위에서는 결혼을 해서 어머니를 편히 모시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애를 나누어 주고 싶지 않아서 독신을 고집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중증의 장애 인을 돌보는 선한 직업에 시인이라는 멋진 일을 하고 있는데 독신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사회복지사 수기공모전에서 정호승 시인과 함께(사진 왼쪽), 2019국무총리상 표창. ⓒ한승완 에이블포토로 보기 사회복지사 수기공모전에서 정호승 시인과 함께(사진 왼쪽), 2019국무총리상 표창. ⓒ한승완
성장 과정=엄마 뱃속에 있을 때 두 다리가 태반에 눌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보조기를 차고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 학교 다니는 거리가 멀어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 아이 들과 곧잘 어울려 놀았기 때문에 뜀박질하는 것만 빼고는 장애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유천초등학교였는데 전교생이 3,000명이 되는 큰 학교 였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장애가 불편하고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이 장애인으로서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입학할 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특수학교 진학을 권유받았지만 어머니께서 일반학교에 보내시겠다며 끝까지 싸우신 끝에 일반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비장애인 친구들도 사귀며 사회성이 많이 향상된 점을 늘 어머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6년 내내 학교에 등교와 하교를 시켜주셔야 했습니다. 중학교 때도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지만 어머니의 헌신으로 일반중학교에 진학해서 공부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진학 때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진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고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사를 하고, 2009년에 충남대 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전공에 합격하여 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낮에 일하고 야간에 대학원을 다녔는데 공부에 배고픔이 있어서인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재밌게 다녔습니다. 대학원 동기 21명 중 딱 3명만이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는데 제가 그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준비=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장애인으로서 가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오를 수 없는 계단, 휠체어장애인으로서의 불편함 등은 있었지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비장애인이었고 그 덕에 친구들과 노래방도 다니고 오락실도 다니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많이 경험해 보았기에 크게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준비하기로 하고 저는 장애인 목사님께서 자비를 털어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컴퓨 터를 가르쳐 주는 한밀의집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밀의집에서 컴퓨터를 배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장애인 분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되었고, 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컴퓨터를 공부해서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였고 1998년 도에는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워드프로세서 부분 3위를, 2002년에는 전자출판 분야 에서 전국 1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도에는 장애인세계기능올림픽 출전 후보 선발전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는데 매일 연습하고 공부하고 해서 이룬 성과였습니다. 1996년도 20세 때부터 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기동력이 생기면서 활동반경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친구들,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사고 싶은 물건도 직접 가서 사면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를 선택한 이유=제가 컴퓨터를 배우고 또 장애인 분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던 한밀의집이 사회복지시설 인가를 얻게 되었고 저는 첫 번째 정식 직원이 되어 사회복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장애가 있지만 저보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 분들을 위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한밀의집을 이용하던 분들이 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일감도 구하러 다니기도 하여 장애인보호작업장의 시초를 마련하게 되고, 한밀의집은 제가 담당하여 사회복지 법인 행복원으로 인가를 받게 되고 그 후로 장애인거주시설 2곳과 직업재활시설 1곳을 신축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제가 담당하여 진행하였습니다.

그동안 한밀의집의 전신인 보람의집 에서 일하다가 2019년도 중증장애인거주시설 행복누림 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직업 재활시설에 있을 때 휠체어를 타고 대전 공단으로 일감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였고 여러 가지 프로포절과 기능보강 사업을 진행해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로로 2012년도에는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시상하는 사회복지 분야의 권위 있는 아산상(복지실천 분야)을 수상하였고, 2013년도에는 모범장애인 근로자로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최고 영예인 대통령산업포장을 서훈 받기도 하였습니다.

2019년 행복누림시설 가을나들이에서 ⓒ한승완 에이블포토로 보기 2019년 행복누림시설 가을나들이에서 ⓒ한승완
작가의 꿈은=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시간에는 집에 있는 시간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음악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읽고 라디오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풀잎, 원태연, 이정하, 류시화님들의 시가 인기가 많았을 때였습니다. 친구들이 시집을 선물로 사줘서 많이 읽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가수 신승훈을 너무나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신승훈은 싱어송라이터로 작사도 했는데 가사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신승훈의 골수팬이 되었고, CD를 너무 많이 들어서 CD가 닳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신승훈 3집 중에 이풀잎 시인이 작사를 한 노래가 있었습니다.

시를 쓰고 시집을 내서 유명해지면 가수들의 작사도 할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써서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돼서 유명해지고 그래서 신승훈 앨범에 작사가로 꼭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작가라는 칭호를 얻는데 첫 시작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없겠다는 생각. 신승훈이라는 가수는 저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준 가수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졌고, 그 후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뮤직라이프』라는 음악잡지가 있었는데 역시 신승훈 기사가 나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잡지 코너 중에 시를 소개해 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직접 쓴 시를 보내게 되었고 몇 번 시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를 보고 팬레터가 오기 시작했고 전국 각지에서 편지와 선물들이 왔습니다. 매일 편지가 오니까 우체부 아저씨가 혹시 아들이 연예 인이냐고 엄마에게 물을 정도였습니다.

1998년도쯤에는 컴퓨터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공부해서 신승훈팬피를 운영하였고 제가 쓴 시와 신승훈을 주제로 한 소설들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 시간이면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했지만 저는 교실에 남아서 교실 뒤편에 놓여 있는 수많은 책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감성이 생기기 시작했고, 첫사랑이었던 사람과의 연애도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글 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공부도 많이 하였습니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시간이 날 때마다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1988년쯤 시 100 편을 쓰게 되었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출판 직전까지 갔었는데 그당시 IMF 때라 신작을 내기가 어려워서 다음 기회를 보자고 했었습니다.

시 100편 정도 쓰는데 6년 정도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 다. 소설은 신승훈팬픽을 쓰다가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 회에서 장애인근로자문화 제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첫 단편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3~4개월 정도 걸려서 완성했던 것 같습니다.

그 첫단편소설은 금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장애인 관련 공모전에 작품을 내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장애인문학 활동을 위해 지원해 주는 공모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2019년에 첫 시집을 발표하게 되고 2020년도에 두 번째 시집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장애인 예술 활동을 위해 애써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첫 시집은 그동안 써 놓은 시들을 발표하였고 두 번째 시집은 신작들을 써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늘 꿈을 꾸며 사는 삶. 멈추어 있지 않고 늘 앞으로 나가는 삶을 살게 되는데 제가 쓰는 글들이 저의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서 있는 나무들도, 밤하늘의 별들도, 출근길에 마주하게 되는 아침 안개도, 때로는 내리는 빗방울도 모두 저의 글의 구슬이 되어 줍니다.

그것을 꿰는 재미가 너무 좋습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꿈을 꾸며 살고 싶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이 너무 행복하고 좋은 이유입니다.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봐도 우연처럼 여겨지지 않는,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참 행복한 삶입니다.

집필모습 ⓒ한승완 에이블포토로 보기 집필모습 ⓒ한승완
2021구상솟대문학상 당선작
벚꽃 백신

한승완


벚나무에 봄비가 찾아와 원료를 주입시키면
벚나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백신을 만들 채비를 한다 살갗에 생채기를 내어 꽃봉오리를 띄운다
아기 벚꽃 잎이 살짝 고개를 내밀면 기다렸다는 듯이
꽃샘바람이 불어와 방해를 하지만
굴하지 않고 벚나무는
뿌리부터 가지까지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가지 주사기에 아기 꽃을 채우고야 만다

긴 겨울이 지나고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희망의 시간이 찾아온다
아기 꽃이 고개를 가누기 시작하면
따스한 봄바람이 백신을 배송한다
가지 주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벚꽃 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지나가는 자동차 위에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쉬고 있는 벤치 위에
한 잎씩 떨어지고
벚꽃이 닿을 때마다 사람들은 마냥 행복해진다

벚꽃 백신이 퍼져 나간 세상이
내년 봄이 올 때까지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벚나무는 초록 잎 두 손 모아 기도하며
긴 숙면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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