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일드라마 ‘밥이 되어라’ (연출 백호민, 극본 하청옥)는 ‘정통 궁중요리 대가의 비법 손맛을 타고난 '영신'과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갈등과 성장을 그린 드라마’라고 한다.

시골 작은 기차역 주변에 이름도 없이 ‘밥집’이란 간판을 단 허름한 백반집이 있다. 특별한 메뉴도 없고 그날그날 싸게 살 수 있는 재료로 소박한 백반 한 상을 차려주는 밥집이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밥 한 상은 고된 하루일과에 지치고 상처받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준다. 기획의도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밥집’ 경수(재희 분)가 스물세 살 되던 해 경수 아버지는 여덟 살짜리 영신을 데려와서 동생처럼 생각하고 키우라고 한 뒤 아버지는 죽고 말았다.

그 밥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서 저녁을 하기가 마땅찮은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왔다. 영신이 다니는 시골 학교 교사 완수(김정호 분)는 영신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인데, 완수 선생과 의류매장에서 매니저를 하는 아내 세진(오영실 분)과 딸 다정이도 같이 밥을 먹는다.

맹순(김민경 분) 할머니는 아들 용구(한정호 분)와 같이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면서 손자 오복이를 키운다. 경철(김영호 분)은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정훈을 데려와서 맹순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용역 일을 한다.

경수네 ‘밥집’에서 저녁을 먹는 사람은 다정이네 3명, 오복이네 3명, 정훈이네 2명, 경수와 영신 등 총 10명이다. 영신 다정 오복 정훈 등 네 명은 동갑내기로서 ‘밥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며 같이 자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운동회며 소풍이며 여러 가지 사연도 많았다.

그 많은 사연 중에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맹순 할머니의 아들이자 오복이의 삼촌 용구였다. 등장인물 소개에 보면 ‘용구’는 ‘보통사람보다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시골 노총각으로서, 노모를 모시고 어린 조카를 돌보며 부지런히 살았다. 노모와 함께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해서 생계를 돕고, 장가도 못 간 입장이라 말썽쟁이 조카를 자식 같이 아끼고 걱정한다.’고 되어 있다.

인물소개에 나와 있는 용구가 보통 사람보다 지능이 조금 떨어진다면, 경증의 지적장애인일 것 같다. 그런데 「장애인복지법」에 경증지적장애인은 없다. 지적장애인은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사람으로서 교육을 통한 사회적ㆍ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으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사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용구는 무슨 장애인일까. ‘밥이 되어라’에 등장하는 용구는 지능이 조금 떨어진다고 되어 있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용구를 보면 지적장애인이 아니라 ‘경증의 뇌병변장애인’이다. 경증의 뇌병변장애인 즉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은 ‘보행 시 절뚝거림을 보이거나 섬세한 일상생활동작이 경미하게 제한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밥이 되어라’에 등장하는 용구는 걸을 때 약간 다리를 절고 그리고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할 때는 심하게 얼굴을 찡그리는데 지능은 보통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은 용구를 ‘바보’라고 놀렸다. 그럴 때마다 다정이와 영신이 그리고 용구의 조카 오복이는 놀리는 아이들과 맞서 싸웠다. 아이들은 용구를 삼촌이라 불렀는데 삼촌은 어른인데도 애들한테 바보 소리나 듣는다고 속상해했다. 그럴 때마다 정훈이는 놀리는 아이들과 싸워봤자 별 소득이 없을 거라며 공부만 했다.

세월이 흘러 영신(정우연 분), 정훈(권혁 분), 다정(강다현 분), 오복(조한준 분)은 어른이 되었다. 영신은 ‘밥집’을 하는 경수의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워서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경수는 영신에게 대학을 가라고 했으나 더 이상 경수의 신세를 질 수 없다며, 도시에 있는 한식집 ‘궁궐’에 취직을 했다.

공부만 했던 정훈은 의대를 갔다. 정훈을 좋아하는 다정도 의대는 아니지만 정훈이 간 대학 다른 과에 갔다. 다정이는 정훈이를 좋아하는데 정훈이는 영신이를 바라보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오복이는 집을 나갔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영신은 밥집을 하는 경수의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으나, 영신은 천부적으로 요리의 손맛을 타고 난 사람이었다. ‘궁궐’의 실제 소유주는 종권(남경읍 분)인데 ‘궁궐’ 주방에 조리사로 들어갔던 숙정은 독신자인 종권에게 접근하여 ’궁궐‘의 안주인이자 사장이 되었다. 사장 숙정도 조리사 출신이고 조카 성찬(이루 분)이 주방장이었으나 요리 솜씨에서는 영신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온갖 술수를 다 부린다.

그러나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영신이나 숙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용구 이야기다. 용구는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는데 채소도 팔고 배달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용구가 채소장사를 하는 맞은편에서 필선(권소이 분)이 액세서리를 팔기 시작했다. 필선은 동생들 공부시키느라고 결혼이 늦은 아가씨인데, 용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필선은 용구에게 먹을 것도 가져오는 등 살갑게 굴었다. 용구는 난생처음 느끼는 연애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맹순 할머니도 둘 사이의 낌새를 눈치챘다. 그러던 어느 날 필선은 용구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맹순 할머니도 처음 경험하는 아들 용구의 데이트에 어쩔 줄을 몰라 다정 엄마 세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언감생심 욕심이겠지만, 그런 아가씨를 짝으로 붙여 주면 원이 없을 거야.” 그러나 여자하고 데이트할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세진은 남편 완수 선생에게 얘기했으나 완수도 난감해해서 세진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세진은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그리고 손도 잡으라고 했다. 손을 잡으라는 말에 용구가 기겁을 하자, 그다음은 다음에 가르쳐 주마고 했다. ‘밥집’ 식구들은 용구의 데이트 소식을 듣고는 축하한다고 했다. 맹순은 “축하는 무슨 축하, 난 잠도 안 오는데…….” 맹순에게 용구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다시 한번 얘기하자면 ‘밥이 되어라’에서 용구는 지적장애인이 아닐뿐더러, 지적장애인도 서로 관심이 있는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면 자연스레 진행되는 것 같은데 ‘연애의 기술’을 따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일까.

그날 이후 용구와 필선은 더욱 가까워졌고, 맹순 할머니는 용구와 필선을 ‘밥집’에 보내서 ‘밥집’ 식구들에게 필선을 소개하기도 했다. 용구와 필선은 컵라면도 같이 먹는 등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필선이 시름에 잠기기 시작했다. 시름에 잠긴 필선을 바라보는 용구는 애가 탔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용구의 재촉에 필선이 꺼낸 말은 “큰동생이 사고를 쳐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어려운 이야기라고. 용구는 그동안 저축해 둔 천만 원을 필선에게 건넸다.

제발, 필선이 장애인을 등쳐먹는 사기꾼은 아니기를……. 그런데 용구에게서 돈을 빌려 간 필선이 전화도 꺼 놓고, 액세서리 가게에도 나오지 않았다. 용구는 물론이고 맹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밥집’ 식구 모두가 걱정했다.

용구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밥을 먹을 때 더 바보 같아 보였고, 걸어 다닐 때도 바보같이 보였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 여자(필선)는 나를 바보같이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선이 더 보고 싶다고 했다. “돈은 상관없어, 그냥 잘 있다고 내게 보여 주었으면 좋겠어.”

용구는 한없이 애를 태웠는데, 며칠인가 지나서 필선이 나타났다. 그동안 왜 무엇 때문에 휴대폰도 끄고 잠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맹순 할머니는 필선이 돈을 빌려 갔다는 사실은 모른 체했다. 용구도 사람이 문제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궁금하다. 필선이 돈을 빌려 가고 왜 며칠 동안이나 휴대폰도 꺼 놓고 가게에도 나오지 않아서 용구와 밥집 식구들의 애를 태웠는지 합당한 이유를 대야 할 것 아닌가. 어쩌면 필자가 그 이유를 못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용구와 필선의 관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필선의 둘째 동생이 용구를 만나자고 했다. “필선 씨의 동생을 만나야 되나 말아야 되나.” 용구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용구는 어렸을 때부터 걸을 때도 바보같이 보였고, 밥 먹을 때는 더 바보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순 할머니는 뭔 일이 있을라고. 세진과 함께 용구를 데리고 가서 고급 양복을 사 입히고 구두도 사고, 머리도 파마까지 했다. 환골탈태한 용구의 모습에 밥집 식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용구는 만만의 준비를 하고 필선의 둘째 남동생을 만났다. 필선의 남동생 필용(김상우 분)은 용구를 보자마자 노발대발했다.

“이건 경우가 아니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라며 두 사람 사이를 반대했다. 용구에게는 대 놓고 “온전한 사람을 만나야지, 염치가 있느냐?”고 대들기까지 했다.

용구는 “나도 온전한 사람입니다. 부족하지만, 온전한 사람이에요. 필선 씨를 사랑해서 여기 까지 왔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필선도 “더 우려먹을 게 있을 것 같아 길길이 날뛰어? 누나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라며 동생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동생은 “매형으로 인정 못 해!”라며 고함을 질렀다. 필선은 그렇게 창피하면 연을 끊자고 했다.

용구는 “실례가 많았습니다.”라고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용구는 어디를 어떻게 헤맸는지 밤이 늦어서야 ‘밥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 맹순은 상처받은 얼굴로 돌아온 용구를 끌어안고 울었다.

용구는 필선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용구는 필선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필선의 남동생 등 집안에서 반대를 하니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필선이 싫다고 했다. 용구는 기분이 좋았지만 남동생의 반대는 어찌할거나.

용구가 필선과 헤어질 기미가 안 보이자 남동생이 시장까지 직접 나타나서 난리를 쳤다. “이런 사람이 우리 누나랑 결혼하는 걸 내가 눈 뜨고 보고만 있을 것 같냐. 누나는 동정심 때문에 그런 거다. 사랑은 아무나 하냐.” 용구가 주제도 모른다고 폭언을 했다.

며칠 후 필선이 가방을 들고 용구 집으로 찾아왔다. “여기서 살게 해 주세요.” 맹순은 필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라마니까 용구가 필선과 한방에서 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용구는 필선과 한집에 산다는 게 너무나 신이 났다.

그러나 그렇게 신이 나던 필선과의 한집 살림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남동생이 찾아와서 필선을 끌고 갔던 것이다. 용구는 다시 실의에 빠졌다. 남동생은 필선을 시골에 혼자 살고 있는 엄마에게 데려갔다.

실의에 빠져있는 용구를 보고 맹순은 한우를 사서 오복이와 함께 용구를 시골로 보냈다. 필선은 용구를 보고 반색을 했다. 용구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필선 엄마가 일하는 밭으로 나가서 일을 했다. 필선 엄마는 용구에게 싸늘한 태도를 보였으나 용구는 개의치 않고 묵묵히 밭일을 했다.

용구를 보자 필선 엄마는 필선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필선은 연애하던 남자가 있었다. 필선이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그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떠나갔다. 필선은 그 상처로 인해 약도 먹었고 결혼도 못하고 있었는데 용구를 만나서 그 상처가 나았다고 했었다.

마당에서 용구가 사 온 한우 불고기 파티가 열렸다. 필선 엄마는 용구를 용서했으나 그래도 결혼은 안 되고 친구로 지내라고 했다. 용구는 필선의 얼굴을 보고 지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밥이 되어라’는 밥집과 궁궐의 이야기인데 그 가운데서 용구와 필선은 극히 지엽적인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인물소개에서 용구는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나오는 모습은 경증의 뇌병변장애인이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로 보라고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드라마는 픽션인 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서 사회를 배우고 지식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끌기 위해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줄거리를 이어가야 하겠지만, ‘밥이 되어라’에서 필선 남동생의 이야기는 현실이 맞나 싶게 가슴을 치게 한다.

필선의 남동생은 용구가 장애인이기에 온전하지 못하다고 했다. 국어사전에서 “온전(穩全)하다는 형용사로서 1.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 2.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고 되어 있다. 사람에게 감히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을 사용하다니, 아무리 드라마지만, 정말 어이가 없다.

이것은 번외의 이야기지만 시청자의견이나 톡에는 용구 역할을 하는 배우 한정호가 연기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심지어는 한정호가 정말 장애인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한정호는 ‘밥이 되어라’에서 용구 역을 한 배우일 뿐이고, 한정호가 경증의 뇌변병장애인 역할은 잘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집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집안의 반대가 심하면 야반도주를 하기도 했다. 우리 속담에 “병신자식이 효도한다.”는 말이 있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부끄럽고 죄스러운 말이지만 그 말이 사실이다. 그렇게 야반도주를 하거나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장애인 며느리나 사위가 부모들을 잘 모시는 사례가 많다.

현재는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결혼하기가 어려운 시대다. 장애인이라도 서로가 좋아서 결혼하고 싶어 하는 상대만 있다면 제발 주위에서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밥이 되어라’에서 용구와 필선의 이야기는 그 과정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꾸민 것 같고 결국에는 필선의 엄마나 남동생도 용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장애인이 현실적으로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어쩔 수 없겠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정들고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도 장애인을 열등하다고 업신여기거나 비하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직접 장애인과 부딪히지 않았거나 함께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우리 사회의 지도자라 해도 미경험의 세계에 대해서는 함부로 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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