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교 시인1. ⓒ황원교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

1959년 춘천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며 군 생활도 ROTC로 육군 포병장교로 임관하여 중위로 전역한 누구보다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였다.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식을 1주일 앞두고 신부될 여자와 함께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행복이 가득했다. 자동차 안에 4명이 있었는데 모두 소풍 다녀오는 사람들처럼 들떠 있었다.

순간 자동차가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박고 개천 아래로 굴러떨어졌는데 운이 없게도 물속에 있는 암반에 부딪힌 곳이 바로 그가 앉아 있던 뒷자석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세 명은 걸어서 나올 정도로 경상이었지만 그는 경수 4, 5번 손상에 의한 전신마비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날은 1989년 3월 26일로 그의 나이 29세였다.

그 뒤 3년 동안 서울성모병원에서 입원해 살았다. 각종 합병증(급성폐렴·기관지염·심장부정맥·기립성저혈압·늑막염·결핵·신장 및 방광결석 등) 이 찾아왔다. 중증의 장애로 인한 욕창·발작성근육경련 및 강직현상이 나타났고, 정신적으로 우울증·공황장애로 시달리며 수차례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더욱이 신장 185cm, 체중 80kg의 거구라서 항상 2인 이상의 도움이 필요하여 가족들도 시달렸다.

문학이란 동아줄을 잡고

병원 치료를 마치고, 1991년 충북 청주로 이주하였다. 청주에 여동생이 살고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서울을 떠나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 양 몇 년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의 모든 경력은 쓸모없는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뭔가를 하려고 해도 손을 사용할 수 없는 그는 그 어떤 시도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나무젓가락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을 얼핏 보았다.‘아,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그는 마우스 스틱을 구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어지럼증으로 1시간도 앉아 있기 힘들었고, 스틱을 물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이가 아파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했다.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사용이 가능해지자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화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림을 그려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자신의 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겠기에 글을 쓰기로 하였다.

사고 후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고 학창 시절 글짓기를 좋아하던 문학소년이기도 하였던 그는 글을 쓰는 것이 더 편하고 즐거웠다.

황원교는 이 엄청난 불행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또 썼다. 그것이 시가 되었다. 그리고 입에 마우스 스틱을 물고 컴퓨터 자판을 한 자 한 자 눌러서 쓴 시가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세상에 그의 존재가 드러났다.

사실 그때 충청일보와 강원일보 두 곳에 응모를 했는데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최종심에 올랐으니 실력이 수준급임을 알 수 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시작(詩作)에 몰두하였고 2000년 계간 『문학마을』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인으로의 삶을 굳히게 되었다.

사랑과 결혼

1995년 5월 어느 날 24시간 그의 곁을 지키던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는데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멈추셨다. 심장마비였지만 원인은 과로였다.

아들이 장애를 갖게 된 후 어머니의 삶은 오롯이 아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이 문인이 되는 것을 못 보고 떠나신 것이 황원교에게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황원교에게 또 한 차례 몰아닥친 위기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보다 전신마비 장애로 살아갈 길이 더 막막하였다.

그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은 성당 청년회 회원들이었다. 청년들이 조를 짜서 황원교를 보살펴 주었다. 가장 열심히 도와준 사람은 청년부 부회장이었다. 부회장이라서 책임감도 있었고 여성이라서 어머니 같은 섬세함이 있었기에 그는 부회장이 왔을 때가 가장 편했다. 그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를 들여다봐 주는 인정을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에게 특별한 마음이 생겼지만 황원교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였다. 자기는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그녀는 자신의 꿈인 수도자가 되기 위하여 수녀원 입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황원교는 그녀를 보내기 싫었다. 아니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였고, 그녀도 기꺼이 그의 사랑을 받아 주었다. 그의 아내가 된 것이다. 양가 허락을 받고 성당에서 신부님 집도로 2001년 9월 23일 결혼미사를 올렸다. 이 기적 같은 러브스토리는 지금까지 천주교계를 비롯하여 문단 내에서 천사의 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결혼 후 그는 더욱더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며 시집 네 권과 산문집 한 권 그리고 장편소설 「나무의 몸」을 출간하면서 저력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설을 집필하는데 3년이 걸렸다. 1년 동안 구상을 하였고, 2년 동안 마우스 스틱으로 한 자 한 자 찍어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소설은 처음이라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스스로의 일생에 견주어 펙트와 픽션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파란만 장한 서사를 이어 간다. 또 연이은 불행과 고통을 문학적 열정으로 승화시키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인생이 아무리 나빠 보여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고,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고난과 시련도 감내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궁극적으로는 육체를 초월한 아가페적 사랑의 경지를 구가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황원교는 소설 후기에 이런 고백을 남겼다.

-장애인이 된 후, 혼자라는 사실을 더욱더 뼈저리게 절감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시간에 가장 외롭지 않았고,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오롯이 자신을 성찰하고 존재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나톨 프랑스(1844~1924)는‘ 안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상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듯이 소설은 오직 인간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위해 무한한 상상력으로 꾸며진 비밀의 정원이다. 수많은 낮과 밤을 쓰고 고쳐 쓰길 반복했다. 드디어 끝이 보였다. 생애 첫 번째 장편소설은 엄연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위기 또 위기 그러나…

그녀는 누워서 생활하는 남편의 일상과 노쇠해진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 그리고 가정 경제까지 책임져야 했다. 황원교의 글쓰기는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글을 열심히 써서 작품을 완성해도 책을 출간해 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장애인예술가 창작지 원금 공모에 신청하여 선정이 되어야 겨우 책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기에 온라인 문학강좌를 수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세상 구경삼아 오프라인 문학교실에 참여하여 공부를 한다.

그런데 체격이 큰데다 장애가 심해 온몸이 축 늘어진 상태여서 장정 2명이 달라붙어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힐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외출을 위해 예비군 군대에 부탁하여 상근 예비역 군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가끔씩 기업 특강 강사로 초빙을 받아 서울에도 오고 춘천 고향에 갈 때는 부인이 운전을 해서 이동을 한다. 그의 인생에 절대적인 존재인 부인이 2005년 유방암 진단을 받아 또 한 차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살기 위해 열심히 치료하여 이겨내는 듯하였지만 2013년에 난소암으로 다시 수술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2017년 다시 유방암이 재발하여 현재 투병 중이다. 이렇듯 오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5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모시며 큰며느리로서의 역할에 소홀함이 없었던 부인을 생각하면 그는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도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로 간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실시되면서 부인이 없는 시간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퇴근해서 돌아온 부인은 온 집안을 동동거리며 다니면서 가사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런 아내를 위해 그는 글을 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내의 노력을 보상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제3자의 시각으로 인생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황원교 시인2. ⓒ황원교

# 황원교 주요 경력

1959년 강원 춘천 출생 1983년 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1983년 ROTC 21기 육군포병장교 임관 1983년 보병 제26사단 631포병대대 관측장교 및 3포대 전포대장 복무 1985년 예비역 육군 중위 전역 1985년 동아생명 인사부 근무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겨울바다> 외 9편 당선 2000년 계간 『문학마을』 시 <구절초> 외 8편 신인상 수상 2001년 도서출판 문학마을에서 시집 「빈집 지키기」 출간 2006년 도서출판 문학마을에서 시집 「혼자 있는 시간」 출간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장애인예술가 창작지원금 (수필 부문) 수혜 2008년 도서출판 바움에서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 출간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장애인예술가 창작지원금 (시 부문) 수혜 2013년 도서출판 문학의전당에서 시집 「오래된 신발」 출간 2013년 제3회 청선창작지원대상 수상 2017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창작지원금 (장편소설 부문) 수혜 2018년 도서출판 동쪽나라에서 장편소설 「나무의 몸」 출간 2019년 도서출판 詩家에서 시집 「꿈꾸는 나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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