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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시로 긴 여운을 주는 김민 시인

33세에 문단 데뷔… 독특한 시행 등 눈길 끌어

딱 맞는 옷 찾아낸 느낌…온 힘 다해 시 쓸 것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9-18 11:36:49
김민 시인. ⓒ김민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민 시인. ⓒ김민
구상솟대문학상운영위원회(김초혜 위원장)는 심사위원 세 분(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승하 교수,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맹문재 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 허혜정 교수)의 만장일치로 김민 시인을 2019년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발표하였다.

심사평을 쓴 이승하 교수는 ‘김민의 시는 촌철살인과 정문일침(頂門一鍼)을 주면서 일목요연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시로 확실한 메시지가 있고 선명한 이미지가 있다. 대상을 예리하게 관철 하여 언어(시) 로 포착하는 직관이 놀랍다. 상대적으로 긴 시 <심부름하는 아이>는 생명 탄생의 비극성을 극복하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엿보인다. 어머니와의 대화체로 진행이 됨으로서 우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섬뜩한 충격과 뻐근한 감동을 준다.’며 그의 시가 범상치 않다고 감탄하였다.

김민 시인은 수상 소감을 다음과 같이 보내왔다.

- 그 흔한 개근상조차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상복이 이생에서는 없는 팔자라 생각했지요. 아니, 한 편 한 편 퇴고하게 되는 시들이 상이라 여기며 지내왔습니다. 모든 작가분이 그러시겠지만 짧든 길든 쉽게 쓰이는 시는 세상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구상 선생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진짜’ 상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생전의 인품과 뜻을 더욱 깊이 기리게 되는 해인 만큼 심사위원분들께서 저를 선정해 주신 데에는 구상 선생님의 굽어살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고, 구도자의 길을 가셨던 선생님의 시적 자취를 부지런히 따라가겠습니다. 이 모든 감사함을 모아 쥐고 늦지 않게 왜관의 구상 선생님 문학관에 다녀올까 합니다. -

김민 시인. ⓒ김민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민 시인. ⓒ김민
김민 시인이 33세에 문단에 데뷔했을 때 화제가 된 것은 일행시라는 독특한 시형(詩形) 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문단의 높은 벽을 넘었다는 사실이 그 당시로서는 흔치 않아서였다.

게다가 1960년대 자유와 저항정신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김수영(1921~1968) 시인의 조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는 김수영 시인이 작고한 후 불과 4개월 후에 태어났으며, 실제로 큰아버지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시심을 키워 왔다. 어릴 적 살던 도봉동 집 뒷산에 있던 큰아버지의 시 <풀>이 새겨진 시비(詩碑)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 늘보」의 시평을 써 준 문학평론가 김종회(경희대 교수) 님은 김민의 시에 대해 ‘내부에서 들끓는 다변(多辯)의 유혹을 물리친 지점에 섰을 때에야 발화 가능한 시적 형식’이라고 평가하였고, 두 번째 시집 「유리구슬마다 꿈으로 서다」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경수 님은 ‘김민 시인이 그려 내는 유년의 기억은 내가 잃어버린 한 시절을 불러와 그날의 안부를 묻곤하여 때늦은 답장이 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고 고백하였다.

이렇듯 김민은 문단에서 주목하고 있는 시인임에 분명하다. 일부러 신비주의를 택한 것은 아니지만 뇌성마비로 언어장애도 있고, 2007년부터 소리를 잃어 김민 시인과의 인터뷰는 여동생과 소통하며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Q. 일행시라는 새로운 시 형식을 구축하였다. 일행시가 탄생한 배경은.

‘한줄시’라는 것이 형식으로만 본다면 저만의 독특한 시형은 아니죠. 일본 시가(詩歌) 하이쿠까지 가지 않더라도 많은 시인들의 시집 속에 간간이 있었고 고(故) 박희진 시인께서는 제목조차 없는 1행시집도 내셨었으니까요. 그런 만큼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줄시를 써야겠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대학 2학년 때 학과 내 ‘변성기’라는 시동인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미지 시를 좋아해서 주로 이미지에 천착한 습작을 썼었지요. 졸업 이후로는 일기 대신 일상시를 썼습니다. 1996년부터 PC통신 하이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했던 것이 손을 놓지 않고 습작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사랑 활동 시기에 1997년도인가, 1998년도에 『솟대문학』에 응모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는 했었는데 실력이 안 돼서 도전해 볼 용기를 내지 못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다 계기가 생겨서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문학학교 최승호 시인반 수업을 수강하게 됐고, 이야기 시, 그로테스크 시, 동시풍 시 등 여러 시형을 시도하며 형식과 내용에 대한 저만의 시 세계관을 찾으려는 길에서 헤맬 때 ‘한줄시 써 보지 않을래?’ 하시는 최승호 선생님의 권유를 마지막 수업 때 받았었어요. 그때 저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아낸 느낌이었습니다.

Q. 일행시 시작(詩作) 과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한줄시 시작(詩作)은 대체로 세 가지 방법으로 씁니다. 첫 번째 방법은 일반적인 시형으로 시를 쓴 뒤 늘어진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지워 나가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줄시로 쓰는 경우인데 빈도수가 높지는 않지만, 퍼뜩 이미지가 떠오를 때 주로 쓰는 방법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메모나 습작으로 놔두었던 것들에서 부분 부분 따와서 짜맞추는 방법입니다, 레고 놀이하듯이요. 그렇지만 퇴고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 방법이 전부 동원됩니다.

Q. 데뷔는 2001년, 첫 시집은 2007년, 두 번째 시집 출간은 2017년 다소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 느림의 철학을 갖고 있는지.

느림의 철학이 아니라 진짜 느려요. 그래서 별명이 거북이였던 때도 있었지요. 나무늘보라고 저 자신을 생각하게 된 것도 그래서 나오게 된 거고요. 처음에는 초고 상태로 일단 계속 모아 둡니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일단 모아가다 보면 기간이 4~5년 걸립니다.

그러다 ‘이제 수정 작업 들어가야겠다.’ 하고 느껴지는 때가 오면 수정 작업 들어 가서 퇴고하는 기간이 또 1~2년, 길게는 3~4년 걸리고요. 어떤 때는 수정 작업 중에 전부 엎어 버리고 다시 새로 시작하다시피 할 때도 있었고, 다른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들과 유사한 이미지나 내용인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도 빼버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기간이 늘어나게 되더라고요.

제 시작(詩作)의 기본자세는 ‘수정(修訂)만이 살길이다.’입니다. 시집 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조금 이라도 더 완벽하게 퇴고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니까요.

Q.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미대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어요. 일단 오른손을 못 쓰는 데다 왼손으로 쓰는 글씨조차도 너무 오래 걸려서 글 쓰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진학 문제가 눈앞에 닥치고 보니 현실적으로 국문과 말고는 지원할 곳이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곡절 끝에 국어교육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딱히 시 창작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김수영이 큰아버지라는 것이 알려지고 나니 학과 내 시동인 ‘변성기’에서 시 써 보지 않겠느냐고 계속 권유해 왔고, 결국 2학년 올라갈 때 ‘변성기’에 합류하면서 시 창작을 시작하게 됐지요. 이때부터 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림에도 소질이 많은 듯하다.

제가 처음 습작을 하기 시작하면서 빠져든 것이 이미지 시였어요. 화가는 포기했지만 그림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이미지 시 습작으로 나타난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변성기’에선 매년 봄축제 때 시화전을 열었었는데 준비 기간에 그림 그리겠다고 나서는 동인들이 거의 없어서 제가 도맡아서 그리기도 했었습니다.

“시 쓰기는 내면의 캔버스에 낱말로 그리는 작업이다.” 한국문학학교 수업 중에 최승호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던 말씀이었죠. 이 가르침을 받으면서 못 이룬 오랜 꿈과 저의 현실을 씨실 날실로 엮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적 정체성을 다시금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림은 요즘도 가끔 낙서 삼아 그리는 정도로 즐깁니다.

Q.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였는데 사범대학을 택한 이유는 혹시 교사가 되려고.

제가 대학 들어갈 때의 대입 전형은 1지망, 2지망, 3지망 지원해서 1지망 탈락하면 2지망에 자동으로 지원되고 그랬죠. 전 1지망에 국문과를 지원했었습니다. 장애가 있어서 교사 되는 것이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만약에 국문과에서 떨어지면 배우는 것도 비슷하고 국문과 수업도 전공으로 인정되는 국어교육과로 2지망을 정하게 된 거였어요.

결국, 국문과에서 떨어지고 국어교육과에 붙는 결과가 나오게 됐습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국어교육과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 다니면서는 교육학은 최저 이수로만 수강하고 주로 국문과 수업을 수강했었어요.

Q. 대학생활은 어떠했는지. 당시는 장애인이 고등교육을 받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국교과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국문과 교수님들도 저를 많이 배려해 주셔서 학교생활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배들과 동기들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 줬어요.

‘변성기’ 가입 이후부터는 수업 이외의 시간은 매주 한 번 하던 합평회 준비하느라 습작하면서 시집 읽는 데에 보냈지요. 봄축제 기간엔 시화전 열고, 여름방학 중엔 동인시집 내는 준비하고, 가을엔 동인시집 내고, 겨울방학 땐 다음 학기 기성 시인들의 시집 합평회 일정 짜는 일에 참여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4학년 때까지 반복하다 졸업하게 됐죠. 교생실습 때에도 원래는 수업 참관만 하기로 돼 있었는데 반마다 1차시씩 시 수업 맡아서 해보라고 담당 담임께서 배정을 해 주셔서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를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Q. 데뷔 작품도 일행시였는가.

계간 『세계의 문학』 2001년도 가을호에 <자벌레> 외 4편, 총 다섯 편이 실리면서 등단했는데 모두 한줄시였습니다. 2000년 봄부터 한줄시 위주로 쓰기 시작했던 데다가 한줄시 말고는 대부분 습작 수준이어서 한줄시로 등단하게 됐습니다.

Q. 우리나라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소설가, 음악가, 화가 등등 예술하는 사람을 일컫는 낱말에는 대부분 ‘가(家)’라는 칭호가 붙는 데 비해서 시인에게는 ‘인(人)’이 붙어 있잖아요? 이것은 시인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될 수 있겠지만 세상이 시인을 바라보는 잣대가 되기도 하겠지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요. 즉 먼저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해답이 김수영의 산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 시 쓰기의 출발점이기도 해요. 잘 쓰고 못 쓰고, 유명하고 아니고, 시집을 많이 내고 적게 내고 이전에 정직하게 시를 쓰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의무라고 봅니다.

Q. 장애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그거야 당연하지요. 그렇지만 장애에 따른 부자유, 비애 등을 많이 드러내어 표현하지는 않으려 했어요. 회화에 대한 초심자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거 장애인 화가가 그린 그림인 것이 느껴진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림에 대한 느낌이 좋아서 누구 작품인지 알아보게 된다면 김기창 화백의 그림임을 알게될 것이고, 청각장애인이라는 것도 더불어 알게 되겠죠. 그러나 그 후에 다시금 김기창 화백의 또 다른 작품과 마주했다 하더라도 ‘이게 장애인 화가가 그려서 그림이 이렇구먼.’ 하고 생각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물론, 장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픔의 흔적이 그림에서 보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것은 김기창 화백의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는 ‘또 하나의 새로 생긴 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겁니다. 저는 저의 시들도 김기창 화백의 작품처럼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요즘은 보청기를 사용한다고 들었다. 소리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나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청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어요. 그나마도 등단하던 2001년에 왼쪽 귀가 전혀 안 들리더니 첫 시집 내던 2007년엔 오른쪽 귀까지 아예 안 들리게 되어서 청각장애 진단을 받아 2009년부터 보청기를 착용하게 되었죠. 병원 진단으로는 고막에는 이상이 없다고 스트레스성 난청이라는데 이명이 끊이질 않아서 보청기를 착용하든 안 하든 늘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무튼, 일상에서 전화 음성통화 대신 문자나 인터넷 메신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과 사람 만나는 약속을 잘 안 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듯해요. 그래도 편해진 부분도 있어요. 주위가 시끄러운 곳에 있게 되거나 할 때 보청기를 빼고 있으면 이명 소리 말고는 조용해지거든요. 이거, 진짜 좋습니다.

김민 대표작1. ⓒ김민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민 대표작1. ⓒ김민
Q. 앞으로의 계획은.

2017년에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나니 습작이나 메모로라도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어요. 또다시 초고 만들어 가야죠, 또 언젠가 수정 작업 들어가야 하겠고요.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줄이면서도 평온하고 쉬운 시가 나와 줬으면 합니다.

시집 출간 욕심부려서 수준 미달의 시를 내보이려 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시를 쓰려고 합니다, 단 한 편만 남게 될지라도요. 변변찮은 재주조차 없는 저로서는 역시 수정만이 살길인가 봅니다. 그러다 보면 세 번째 시집이 어느 순간 나와 있지 않을까요?

김민 대표작2. ⓒ김민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민 대표작2. ⓒ김민
심부름하는 아이

1
텃밭 사이 지름길로 오다가 발을 빠뜨렸지 뭐예요
그래서 그냥 심어 놓고 왔어요

그래서 늦었구나, 얘야
솥뚜껑 좀 닫아 주지 않겠니?

예, 알겠어요
무엇이든 닫아 버리는 일은 제 몫이니까요
그런데 뚜껑은 어디 있어요?

곰쥐 떼가 몰려온다는구나

안에 들은 이건 대체 뭐죠?
처음 맡아 보는 냄새예요

너의 탯줄로 만든 순대란다
맛 좀 봐 주련?

칼을 가져오려무나

칼은 제가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안 될까요?
웃자란 발가락을 솎아 내야 하거든요
참, 그것들도 같이 찌면 좋겠네요

이제부터는 네가 찜솥을 맡아도 되겠구나
뚜껑은 찾았니, 얘야

이제 뚜껑은 찾을 필요가 없어요
제 몸을 통째로 넣을 거니까요

곰쥐 떼가 몰려오고 있질 않니

곰쥐는 저처럼 질긴 상처는 먹지 않는대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

2
날이 궂으니 솜틀집에 눈물샘 좀 맡기고 오려무나


# 김민 주요 경력

1968년 서울 출생. 1991년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2001년『 세계의 문학』 통권 101호에 <자벌레> 외 4편 발표하며 등단. 2007년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민음사) 출간. 2017년 두 번째 시집「 유리구슬마다 꿈으로 서다」(문학세계사) 출간. 2017년 하반기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유리구슬마다 꿈으로 서다」 시 부문 선정. 2019년 구상솟대문학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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