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 자료화면1.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영화 <증인>은 다른 자폐 소재 영화와 달리 진일보한 점이 있었다. 우선 자폐 청소년이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소재가 다른 영화와 달리 특별했다. 다른 점은 또 있었다. 대부분의 장애 관련 영화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알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자폐장애인이 장애인의 현실을 넘어 사회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담아낸다. 과연 자폐장애인의 진술을 인정해 줄까 하는 의구심이 있는 현실의 장벽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고교생 지우(김향기)는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 자신이 본 내용을 적극 진술한다. 또한 뒤이어 열린 재판에 엄마가 극구 말리는데도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힘겨운 장애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두 번째는 자폐장애에 대해서 상세한 설정으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검사 이희중(이규형)인데 그는 자폐장애인에 대한 남달리 이해가 높고 이를 바탕으로 지우가 법정에서 증언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간다.

이렇게 자폐장애인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이해력과 친교성이 강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폐장애가 있는 동생을 통해서 자폐장애인에 관해 폭넓은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같이 간주될 때 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거꾸로 드러내 주는 캐릭터였다.

검사 이희중 역을 맡았던 이규형은 드라마 <라이프>에서 중도장애인 심사관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세 번째는 장애인에 대해서 인식개선을 목적적이거나 인위적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폐장애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이끈다.

이를 위해 설정된 인물이 변호사 양순호(정우성) 인데 그는 법정에서 피의자를 변호해야 하는데 오히려 지우의 증언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인지한다.

변호를 위해서 지우와 친해지려 하고 자폐장애인의 상황과 처지를 파악한다. 특히 감독은 이 부분에서 자폐인의 시각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영상 자료는 물론 시각적 영상 처리과정을 영화 장면에 보여 주어 비장애인들에게 자폐장애인의 시야를 직접 체험하게 유도한다.

이를 통해 자폐장애인의 청각은 예민하여 뇌를 날카롭게 자극하고, 눈은 시간적인 현란함을 통해 한 곳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이 때문인 것이다.

백 마디 말이나 이론적인 묘사보다 직접 느낄 수 있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 슈퍼맨이 알고 봤더니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는데 뇌가 너무 뛰어나고 민감했기 때문이었다.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 오히려 뛰어남이 된다는 역설이 들어 있다.

영화 <증인> 자료화면2.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정상일 수 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으로 깊어질 수 있고 안에서 깊어지지 않으면 밖으로 깊어질 수 있다.

결핍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지나침일 수 있다. 관련하여 이 영화에는 어느새 다른 장애 관련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 능력에 관한 설정이 등장한다.

바로 지우의 비범한 능력이 결정적으로 발휘되는 점이다. 서번트 신드롬 수준은 아니지만, 넥타이나 순수건의 무늬를 단번에 알아맞힌다. 시각은 물론 청력도 발달해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다 듣는다.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지능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108마디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지우. 그 놀라운 능력은 결국 재판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이런 설정은 ‘레인맨’에서 등장한 이래 수많은 영화에서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즉 천재 같은 능력이 없는 자폐인의 말은 법정에서 증거 채택이 여전히 안 되겠다.

다만, 자폐인이 모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건 아니다. 영화 <말아톤>에서는 육상 코치가 혹시 초원이(조승우)가 계산 천재가 아닐까 시험을 하려 하지만 아니라는 점이 곧 밝혀지는 장면은 이를 잘 나타내 준다.

영화 <증인> 자료화면3.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어쨌든 이 영화에서 말하듯이 장애 특성에 맞게 과정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법정 증언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법적 증거력도 당연히 될 것이다.

또한 장애인이라고 하여 거꾸로 이용 하거나 방관 무시하는 인권유린도 덜할 것이다. 아니 그것을 꼭 장애라고 할 필요는 없다. 각자 재능은 다르기 때문이고, 이를 어떻게 제 쓰임에 맞게 하는가가 공공성이 고민해야 하는 노릇이다.

단순히 이 영화는 선과 악의 대결로 몰아가지 않는다. 선과 악의 상대성은 흔히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폐장애인들에게 닥칠 현실도 말한다.

애초에 이 영화의 전개에서 불편한 점이 있는데, 바로 변호사 양순호(정우성)의 행동이었다. 그가 지우에게 접근한 이유는 살인 피의자를 옹호하는 변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한 변호사인 듯싶은데 단지 지우가 증인 자격이 없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악인으로 보였다. 노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던 가정부는 정말 진범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생각하지 못한 변호인의 반전행동이었다. 피의자를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 진범을 찾아내는 과정이 법정에서 생각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즉 변호인으로서 살인 교사 사주를 받은 점을 밝혀도 중형을 피할 수 있게 하면서 다른 진범을 잡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메시지나 서사 구조의 차별성은 인정할 수 있겠다.

영화 <증인> 자료화면4.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전적으로 비장애인 양순호의 활약상만 돋보이는 영화일까. 지우는 과연 어떤 성취를 했을까. ‘역사의 연구’에서 토인비는 역경에 대응해서 도전도 강하게 성취를 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너무 역경이 과하면 오히려 도전의 결과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지우는 법정 증언을 통해 자신의 말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회를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천재적 능력으로 음악이나 암산을 기막히게 하여 뛰어난 업적을 보이지 않아도 각자 살아가는데 조금만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활인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 영화의 기여는 자폐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보여 주었고, 이를 통해 재판 참여의 증인으로 나설 수 있음을 이상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김헌식(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

문화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박경리토지문화관 외래교수,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 제40회 방송대상 심사 위원, 저서 「비욘드 블랙」, 「세종, 소통의 리더십」, 「영화와 예술로 보는 장애인 복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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