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일일드라마 ‘TV소설 파도야 파도야’는 (이현재 이향원 극본, 이덕건 연출)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되고 전 재산마저 잃어버린 여자와 그 가족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온갖 삶의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면서 꿈을 이루고 가족애를 회복해가는 휴먼 성장 패밀리 드라마라고 한다.

파도야 파도야. ⓒKBS2

어느 날 웬 남자가 이옥분(이경진 분)과 시어머니 홍기전(반효정 분) 앞에 서방님이 보냈다는 금괴가 든 가방 하나를 건네고 사라진다. 서방님 즉 홍기전의 아들이자 이옥분의 남편은 북에 있는 여동생을 데려온다며 월북했다는 것이다.

6.25 전쟁이 터지고 할머니는 전 재산이라는 가방을 껴안고 며느리와 손자 4남매(아들 셋, 딸 하나)를 데리고 급하게 피난길에 오른다. 피난길에서 우연히 김상만(정승호 분)과 한춘삼(권오현 분) 양말순(이경실 분) 부부를 만났으나 갑작스런 폭격으로 피난길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폭격이 끝나고 보니 할머니가 안고 있던 전 재산이라는 가방이 없어졌다. 폭격 통에 누군가가 가지고 달아 난 것이다.

할머니와 며느리는 울부짖으며 가방을 찾았으나 가방은 오간 데 없고, 할머니와 며느리는 돈 한 푼 없는 난민이 되었다. 피난길에서 우연히 만난 김상만이 할머니네를 그들이 살고 있는 판자촌으로 데려와서 앞집에 살게 한다. 아이들 특히 셋째 딸은 이런데서 못 산다고 투덜댔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네 식구들과 김상만과 한춘삼은 이웃으로 살게 된다.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는 오복실. ⓒKBS2

할머니는 가방을 잃고 넋이 나갔으나 어머니는 네 아이와 살아야 했다. 이옥분의 네 아이는 첫째 아들 오정훈(장재호 분) 둘째 아들 오정태(정헌 분) 셋째 딸 오복실(조아영 분) 넷째 아들 오정우(이시후 분)다. 이들은 부잣집에서 풍족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었다. 셋째 오복실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해 강원도로 돈 벌러 갔다는 아버지를 찾아서 가출하기도 한다.

이웃으로 살게 된 김상만에게는 복실이와 동갑네기인 딸 김춘자(정윤혜 분)가 있고, 한춘삼과 양말순 부부의 아들 한경호(박정욱 분)는 오정태와 친구다.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살게 되는데 오복실은 슬플 때면 노래를 부른다. 오복실이 뒷산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로 시작되는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 전쟁 휴전 무렵 전쟁과 분단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정서를 담았기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트로트 곡이다. 이 노래는 박시춘 작곡 강사랑 작사로 현인이 불렀는데, 1953년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되었다.

노래자랑 구경에 빠져 있는 오복실. ⓒKBS2

김상만은 통반장 쯤 되는지 동네일을 도맡아 했다가 나중에는 동사무소 직원으로 나온다.

아무튼 어느 날 동네 노래자랑을 하는데 노래를 좋아한다는 오복실이 동생 정우를 데리고 노래자랑 구경을 간다. 복실이도 노래자랑에 나가고 싶어 했지만 김상만은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복실이는 다른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좋았다. 동생 정우는 오줌이 마렵다고 했지만 복실이는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런데 노래자랑이 끝나고 보니 동생이 없었다. 오복실은 동생을 찾아 헤매고……. 결국 어머니를 비롯해 온 식구가 정우를 찾아 나선다. 정우야! 정우야! 엄마는 뒷산 언덕아래서 피 흘리며 신음하는 정우를 발견하고 울부짖는다.

다리를 다친 오정우. ⓒKBS2

엄마는 정우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정우는 누나 복실이와 함께 노래자랑을 구경하다가 오줌이 마렵다고 했으나 복실이는 정우의 말을 듣지 못했다. 노래자랑 구경에 빠져서……. 정우가 혼자서 오줌 눌 곳을 찾다가 뒷산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그만 발이 미끄러져서 언덕 아래로 굴렀던 것이다.

의사는 정우를 살펴보더니 다리를 너무 많이 다쳐 당장이라도 수술을 해야 된다며 수술비를 마련하라고 한다. 엄마는 동네 시장 노점상에서 고구마를 삶아 팔고 있었는데 주변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수술비를 마련해 보려고 했으나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일수 아줌마를 찾아 가서 아들 수술비 좀 빌려 달라고 사정했으나 돈이 없다며 딱 자른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수술비를 구할 데가 없어서 다시 한 번 절망한다. 울며불며 정우가 입원한 병원으로 돌아오니 병실에는 정우가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김상만이 수술비를 마련해 와서 정우는 수술실로 갔던 것이다.

정우의 수술비를 마련 해준 김상만. ⓒKBS2

그리고 첫째 아들 오정훈이 중학교에 갈 무렵 오정훈이 학교를 늦게 갔는지 둘째 오정태도 중학교에 합격했지만 중학교 등록금을 마련 할 길이 없다. 당시는 중학교도 시험을 쳤다. 엄마가 겨우겨우 마련한 등록금으로 장남인 오정훈만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로부터 15년 후 첫째 오정훈은 사법시험에 합격을 했으나, 둘째 오정태는 할 일 없는 건달로 주먹질만 하고 있다.

셋째 오복실은 방직공장에 다니고 있었으나 그녀의 꿈은 가수다.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월남에 갈 가수 공고모집을 보고 식구들 몰래 공장을 그만 두고 가수모집에 응시한다. 그리고 막내 정우는 수술을 했어도 후유증은 남아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시장 노점에서 김밥과 찐빵 등을 팔고 있는데 정우는 시장에서 어머니를 돕고 있었다.

시장에서 엄마를 돕고 있는 오정우. ⓒKBS2

김상만의 딸 춘자는 복실이와 친구였으나 복실이는 공장에 가고 춘자는 집에서 논다. 한춘삼과 양말순 부부의 아들 한경호는 대학을 졸업한 후 황창식(선우재덕 분)이 사장인 대국건설에 입사하여 월남을 다녀오기도 했다.

오정우는 사남매의 막내인데 15년 후라면 이제 스무 살쯤 되었을까. 오복실이 2~3살 많은 누나인데 복실이 공장에 다닌다면 동생 정우는 학교나 제대로 다녔을까.

오정우가 공부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장 노점상에서 김밥과 찐빵을 팔고 있는 엄마 곁에서 엄마를 도울 뿐이다. 가끔 엄마가 자리를 비울 때면 장사도 대신 하지만 집에 오면 식구들이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착한 아들이다.

장애인 교육훈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1960년대라면 ‘장애인’이라는 용어도 없었기에 ‘절름발이’ ‘봉사’ 등 개별 장애인을 지칭했는데 지체장애인의 사회적 용어는 ‘병신’ 또는 ‘절름발이’였고,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는 ‘지체부자유’라고 했다.

1981년이 되어서야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었는데 법 제목이 「심신장애자복지법」이고 이 법에서 정의하는 장애인이란 ‘지체부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기능장애, 정신박약 등’ 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태어나서 어른이 되면 직업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직업은 인간이 지닌 삶의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자아확립이자 사회적 교류와 경제적 독립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은 장애인에게는 더욱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게는 마땅한 직업이 없다. 어떤 분야에 특출한 재능이 없는 한 장애인은 직업이 없고 취업도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기업에서는 상시근로자가 50인 이상일 때는 장애인을 의무고용하도록 법률로 정했다.

장애인 취업비율.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현재(2017년)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3.2%, 민간기업에서는 2.9%가 의무고용률이다. 물론 이들이 의무고용률을 100% 지키지는 않는다.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한 대신 지불하는 고용부담금 등으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살아가고 있지만.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장애인구수는 총 267만 명이인데 취업 장애인은 36.9%다. 요즘은 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취업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지만 이 번 조사에서 비장애인의 취업률이 61.3%인데 반해 장애인의 취업률은 36.9%라니,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직업도 없이 장애인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연명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애인 취업자 36,9% 가운데 상용근로자는 26.9%이고 일용 및 임시근로자는 42.0% 자영업자는 27.3%라고 한다. -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TV소설 파도야 파도야’에서 지체장애인 오정우는 이렇다 할 역할도 없는 구색 맞추기의 양념 같은 존재일 뿐이다. 오복실이 노래에 빠지는 바람에 지체장애인이 되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노점상에서 장사하는 엄마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큰 형 오정훈이 대국건설 사위로 들어가자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엄마가 식당을 차렸다. 여전히 오정우는 엄마 곁에서 식당 일을 도울 뿐이다.

식당을 차린 엄마와 오정우. ⓒKBS2

이 무렵에는 이렇다 할 재활 프로그램도 없었으나 당시만 해도 소아마비 장애인이 제일 많았으므로 몇몇 재활원에서는 이들을 위해서 시계수리나 금은세공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오정우는 특별한 재활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장사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오정우는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김밥과 튀김 그리고 국수를 팔고 있다. 엄마는 노점상에서부터 오정우를 그냥 곁에 두고만 있었다. 지금이라도 오정우에게 특별한 장사 수완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김밥을 마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손님들이 정우가 만 김밥만 찾는다든가, 아니면 국수 다시국물을 내는데 그 만의 비법이 있어서 손님들이 식당에 오면 그의 국수만 찾는다든가, 해서 엄마가 없어도 오정우가 혼자서도 식당운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역할을 좀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장애인도 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장애인에게는 희망이 되고, 오정우를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도 달라질 테니까.

그런데 이 글을 써 놓고 차일피일 하는 사이에 가수가 되겠다고 집을 나갔던 오복실이 할머니의 부름을 받고 1년 만에 엄마 몰래 집에 왔다. 카바레에서 노래한 출연도 받아서. 동생 오정우의 방을 둘러보다가 오복실이 발견한 것은 정우가 작곡한 오선지였다. 이제 절반쯤 온 것 같은데 과연 오정우가 작곡가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래서 누나 오복실이 부를 노래를 정우가 작곡하는 것일까.

참고로 큰 아들 오정훈이 사랑하던 여자 엄순영(서하 분)를 버리고 대국건설 황창식(선우재덕 분)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황미진(노행하 분)의 남편이 되었는데, 피난길에 전 재산이 든 할머니의 금괴가방을 훔쳐간 사람은 황창식이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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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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